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사심관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토막글)] {{{+2 [[事]][[審]][[官]]}}} [목차] == 개요 == [[고려]]에는 중앙 고관 출신이 자기 고향의 사심관이 되게 하는 제도가 있었다. 목적은 지방 호족들의 통제로, 얼핏 보면 호족들을 밀어주는 제도 같아 보이지만 사심관이 다스리는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날 경우 명분을 세워 숙청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견제 제도이다. 사심관은 부호장 이하의 향리를 임명할 수 있었으며 [[호장]]에 대한 [[추천]]권이 있었다. 최초의 사심관은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 김부(金傅)로, 경주에 부임해 주변 일대를 담당했다. 고려가 망할 무렵까지도 신라 타령을 하던 동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지역 유지의 자치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경주 일대가 신라로부터의 향수에서 벗어나 완전히 한 국가라는 인식으로 편입된 것은 중앙에서 모든 지역에 지방관을 직접 파견하고 전 국토를 직할령으로 삼아 지역 유지의 자치권을 약화시켜 강력한 중앙 집권화를 꾀한 조선 시대부터다.]에 신라의 마지막 왕을 딱 꽂아준 인선은 사심관 제도의 저의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부분이다. 충선왕 대에 폐지되었다. == 관련 문서 == * [[기인제도]] * [[상피제도]] * [[상수리 제도]] [[분류:고려의 관직]]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