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사마융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진서)] [include(틀:사마의의 아들들)] ||<:> '''사마융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서진의 계보도)] ---- }}} || ||<-2> {{{#ece5b6 '''{{{+1 서진의 황족[br]양효왕(梁孝王)[br]{{{+1 司馬肜 | 사마융}}}}}}'''}}} || || '''[[시호|{{{#fff 시호}}}]]''' ||효(孝) || || '''[[작위|{{{#fff 작호}}}]]''' ||평락정후^^(平樂亭侯)^^ → 개평현자^^(開平縣子)^^ → 양왕^^(梁王)^^ || || '''{{{#fff 성}}}''' ||사마(司馬) || || '''{{{#fff 이름}}}''' ||융(肜) || || '''{{{#fff 자}}}''' ||자미(子微) || || '''{{{#fff 생몰}}}''' ||? ~ 302년|| ||<|2> '''{{{#fff 재위}}}''' ||'''{{{#ece5b6 서진의 [[양왕]]}}}''' || ||265년 ~ 302년 || || '''{{{#fff 부모}}}''' ||친부: [[사마의]][br]친모: 부인 장씨 ||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진]]의 황족으로 자는 자미(子微). [[사마의]]의 8남으로 장부인 소생이다. 봉토는 양국(梁國)이며 시호는 효왕(孝王). 모두 더하여 양효왕이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32년 이후 ~ 240년대 사이 출생하였을 것이다. 즉 사망 당시의 나이는 적어도 50대 중후반, 많으면 60대가 된다. [[백부인]] 소생의 이복동생 [[사마륜]]이 바로 아래 동생이고 [[장춘화]] 소생의 [[사마간#s-1]], [[복부인(서진)|복부인]] 소생의 [[사마경#s-2]] 등이 바로 윗 형이었다. 친형제는 없었다. [[팔왕의 난]]에서 행보를 요약하면 '''당신 한몸은 이긴 편 들면서 편히 살았다. 하지만 대체 한 게 뭐냐?''' 되겠다.[* 이게 사서에서 사마융의 시호를 놓고 그에 대해서 평가하면서 한 이야기다. 저 평가 하에서 그의 시호가 무려 '''영(靈)'''이었는데 저게 대표적인 후한의 암군 영제와 같은 시호였다.] 하나 더하자면 능력치도 별로였던 주제에 도량도 작고 공사를 구분하지도 못해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등 그다지 좋은 평가를 하기는 힘든 인물... == 생애 == 265년에 양왕이 되었다가 정서대장군을 지내면서 291년 9월 21일에 위장군, 녹상서사에 임명되었다. 296년에 서쪽에서 [[저족]]과 [[강족]]이 일어나자 조왕 [[사마륜]]의 총신인 [[손수(서진)|손수]]와 [[옹주(중국)|옹주]]자사 혜계가 군사적인 문제로 다투면서 구양견이 사마륜의 죄악을 표문에 올렸다. 그러자 조정에서 사마륜이 관우 지역을 소란스럽게 한다고 여겨 소환하면서 사마융은 정서대장군에 임명되어 도독옹량이주제군사가 되었으며, 해계, 해결 등이 손수를 죽여 저족과 강족들에게 사과해야 한다(혹은 본보기로 보여야 한다)라고 청하면서 [[장화(삼국지)|장화]]가 이를 보고하면서 죽이려고 하자 허락했다가 신염이 저족과 강족이 스스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손수의 죄가 아니라고 설득해 손수를 죽이는 것을 거뒀다. 같은 해에 저족의 [[제만년]]이 반란을 일으켰고 [[주처]]가 겨울 10월에 건위장군이 되어 하후준의 휘하에 속해 토벌하게 되었는데, 일찍이 주처가 어사중승일 때 사마융이 법을 위반했다가 주처가 엄격히 집행하자 사마융은 주처에게 원한을 품었다. 제만년이 양산에서 7만을 이끌고 주둔하자 사마융은 하후준과 함께 주처에게 5천의 군사로 공격하도록 강요해 주처를 전사하게 만들었으며, 조정에게는 사마융에게 허물이 있다고 했지만 죄를 주지 않았다. 299년에 [[대장군]], 녹상서사가 되었다가 300년에 사마륜이 [[가남풍]]을 폐위할 때 가담했으며, 여름 4월 7일에 태재가 되었다. 9월에 [[사도#s-1]]를 바꿔 [[승상]]이라 하자 사마융이 승상에 임명되었지만 사마융은 이를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같은 해 3월에 제왕 [[사마경#s-1]], 장사왕 [[사마예]], 성도왕 [[사마영]], 하간왕 [[사마옹]] 등이 사마륜을 패배시켜 금용성에 유폐하자, 사마융은 3월 9일에 '사마륜 부자는 역적이니 목을 베어야 한다'고 표문을 올려 사마륜 부자는 주살되었다. 3월 26일에 태재, 영사도에 임명되었다가 301년 정월 10일에 재형이 되었고, 302년 5월 7일에 죽었다. [[분류:서진의 황족]][[분류:302년 사망]][[분류:자오쭤시 출신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