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사르곤 2세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아시리아 국왕)] ---- |||| 사르곤 왕조 제1대 왕[br]{{{+3 '''사르곤 2세'''}}} || |||| '''아시리아의 왕'''[br]'''수메르와 아카드의 왕'''[br]'''바빌론의 왕'''[br]'''세계 네 귀퉁이의 왕'''[br]'''우주의 왕'''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70873.png|width=100%]]}}} || || '''전임자''' || 샬마네세르 5세 || || '''후임자''' || [[센나케립]] || || '''생몰''' || 기원전 770년[* 기원전 7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다.] ~ 기원전 705년 || || '''재위''' || 기원전 722년 ~ 기원전 705년 || || '''왕조''' || 사르곤 왕조 || [목차] == 개요 == 신[[아시리아]] 제국 사르곤 왕조의 초대 왕. == 생애 == 아시리아 왕실 계보상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진짜 티글라트의 아들인지 불분명한데다 적자도 아니었다. 때문에 전임자인 샬마네세르 5세에 이어 즉위한 것도 정상적인 승계가 아닌 [[쿠데타]]처럼 폭력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정통성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았는지 여러 정책을 시도했고 이름도 [[메소포타미아]] 최고의 군주이자 [[아카드]] 제국의 건설자 [[사르곤]]의 이름을 따왔다. 이처럼 즉위에는 온갖 의문점이 있지만 재위 기간 동안 활약은 많았는데 아시리아를 위협해 오던 [[우라르투]]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대도시인 무사시르까지 빼앗는 성과를 내면서 우라르투를 몰락시켰다. 또한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마르둑-아플라이디나 2세[* 《성경》에서 나온 이름으로 메로다크-발라단이라고도 알려져 있다.]가 반란을 일으키자 몆 차례나 군을 동원해 진압하여 결국 아시리아의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다만 마르둑-아플라이디나 2세는 사르곤 2세 사후에도 반란을 더 일으켰고 사르곤 2세의 아들인 센나케립이 완전하게 진압하고 나서야 바빌론을 포기하고 반란을 그만뒀다.] 사르곤 2세는 기원전 717년부터 새로운 수도 조성을 준비하고 11년 뒤인 기원전 706년 수도를 [[님루드]]에서 두르샤루킨으로 옮겼으나 수도를 옮긴 지 1년 만에 [[아나톨리아]] 중부 지역에서 타발과의 전쟁 도중 전사하고 말았다. 심지어 시신마저도 회수할 수 없어 장례를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다. 사르곤 2세가 야심차게 조성했던 두르샤루킨은 아들 [[센나케립]]이 즉위한 후 아버지가 불운하게 죽은 것에 충격받고 사르곤 2세의 치적과 거리를 두며 [[니네베]]로 수도를 옮기면서 버려졌다. [각주] [[분류:기원전 705년 사망]][[분류:아시리아의 왕]]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