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방육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위서)] 龐淯 생몰년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한]] 말과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의 위나라의 인물이며 자는 자이(子異)로 아버지는 방자하, 어머니는 [[방아친]]. 양주 주천군 표씨현 사람. == 생애 == 어머니 [[방아친]] 못지 않은 충성심을 지니고 있으며, 방육은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 이수가 방심하고 있음을 어머니에게 알렸다. 원래 양주의 종사로 파강현장의 일을 했는데, 206년 7월[* 방육전의 주석으로 딸린 전략에는 건안 14년(209년)이라고 되어있으나 후한서 효헌황제기에는 건안 11년(206년) 7월로 기록되어 있다.]에 무위태수 [[장맹]]이 반역해 자사 [[한단상]]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는 장맹이 한단상의 장례를 치르는 자가 있으면 죽이겠다고 선언하지만 방육은 오히려 관직을 버리고 밤낮을 달려가 한단상의 유체 앞에서 곡을 하였다. 이에 장맹의 병사가 방육을 잡아들이려고 하니, 장맹은 >장맹은 자사를 죽여 죄악을 행했는데, 이 사람은 충성을 다해 공명을 날리는구나. 혹여 그를 죽인다면 어찌 주 내에 훌륭한 선비들을 포섭하겠는가! 라며 한단상의 상을 치르도록 허락하며, 이 일로 인해 그의 충렬함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런 그의 소문을 듣고 태수 서읍이 그를 주부로 삼았으나 재수 없게도 황앙이라는 군민이 반역을 일으켜 성이 포위당한다. 방육은 그런 상황에서 처자식마저 내팽겨치면서 장액과 [[돈황]] 두 군에 위급함을 알리며, 그런 그를 의심해 군세를 내려고 하지 않자 방육은 검으로 자살할 뜻을 나타내니 그제야 방육의 의기에 감탄해서 그 말을 믿고 도우러 왔으나 이미 성은 함락되고 서읍은 죽은 뒤였다. 방육은 서읍의 유체를 수습해 본국으로 보내고 [[삼년상]]을 치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조조]]가 그를 직접 불러들여 연속으로 삼는다. 220년에 [[조비]]가 즉위하자 부마도위가 되고 서해태수로 옮겨 관내후의 작위를 받았으며, 이후 중앙으로 돌아가 중산대부로 임명되고 세상을 떠나 방증이 뒤를 잇는다. [[장기(삼국지)|장기]]의 추천으로 관직에 올라 최후에 명성과 지위가 있었다고 하며, [[진수(역사가)|진수]]는 방육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칼을 거꾸로 해 스스로를 찌르려 했으니 그의 진실된 성의는 이웃 나라까지 감동시켰다고 평했다. == 창작물에서 == || [[파일:방육.jpg|width=400]] || || [[삼국지 14]] 일러스트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14]]부터 등장하고 능력치는 통솔력 38, 무력 36, 지력 63, 정치력 69, 매력 58이며 일러스트는 100만인의 삼국지의 [[마속]]을 재활용하여 위나라 사람 치고 촉나라 녹색 옷을 입었다. 개성은 소욕, 주의는 예교, 정책은 묵수연구 Lv 2, 진형은 방원, 전법은 철벽, 업화, 친애무장은 [[장기(삼국지)|장기]], 혐오무장은 없다. 방원진이 있어서 탱커용으로 쓰인다. [[분류:조위의 인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