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rr20240101판에서 저장되지 않은 문서입니다.자동으로 r20210301판 문서를 읽어왔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박경락(독립운동가)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 성명 ||박경락(朴京洛) || || 생몰 ||[[1871년]] [[4월 30일]] ~ [[1939년]] [[12월 7일]] || || [[출생지]]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 || 사망지 ||[[전라북도]] [[순창군]]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의병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박경락은 1871년 4월 30일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순창군 구암면 이율동으로 이사가서 농사에 전념했다. 그러던 1906년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켜 태인, 순창 등지에서 활약하자 인근의 여러 포수들을 규합하여 최익현 의병대에 가담했으며, 최익현 의병대가 해산된 후에는 [[최산흥]]의 보부상 부대와 합세하여 10월 경에 일본 수비대와 전투를 치렀다. 1908년 음력 6월 15일 양윤숙(楊允淑)이 동지를 규합하여 거의하자, 그는 여기에 입대하여 도포장을 맡았으며, 1909년 정월 중순에는 동료 60여 명과 함께 총 40정을 휴대하고 순창군 내의 여러 고을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일련의 활동을 전개했다가 몇달 후 체포되어 1910년 1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뤘다. 출소 후에는 고향에서 조용히 농사를 짓다가 1939년 12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경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조선 의병장]][[분류:순창군 출신 인물]][[분류:1871년 출생]][[분류:1939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