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무림파천황 사건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1981년/사건사고]] [[분류:제5공화국/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만화 검열]][[분류:누명]][[분류:한국 무협 소설]] [include(틀:사건사고)] [[파일:book01.jpg]] [목차] == 개요 == [[1981년]]에 발생한 [[한국 무협소설]] 역사상 최초이자 (아마도) 최후의 [[필화|필화사건]]. == 상세 == 무협작가 겸 번역가 박영창은 당시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학생으로 [[운동권]] 활동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번역]]과 무협소설 창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회|신군부]]가 정권을 찬탈하고 [[대한민국 제5공화국]]이 출범한 뒤 어느 날 그는 그의 무협소설 [[무림파천황]]에 [[사파(무협 소설)|사파]]와 [[정파(무협 소설)|정파]]의 투쟁을 '''[[변증법]]적으로 설명'''하는 대목을 넣었다. 나중에 작가가 다른 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끌려갔는데 증거가 될 것을 찾다가 그 대목에 주목하면서 졸지에 한국 무협소설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필화사건이 터져 버렸다. 해당 소설에는 "강북무림"이 "강남무림"에 대해 '''남진'''을 주장한 대목이 나오는데 이게 '''북한의 남진을 연상(...)'''시켰다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어버린 것이었다. 그야말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마인드였던 셈이다. 아래는 작가 본인의 회고다. >"그 날 학교에서 모종의 시위가 있었다. 학내에 있던 경찰들이(당시에는 대학교 내에 경찰이 상주했었다) 달려들어 학생들을 마구 구타하고 연행해갔다. 지나가다 그걸 보고 극도로 분노해서 집에 돌아온 후 마침 그때 쓰던 원고에 그 부분을 넣었다. 주인공이 감옥에 갇혀있는데 거기서 만난 노인이 영혼 따윈 없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유물론|유물변증법]]에 관한 것을 두 페이지 정도 넣었던 거다. 출판사에 원고 넘긴 후에 아무래도 찝찝해서 그 부분을 빼야겠다고 전화를 했지만 이미 인쇄작업에 들어간 뒤였다. 나중에 [[학생운동]] 건에 연루돼서 안기부에 끌려갔는데 그 건도 같이 열거돼 있어서 놀랐었다." 여하튼 박영창은 이리해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코렁탕]]--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3년, 2심에서 2년을 선고받았는데 저 무림파천황은 13가지 죄목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21300329211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2-13&officeId=00032&pageNo=11&printNo=11193&publishType=00020|무협지에 공산이론...전연대생에 3년 선고]]. == 여담 == [[필화]]사건으로 무협 소설사에 이름을 남긴 작품이지만 그와 별개로 소설 자체는 흔하디 흔한 무협소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금서]]라는 소리를 듣고 호기심에 찾아본 일부 사람들이 실망(?)했다는 후문도 있다. 1980년대에는 [[막심 고리키]] 작품이나 [[백석(시인)|백석]], [[임화]] 같은 [[월북]]작가들의 작품들처럼 문학성이 있는 작품들이나 학술서들이 [[금서]]로 많이 지정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도 비슷한 이유로 금서로 지정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가 낚인 셈. 작가 본인도 딱히 흥행을 기대하고 쓴 건 아니었으며 사건 이후에는 주로 번역가로 활동했다. 민주화 이후에는 마르크스 이론도 대학에서 가르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만 현재도 이 책은 무관심 속에 판례상 이적표현물로 미해금 상태라 2000년대까지도 군 반입금지 [[불온서적]]에 유일하게(...) 이름이 올라온 [[무협지]]라고 한다. 물론 21세기에 이 작품을 군에 반입해서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 둘러보기 == [include(틀:국가폭력/한국)]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