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만복사저포기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목차] == 개요 == {{{+1 萬福寺樗蒲記}}} [[김시습]]의 [[한문 소설]]. ||'''분류'''|| 전기 소설 || ||'''배경'''||현세와 비현세의 이중구성|| ||'''사건전개'''||초인간적,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 ||'''갈래'''||한문소설, 전기소설, 명혼소설|| ||'''배경'''||[[만복사지|전북 남원 만복사]]|| ||'''성격'''||전기적, 환상적, 비극적|| ||'''시점'''||전지적 작가시점|| ||'''제재'''||양생과 죽은 여인 간의 사랑|| ||'''주제'''||생사를 초월한 사랑|| ||'''특징①'''||현실과 초현실의 세계가 어떤 명확한 구분없이 상호출입하는 관계속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특징②'''||[[불교]]적 색채 - 양생이 여인과 인연을 맺는 장소가 절이다,[br]- 두 사람이 배필을 점지해달라고 하는 점[br]- 여인의 가족들이 여인의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재를 올리는 점[br]- 여인이 양생에게 불도를 닦아 속세의 누[* 윤회]를 벗으라고 말하는 점|| == 상세 ==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만복사에서 홀로 살고 있던 양생은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것을 서러워 하던 중, [[붓다|부처]]님과 저포놀이[* 주사위를 사용하여서 '''쌍륙'''이라고도 불린, 이 '''노름'''의 정체는 바로... [[백개먼]]이다. 그런데 부처님 턴(...)에도 자신이 던졌다. [[고스트 바둑왕]]이 생각나지 않는가?]를 해 이기고 제 짝을 찾아줄 것을 요구한다. 결국 부처님이 양생의 소원을 들어주었는지(?) 전쟁 중 살해당해 외딴 곳에 묻힌 [[처녀귀신]]과 양생을 만나게 해 주고, 둘이 맺어지게 된다. 이 여인의 공양을 위해 찾아온 장인 장모와도 조우했으나, 여인을 볼 수 있는건 양생 뿐. 함께 잠깐 신혼을 즐겼으나 여인은 결국 다른 곳에서 남자로 환생하게 되었다며 사라진다. 양생은 여인을 그리워 하다가 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뒤 그의 소식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덧붙여 작중 묘사라는 양생의 아내의 나이가 15~16세 정도로 묘사되지만 당시에는 중고등학생 나이 정도되면 결혼하는것이 일반적이었으니 유난하다고 할만한 연령은 아니다. 여담으로 [[삼국유사]]에 실린 [[조신의 꿈]]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처나 보살 등에게 인연을 기원하는 사람이 결국 사랑 같은 속세의 행복은 덧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후 [[김만중]]의 [[구운몽]]에서도 그렇고.... 사실 이 소설의 가장 슬픈 점이라 하면, 양생이 죽어 저승에서 여인을 만나려 해도, 여인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양생은 어떻게 해도 여인을 만날수 없다는 것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 소설 마지막 문구를 보면 알듯이 양생과 여인의 최종목표는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난 해탈이며, 남자로 환생하는것 역시 해탈을 위한 빌드업이다.(당시 불교에는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성차별이 만연했다. 그래서 일단 남자로 환생 후 공덕을 쌓는 것이다.) 금오신화가 그렇듯 한시 문구에서 도교적 느낌도 느껴진다. 그러니 극락이나 무릉도원에서 다시 만나길 기대해보자. ~~아니면 BL엔딩이 되던가~~ 소설의 배경인 [[만복사지|만복사]]는 '''실제 [[전라북도]] [[남원시]]에 존재했던 사찰이다.''' [[신정동(남원)|신정동]] [[남원역]]과 남원 시내 사이에 있다. 지금은 절은 사라지고 터만 보존되어 있다. 남원시 왕정동에 [[만복사지]]가 있는데, 만복사지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만복사지#s-2|만복사지 5층석탑]]. [[고려 문종]] 때인 [[11세기]]에 건설된 탑으로 고려 초기의 탑이라 보물 30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전승으로는 [[도선대사]]가 창립한 절이라고 하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고려 문종 때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5층석탑도 이 시기의 유적이라 절 자체가 이시기에 세워졌고 절의 권위를 높이려고 도선대사 창립설이 퍼진 듯하다. 1597년에 발발한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칠천량]]에서 [[원균]]의 해군을 뚫고 들어온 일본군이 [[남원 전투|남원성을 공격했고]], 일본군은 남원성을 점령한 후 만복사를 불태워 버렸다. 전쟁이 끝나고 한참 후인 [[숙종(조선)|숙종]] 때 만복사의 재건을 시도했으나 절이 너무 커서 포기하고 그냥 승방 한 채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며, 결국 만복사는 재건되지 못한 채 지금도 절터로 남아 있다. 이야기 소재 자체는 [[수신기]]에 실린 [[부마]] 신도탁 이야기와 흡사하다. 자세한 내용은 [[부마]] 항목 참고. [[2010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 영역에 2번째 지문(16~19번)으로 출제되었다. [[분류:고전소설]][[분류:김시습]]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