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역대 로마 아우구스타)] ||<-2> [[파일: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jpg|width=100%]] || || '''이름''' ||마르키아 오타킬리아 세베라[br](Marcia Otacilia Severa)|| || '''출생''' ||미상|| || '''사망''' ||미상|| || '''아버지''' ||오타킬리우스 세베루스(또는 세베리아누스)|| || '''형제자매''' ||세베리아누스|| || '''남편''' ||[[필리푸스 아라부스]]|| || '''자녀''' ||[[필리푸스 2세]], 율리아 세베리나||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아우구스타]], 로마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의 황후. == 생애 == 마케도니아와 모이시아의 총독 오타킬리우스 세베루스(또는 세베리아누스)의 딸. 남동생으로 세베리아누스가 있었는데, 필리푸스 아라부스로부터 모이시아의 총독에 임명되어 246년부터 247년까지 맡았다. 그녀는 234년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 직할 [[프라이토리아니]]에 복무하던 필리푸스와 결혼하였고, 아들 마르쿠스 율리우스 필리푸스 세베루스([[필리푸스 2세]])와 딸 율리아 세베리나를 낳았다. 244년 2월 고르디아누스 3세가 필리푸스 아라부스 일당에 의해 암살(로마측 기록) 또는 [[사산 왕조]]와의 전투 중 전사(사산 왕조측 기록)한 뒤, 필리푸스는 군대의 추대를 받아 황위에 올랐고, 그녀는 아우구스타 칭호를 부여받았다. [[기독교]]측 사료에 따르면, 필리푸스와 마르키아 부부는 기독교 신자였다고 한다. 그녀는 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바빌라를 박해로부터 구해줬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이 기록을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만, 두 사람이 기독교에 호의적이었던 건 사실이라고 본다. 필리푸스의 치세 때 기독교 신자에 대한 박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반동인지, 필리푸스를 몰아내고 새 황제가 된 [[데키우스]]는 조직적인 기독교 박해를 단행했다. 249년 8월 필리푸스가 베로나에서 데키우스의 반란군에게 패한 뒤 자살 또는 암살되었고, 데키우스가 새 황제가 있었다. 이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근위대는 필리푸스 2세를 살해했다. 그녀는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분류:로마 황후]] [[분류:아우구스타]]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