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라츤 회랑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 아르메니아 관련 문서)] [include(틀: 아제르바이잔 관련 문서)] [[파일:나고르노.png]] * 지도 중앙의 보라색 부분은 전통적인 라츤 루트이다. [[파일:라츤 회랑.png]] * 상세 지도 1 : 아르메니아가 이 지역을 관할하던 기간(1995~2020)동안 사용하던 고리스-스테파나케르트 고속도로 구간이다. 이 도로는 라츤과 자부흐 등 주요 마을을 통과한다. [[파일:LachinCorridor.jpg]] * 상세 지도 2 :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을 관할하게 된 2020년부터 평화 협정으로 개방하게 된 구간. 출입경은 국경에 걸친 하카리 다리 너머의 검문소를 거치며, 라츤과 자부흐를 통과하지 않는다. 회랑의 면적은 휴전 협정에 따라 도로로부터 5km 폭의 가상 구역을 그린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어]]: Laçın Yolu(라츤 욜루)[* 라츤 도로라는 뜻. 라츤 회랑을 뜻하는 Laçın dəhlizi(라츤 대흘리지)는 아제르바이잔 당국이 거부하는 표현이다.] [[러시아어]]: Лачи́нский коридо́р(라친스키 코리도르) [[아르메니아어]]: Բերձորի միջանցք(''Berdzori mijantsk'', 베르조리 미찬츠크) [목차] [clearfix] == 개요 == [[아제르바이잔]] 라츤구(Laçın rayonu)에 위치한 산길로, [[아르메니아]]의 본토와 아제르바이잔의 [[스테파나케르트|한캔디]](멸망한 [[미승인국]] [[아르차흐 공화국]]의 수도였던 스테파나케르트)를 잇는 여러 길들 중 일부를 말한다. 본래 그냥 산길이지만 2020년 전쟁으로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5년간 좌우 5km 폭만큼을 관할하기로 하면서 일시적으로 [[회랑(지정학)|회랑]]으로 불리는 도로가 되었다.[* 단 영토 주권은 엄연히 아제르바이잔에 있고 이는 5년 시한부이며 아제르바이잔 당국은 해당 표현을 쓰지 말라고 한다.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52411|관련 기사]].] 아르메니아가 실효지배하던 시절 이 지역에는 고대 왕국 시절 지명이라 주장하는 베르조르(Բերձոր, Berdzor)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강원특별자치도 태백, 정선의 시골 꼬불길과 비슷한 험하고 열악한 도로이지만, [[캅카스]] 산지에서는 그나마 길을 닦기 만만한 조건이 이 정도인지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법 상 [[아제르바이잔]]에 속해 있으나 1992년 5월 아르메니아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으로 침공하여 점거한 이후 18년간 실효지배하였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이 직접 수복하지는 못하였으나, 이후 휴전협상을 통해 라츤구 전체를 돌려받으면서 수복한다. 반환받되 아르메니아와 아르차흐 사이의 왕복 통행을 보장해야 하고, 협상 후 5년 간은 [[러시아]]의 평화유지군이 이를 보장하기 위해 감독 및 통제권을 가진다. 라츤 주 전체에는 본래 아제르바이잔인, 쿠르드인, 아르메니아인이 섞여 살았으며 소련 시절 라친 주 전체 인구 5만여 중 90%가 아제르바이잔계였다. 1989년 아르메니아계 카라바흐 반군이 한캔디(스테파나케르트)에서 준동하였을 때 아제르바이잔군은 이를 진압하는 데 실패하고 자치주 전역을 봉쇄하기로 한다. 1992년 5월 아르메니아는 봉쇄를 풀기 위해 이 길을 점거하여 고리스~스테파나케르트 보급선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라친 주 전역과 캘배재르 주를 석권하며 본토와 카라바흐를 완전히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1993년부터 2020년까지 아르메니아가 사용할 수 있는 루트는 세 개(캘배재르~마르타케르트, 라츤~스테파나케르트, 장게주르)가 되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2020년 '44일 전쟁'에서 완패하며 세 루트 모두에 대한 실효 지배권을 잃게 되었고, 다만 휴전 협상으로 라츤 회랑의 통행 보장권만을 얻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경로 마저도 양국의 관계 개선 실패로 장래가 불투명하다. 1993년 이후 라츤 주 전역에 거주하던 4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모두 죽거나 피난, 추방을 겪으면서 주 전체 인구가 90% 이상 증발했고 회랑 연선에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게 되었다. 제1의 도시인 슈샤는 1989년 기준 총인구 2만3천에 도심인구 1만7천을 보유한 거점도시였으나 도시가 완파되고 아제르바이잔인이 모두 떠나면서 2015년 기준 아르메니아인 100% 4천명만이 살았고, 제2의 정착촌인 라츤은 인구 7800명에 99.9% 아제르바이잔인이 살던 대형 마을이었으나 아르메니아가 점령한 이후 망했다. 그 뒤 무주지가 된 라츤 일대([[아르차흐 공화국]]의 카샤타그구)에는 척식사업이 진행되어 레바논 등지의 아르메니아인들을 데려와 살도록 하였으나 절대적인 수가 매우 작아 인구 증감에는 기여치 못하였다. 어쨌든 전후 라츤에는 아르메니아인 1000명 남짓이 살다가 2020년 전쟁을 기점으로 150여명만 남기고 모두 떠났다. == 관련 문서 == * [[아르차흐 봉쇄]] [각주] [[분류:아제르바이잔의 지리]][[분류: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관계]][[분류:아르차흐 공화국]]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