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두도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삼국시대(중국)의 인물, rd1=두도(삼국시대))] 杜度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 [[후한]] 초기의 서예가이며 자는 백도(伯度)로 본명은 조(操). 옹주 경조군 두릉현 사람. == 생애 == 후한 [[장제(후한)|장제]] 때의 인물이며 어사대부 두연년의 증손으로 제국상을 지냈다고 한다. 초서에 능해 장제의 총애를 받아 조서를 내려 두도의 장초서로 장계를 쓰도록 명령했다고 하며, 유명한 서예가 최원(崔瑗), [[최식]]의 스승이다. 제자 최원과 함께 장초를 잘 썼기 때문에 두최(杜崔)라 묶어서 부를 정도였는데, 삼국시대의 조위 사람인 [[위탄(조위)|위탄]]은 걸출하면서도 굳센 힘이 있지만 글자의 획이 가늘어 서리 내린 숲에 잎사귀가 없고 폭포수가 난다고 평했다. 그렇지만 위탄에게 두도, 최원 등과 평가받았던 [[장지(후한)|장지]]는 편지를 통해 주사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의 초서에 대해 두도, 위침에 비해 부족하다고 했으며, 당나라의 장회관은 두도를 '뛰어나면서도 재빠른 변화가 가득 차 후세의 모범이 된다' 고 평가했다.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가 과도한 [[피휘]] 관습을 비판한 글인 〈휘변〉 에서, 부모나 조상의 이름자와 소리가 비슷한 글자까지 함께 피하는 것의 부당함을 논하면서 이 이름을 예시로 들었다. 두도의 자식들은 성씨인 杜가 부친의 이름자인 度와 음이 같으니[* 현재의 [[한국 한자음]]으로는 '두'와 '도'로 조금 다르지만, [[반절]] 기준으로는 '徒古(ㄷ+ㅗ)' 와 '徒故(ㄷ+ㅗ)' 로 거의 같고, 현대 중국어로도 둘 다 'dù' 로 동일하다.] 자기 성씨까지 못 쓰게 되는 것이냐는 말.[* 물론 위에 적힌 대로 본명은 '操' 여서 두조(杜操)인데, 후대에 [[조조|위 무제 조조(曹操)]]의 이름자를 피휘하기 위하여 자를 써서 '度' 로 표기되어 전해진 것이다.] [[분류:후한의 인물]][[분류:한나라의 관료]][[분류:중국의 서예가]]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