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남북조시대(일본)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토론 합의, 토론주소1=HeavenlyHospitableExcitedTerritory, 합의사항1=표제어를 "남북조시대(일본)"으로 유지하기)] [include(틀:일본의 역사)] [[파일:E8B5528F-A02F-4F87-B587-5A0C269242F3.jpg]] '''[ruby(南北朝時代, ruby=なんぼくちょう じだい)]''' [목차] == 개요 == [[일본]]의 시대 구분([[1336년]] ~ [[1392년]])으로 [[교토]]를 중심으로 [[무로마치 막부]]가 실권을 행사한 북조와 [[요시노초|요시노]]를 중심으로 한 남조가 대립한 시대다. 일본 역사상 [[천황]]이 두 명이었던 시대로 넓게 보면 [[무로마치 시대]]의 초창기에 해당하며, 보통 [[고다이고 덴노]]가 [[아시카가 다카우지]]를 피해 요시노로 피접 간 사이,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기습적으로 [[고묘 덴노]]를 옹립한 1336년부터 북조의 [[고코마츠 덴노]]가 남북조를 통일한 1392년까지를 가리킨다. [[일본어]] 발음을 옮긴 '난보쿠초' 시대라고도 한다. == 역사 == 초기에는, 합법적인 즉위 절차를 거친 데다 [[3종신기]]를 가지고 요시노로 망명(?)한 고다이고 덴노의 [[남조#s-1.2]] 쪽이 정통성에서 앞서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닛타 요시사다]], [[키타바타케 아키이에]] 등 고다이고 덴노를 따르는 남조의 명장들과 무사들을 중심으로 서일본 방면에서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군대를 궁지에 모는 경우가 많았지만, 확실한 기회를 머뭇거리다 여러 번 놓치게 되면서 점차 북조 쪽으로 힘이 기울게 되었다.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규슈]]의 [[왜구]]들을 직접 지배하고, [[명나라]]로부터 "[[일본국왕]]"의 칭호를 받는 등 북조가 완벽하게 강성해지면서 남조의 [[고카메야마 덴노]]가 [[삼종신기]]를 북조의 [[고코마츠 덴노]]에게 물려주고 흡수 통합되는 형식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흡수 통일 당시에는 천황의 계승을 북조와 [[남조#s-1.2]] 혈통이 번갈아가면서 즉위하는 것으로 합의했지만[* 사실 북조 계통과 남조 계통은 남북조 분열 이전에도 서로 번갈아가면서 황위에 올랐다. 그런 식의 황위 계승이 이어진 이유는 [[인세이|생전에 퇴위한 상황들이 막후에서 금상(현재 재위 중인 덴노)의 후계자 결정에 개입했기 때문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자식을 차차기 덴노로 세우되 그렇다고 해서 차기 덴노의 후손들 또한 여전히 그대로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구조가 된 것이다. 때문에 점차 누가 덴노에 오르든 정통성 시비의 여지가 상존하게 되었고, 막부라든지 무가 등 외부 세력의 개입 여지가 생기게된 것이었다.], 막상 통일되고 나니 칼자루를 쥔 북조가 이를 따르지 않고 [[먹튀|천황의 혈통을 독점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남조의 잔당 세력이 난을 일으켰지만, 군권의 대부분을 장악한 [[무로마치 막부]]에 의해 진압당했다. 이후 대부분의 남조 혈통이 평민으로 강등되거나 절에 몸을 의탁하게 되었다. 승자는 북조였지만, [[메이지 덴노]] 이후로 정통성은 남조가 인정받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북조 계통인 이후 덴노들의 정통성이 부정되지는 않는다. 남조와 북조의 선조는 원래 덴노를 10년씩 교대로 지내던 사이였다. [[고사가 덴노]]가 상황으로 물러난 뒤 4남 [[고후카쿠사 덴노]]가 즉위했는데 고후카쿠사 덴노의 후계를 고후카쿠사 덴노의 후손이 아닌 평소 총애하던 8남 [[가메야마 덴노]]의 아들인 [[고우다 덴노]]로 정했기 때문에 '''지묘인 계통'''(4남의 후손, 이후 북조)과 '''다이카쿠지 계통'''(8남의 후손, 이후 남조)이 돌아가면서 덴노에 오르게 되었다. 즉 오래전부터 분쟁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친왕"으로 불리던 후계들도 [[일본의 역대 덴노|훗날 천황으로 추숭되었다.]] 이를 '''[[남북조정윤론]]'''이라 한다. 한편으로는 음모론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메이지 덴노 대역설]]이 민간에까지 널리 퍼진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사로 치면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당시와 거의 겹치며, [[왜구]]들의 발호와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특이하게도 남북조가 합쳐진 1392년은 [[조선]]의 건국과 같은 해였다. 이에 대해선 해당 문서 참고. === 계보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BE0026 20%, #BE0026 80%, #AF001F)" [[천황|[[파일:천황기.svg|height=45]]]][br]'''[[조선/왕사|{{{#DCA600 남북조시대 일본 황실의 계보도 편집중}}}]]'''}}}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AF001F, #BE0026 20%, #BE0026 80%, #AF001F); color: #DCA6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 || || || || || '''88대'''[br][[고사가 덴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0대'''[br][[가메야마 덴노]] || || || || '''89대'''[br][[고후카쿠사 덴노]] || || || || 종존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1대'''[br][[고우다 덴노]] || || || || '''92대'''[br][[후시미 덴노]] || || 구명 || || 유강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96대'''[br][[고다이고 덴노]] || || '''94대'''[br][[고니조 덴노]] || || '''95대'''[br][[하나조노 덴노]] || || '''93대'''[br][[고후시미 덴노]] || || 수방 || || 유강 || ||<-17>{{{#ffd400 {{{-2 [범례][br]실재 혈통 기준[br]세로선(│) 부자항렬[br]가로선(─) 형제항렬}}}}}} ||}}}}}}}}} ||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남북조시대, version=289)] [[분류:무로마치 시대]][[분류:일본의 역사]]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