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김원탁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2> || || '''{{{#white 이름}}}''' ||김원탁(金元卓, Kim Wontak) || || '''{{{#white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white 출생}}}''' ||[[1964년]] [[7월 21일]][br][[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북제주군]] 구좌읍 상도리[* 現 제주시 구좌읍 상도리] || || '''{{{#white 학력}}}''' ||세화중학교[br][[한림공업고등학교]][br][[세화고등학교(제주)|세화고등학교]][br][[건국대학교]] || || '''{{{#white 종목}}}''' ||[[육상]] || || '''{{{#white 주종목}}}''' ||[[마라톤]] || [목차] == 소개 == [[대한민국]]의 남자 [[마라톤]] 선수. 1980년대 중흥기를 맞은 대한민국 육상계에서 [[장재근]], [[임춘애]] 등과 함께 촉망받던 동량 중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1988 서울 올림픽]] 최종 성화 점화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김원탁이라는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저 서울올림픽 최종 성화 점화자로만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준수한 성적을 내던 선수였고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큰 성과도 올렸다. 하지만 그 다음 세대로 김원탁에 바로 뒤이어 등장한 사람이 하필이면 '''그 [[황영조]]'''라서 묻혀버린 비운의 인물. [[황영조]]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3위에 입상하고, 얼마 안 있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따버린다. 임팩트가 김원탁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정도가 아니라, [[손기정]]의 뒤를 잇는 황태자 자리에 등극해버렸다. 그리고 [[김완기]], [[이봉주]] 등 현재도 회자되는 한국 마라토너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30대에 접어들어 전성기가 지나고 점차 기량이 하향하던 김원탁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1996년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인 제주도로 귀촌했다.[* 같은 해 [[이봉주]]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단 3초 차로 금메달을 놓치고 은메달을 따냈다.] 현재는 고향인 [[제주도]]에서 귀촌하여 농부의 삶을 살고 있다.[[https://v.daum.net/v/20180914070924898|인터뷰]] 김원탁 씨 본인 말로는 이제는 마라토너로 산 시간보다 농부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다고. 제주도 사람이다 보니 가끔 제주 지역 언론에서 김원탁 선수를 조명하는 기사가 나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탁은 올림픽 성화 점화자라는 영광스러운 순간뿐만 아니라 한국 마라톤의 한 세대를 책임졌던 선수임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역사의 순간에 묻혀 실제 기량에 비해 이름값이 비교적 저평가된 선수에 가깝다. == 수상 기록 == ||<-3> {{{#white 아시안 게임}}} || || 금메달 ||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1990 베이징]] || 마라톤 || [각주]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육상 선수]][[분류:1964년 출생]][[분류:제주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분류:1988 서울 올림픽 육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세화고등학교(제주) 출신]][[분류:건국대학교 출신]]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