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트전투기/러시아)] [include(틀:수호이의 항공기)] [[파일:SU-22.3.jpg]] [[파일:SU-22.2.jpg]] [* 둘 다 [[폴란드 공군]] 소속 기체다. 위는 AL-21F-3 엔진이 탑재된 Su-22M4 Fitter-K, 밑은 레이저 거리 측정기가 탑재된 Su-22M3K다.] ||<-5> [[수호이]]기 계보 || || [[Su-15]] ||→|| Su-17/20/22 ||→|| [[Su-24]] || Су(Сухой)-17/20/22 Sukhoi Su-17/20/22 ([[나토 코드명]]: Fitter) [목차] == 개요 == [[수호이]] 설계국에서 개발한 [[소련]]의 전투기 겸 지상[[공격기]]. 지상공격기로 쓰이던 [[Su-7]] Fitter에 [[가변익]]을 붙이는 등의 개량을 통해 탄생했다. 총 2,867기가 생산되었으며 이 중 1,165기가 15개의 국가에 수출되었다. 수출형은 Su-20(초기형), Su-22(후기형)으로 제식명을 변경하였다. == 제원 == ||<-2> Su-17 제원 || || 분류 ||초음속 전폭기|| || 전장 ||19.02m|| ||<|2> 전폭 ||날개를 폈을 때 13.68m|| ||날개를 접었을 때 10.02m|| || 전고 ||5.12m|| || 자체 중량 ||12.1톤|| || 최대이륙중량 ||19.4톤|| || 최고 속도 ||마하 1.7|| || 실용상승한도 ||14,200m|| || 작전행동반경 ||1,150km|| || 항속거리 ||2,300km|| || 엔진 ||률카 AL-21F-3 [[터보제트]] 엔진[* 17,185lbs/24,675lbs] 1기|| ||<|5> 무장 ||[[NR-30]] 30mm [[기관포]] 2문|| ||[[R-60]]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무유도 항공폭탄 4톤, 레이저 유도폭탄|| ||로켓 포드, 공대지 미사일|| ||'''핵폭탄'''|| == 개발 == [[수호이]] 설계국이 이전에 개발한 [[Su-7]]은 처음엔 [[요격기]]로 개발되었으나 고공 비행성능과 자체적인 안정성이 좋지않아 요격기로서의 성능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던 탓에 [[MiG-21]]같은 대체기가 등장하자 비교적 빠르게 요격 임무에서 밀려나 지상[[공격기]]로 전용되었다. 하지만 지상공격기로서의 성능도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는데, Su-7이 채택한 큰 후퇴각의 날개는 저공 저속 비행시 불안했던데다가 착륙 속도가 높아서 사고를 일으키곤 했다. 게다가 [[엔진]]은 추력이 부족해 폭장량이 2톤 밖에 되지 않았으며 트러블이 많았다. 그리고 당시에 소련 공군에는 쓸만한 지상[[공격기]]가 부족했다. [[Il-28]] 경폭격기는 느린 속도로 생존력이 부족했고, [[MiG-19]]나 [[MiG-21]]은 폭장량의 한계로 지상공격력이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군은 새로운 지상공격기를 요구했고, 수호이 설계국은 빠른 개발을 위해서 기존 [[Su-7]]의 설계를 이용하기로 했다. Su-7BM을 기초로 [[TsAGI]]에서 개발한 가변후퇴익을 넣었는데 이 [[가변익]]은 28, 45, 62° 의 세가지 모드로 후퇴각을 바꿀 수 있었다. 그 외에 [[캐노피]]가 바뀌었으며, 항공역학을 고려한 동체 상부의 추가 연료 탱크도 마련되었다. Su-7IG로 명명된 이 실험기는 1966년 8월 2일에 첫 비행을 하였는데 기존의 Su-7에 비하면 이착륙 속도가 50~60km/h 가량 줄어들었다. 이후 정식으로 Su-17이라고 명명되었고 첫 비행은 1969년 7월 1일 E. K. Kukushev가 담당했다. == 성능 == [[가변익]]의 채택으로 마하 1.7의 고속 성능과 저공 저속 성능을 겸비했으며, 보다 지상[[공격기]]에 어울리는 비행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착륙속도가 줄어들어 착륙 난이도가 낮아졌고 이착륙 거리가 짧아졌다. 기체 크기가 커지면서 연료탑재량이 늘어나 항속거리가 [[Su-7]]에 비해 650km나 늘어났고, 효율이 좋은 [[가변익]]과 더 강력한 [[엔진]]의 장착으로 최대이륙중량은 5톤 가까이 늘어난 19톤, 폭장량은 2배 가량인 4톤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지상공격을 위한 각종 전자/광학 장비가 탑재되면서 Su-7에 비하면 완전히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였다. 소련 공군에서 함께 운용한 [[MiG-27]] 공격기와 비교할 때 무장 탑재량은 비슷하고 속도와 전자장비는 MiG-27보다 열세이나 기체 크기가 좀 더 크고 하드포인트가 많아 MiG-27보다 더 다양한 지상공격 무장을 탑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 실전 == [[소련]] 뿐만 아니라 [[앙골라]], [[이라크]], [[시리아]], [[예멘]], [[페루]], [[리비아]] 등의 국가에 판매된 Su-17 계열기들도 실전에 많이 참가하였으나 상대국의 전투기나 맨패즈에 격추당한 사례가 적지 않다. [[소련군]]의 Su-17들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하자 긴급투입되었으나 [[무자헤딘]]이 [[FIM-92 스팅어|스팅어]]같은 [[휴대용 대공 미사일]]을 사용하면서부터 위협을 느낀 소련군은 지상[[공격기]]에 중요한 것은 적절한 방호력이라는 것을 깨닫고 [[Su-25]]를 투입하면서 저공 정밀 공격은 Su-25가, 고공 폭격은 Su-17이 나누어 맡게 되었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Su-17은 전투손실보다는 비전투손실이 더 컸는데 [[아프가니스탄]]의 고온 환경 때문에 활주 중에 타이어가 터지거나 브레이크가 파열되어 발생한 사고가 많았다고 한다. 이후 [[MiG-27]]이 실전배치되자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어 있던 소련군의 Su-17들은 속속 교체되었다. 당시 소련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나지불라 정부군 공군도 Su-17[* 정확히는 개량형인 Su-22]을 운용했으며, 4대 이상이 소련, 파키스탄 공군기에 의해 격추당하였다. 1981년 리비아 공군의 Su-22 2기가 지중해의 시드라 만에서 [[미 해군]]의 [[F-14]]와 조우하였다. Su-22 1기가 먼저 [[K-13]]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빗나갔고 F-14가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발사해 Su-22 2기가 모두 격추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라크 공군이 운용했으며, 이란 공군 F-14에게 격추당한 사례도 있고 이란 공군 F-4를 격추한 사례도 있다. 1987년 [[리비아-차드 분쟁]] 중에 리비아 공군의 Su-22MK가 차드군이 발사한 스팅어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적이 있다. 2011년 [[리비아 혁명]] 당시 리비아 공군의 Su-22가 시민군을 상대로 많은 작전을 수행했으며 그 중 몇 대는 연합군의 공격과 사고로 손실되었다. 1992년 [[페루군]]의 Su-22가 마약 관련 작전 중이던 [[미 공군]]의 [[C-130]]을 공격한 적이 있다.[* 격추되지는 않았으나 C-130H 탑승인원 14명 중 1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당했다.] 1995년에 발발한 페루와 에콰도르의 전쟁에서는 페루군의 Su-22들이 에콰도르의 해안과 항구를 폭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 중 Su-22 2기가 에콰도르군의 [[미라주 F1]]에 격추되었다. 2003년 [[폴란드군]]의 Su-22가 아군의 지대공 미사일에 오사당하여 격추된 적이 있다. 1982년의 [[욤 키푸르 전쟁]]과 [[레바논 내전|레바논 사태]] 때 시리아 공군의 Su-20과 Su-22들이 다수 참전하였으나 [[이스라엘군]]의 전투기들과 방공전력에 의해 상당수 격추되었다. 2012년 이후 [[시리아 내전]] 기간 동안 상당수의 Su-20과 Su-22들이 반군의 [[맨패즈]]나 연합군의 전투기, 이스라엘군의 미사일에 의해 격추당했다. 2009년 이후 [[예멘 내전]] 기간 동안 예멘 공군의 Su-22들이 반군을 폭격하는데 사용되었으며 상당수 격추되었다. == 기타 == 동시대 [[소련]]이 개발/운용했던 다른 지상[[공격기]]인 [[MiG-27]]에 비해 약간 더 구형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생산되었는데 2017년 현재까지도 [[폴란드]], [[예멘]], [[베트남]], [[앙골라]], [[시리아]] 등의 나라들이 현역으로 운용 중이다. 최초 개발은 [[1960년대]]에 이루어졌지만 [[1990년대]]까지 꾸준히 생산되었기 때문에 도입시기에 따라서는 운용 기간이 비교적 짧을 수 있다. 소련 공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Su-17을 투입한 결과 성능의 한계를 느껴 [[MiG-27]]과 [[Su-25]]로 급하게 대체했지만, 그 외의 타국들에게는 15개국에 1,165기가 팔릴 정도로 Su-17 계열의 [[공격기]]들이 인기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MiG-23]]이나 MiG-27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면서도 MiG-21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능력을 가진데다가, Su-25와는 달리 공중초계 등의 공대공 임무에도 투입할 수 있는 [[전폭기]]로도 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파생형 === * Su-7IG Su-7B의 가변익 프로토타입. 향후 Su-17의 모태가 된다. * Su-17 초기 양산형. Su-7에 사용된 률카 AL-7F-3 엔진을 사용했다. 1969년부터 양산이 시작되어 1973년까지 224대가 생산됐다. * Su-17M(Su-20) Su-17의 본격적인 시작. 엔진이 률카 AL-21F-3로 교체됐으며, 쌍둥이 피토관이 설치되고 신형 항법장비, Su-7BMK에도 들어갔던 거리 측정 레이더가 통합된 컴퓨터가 탑재됐다. 이외에도 시레나-ZM RMR, 토볼 무선 나침반 등이 탑재되었다.수출형은 Su-20으로 명명. 1971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고 1972년부터 1975년까지 양산되어 본가 소련 공군 외에도 이집트, 폴란드, 시리아 등에도 수출되었다. * Su-17M2 Su-17의 첫 개량형. 기수가 약 38cm로 늘어남과 동시에 기수 앞부분을 아래로 살짝 꺾어 콕핏의 시야를 넓히고, 거리 측정 레이더를 제거한 대신 폰-1400 레이저 거리 측정기/표적 탐지기와 ASP-17, PBK-3-17 항법/계기 착륙 시스템이 탑재됐고, 기수 아래에는 DISS-7 도플러 레이더가 들어갔다. * Su-17M2D 투만스키 R-29BS-300 엔진이 장착된 시험형. 성능상 이점이 부족하고 연료 소비 증가로 인한 항속거리 감소로 수출형에만 제한되었다. 1975년에 초도 비행을 실시했고 수출형은 1977~1978년에 제조되어 Su-22란 명칭을 부여받았다. * Su-17UM Su-17M2를 기반으로 한 복좌 훈련기. 내부 연료량 감소와 기관포를 삭제하였으나 항전장비와 나머지 무장은 유지되었다. 1975년 8월에 초도비행을 실시했고 1976년부터 배치되었다. * Su-17M3 == 둘러보기 == [include(틀:제트전투기/러시아)] [include(틀:냉전/소련 항공병기)] [include(틀:냉전/동독 항공병기)] [include(틀:냉전/폴란드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우크라이나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벨라루스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폴란드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체코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슬로바키아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헝가리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베트남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카자흐스탄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이집트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시리아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앙골라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아제르바이잔 항공병기)] [include(틀:현대전/이란 항공병기)] [include(틀:항공병기 둘러보기)] == 관련 문서 == * [[항공 병기/현대전]] * [[공격기]] * [[러시아 항공우주군]] [[분류:공격기]][[분류:3세대 전투기]][[분류:항공 병기/현대전]][[분류:수호이]][[분류:소련군/장비]][[분류:폴란드군/항공기]][[분류:헝가리군/항공기]][[분류:체코군/항공기]][[분류:앙골라군/항공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