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제2차 포에니 전쟁의 전투)] [목차] == 개요 == 기원전 210년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과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의 로마군이 [[이탈리아]] 남부 아풀리아의 헤르도니아(현재 포지아)에서 맞붙은 전투. == 배경 == 기원전 211년,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가 새 집정관으로 선임되었다. [[원로원]]은 두 사람이 아풀리아로 진군하여 한니발에 대항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얼마 후 [[카푸아 공방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이탈리아의 상황이 호전되자, 원로원은 두 집정관 중 한 명이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5세]]에 대항하여 군사 작전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제비뽑기 결과 갈바가 그 역할을 맡았고, 그는 아풀리아에서 단독 지휘권을 받아 한니발과 대적했다. 켄투말루스는 한니발이 아풀리아 바깥으로 진군하지 못하도록 성공적으로 견제했으며, 기원전 210년 전직 집정관이 된 뒤에도 계속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현직 집정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함께 각각의 군대를 이끌고 헤르도니아로 향했다. 두 사람은 초기에 살라피아를 공략하고 카르타고 수비대를 섬멸했다.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여긴 그들은 계속 추격하여 말모레 시와 멜레 시를 공략하고 카르타고군 3,000명을 포로로 잡았다. 두 도시를 장악함으로써, 그들은 밀 24만 배럴과 보리 10만 배럴을 확보했다. 이에 기세 등등해진 켄투말루스는 단독으로 헤르도니아로 진격했다. 마침 헤르도니아 시민들이 한니발에게 등을 돌렸으며 조만간 로마 편으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으니, 곧 그곳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또한 한니발이 브루티움으로 간 이상 여기로 단시일에 오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판이었다. 한니발은 첩보를 통해 적의 움직임을 간파하고 헤르도니아에 먼저 들어갔고, 도시 인근에 진을 치고 적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 양측의 전력 == === 로마군 === * 지휘관: [[그나이우스 풀비우스 켄투말루스 막시무스]] * 병력: 2개 군단(2만~3만 명) === 카르타고군 === * 지휘관: [[한니발 바르카]] * 병력: 25,000명 == 전투 경과 == 헤르도니아에 도착한 켄투말루스는 눈앞에 카르타고군이 진을 치는 걸 보고, 후방에 진영을 세웠다. 한니발이 기병대를 파견해 로마군 진영을 공격한 뒤 퇴각하자, 로마군은 즉시 출격하여 전투 대형을 갖췄다. 한니발은 군대를 사열시킨 뒤 "우리가 이 전장에서 2년 전에 로마군을 물리친 걸([[1차 헤르도니아 전투]]) 떠올려라."라고 격려했다. 이후 벌어진 접전에서, 로마 보병대는 2열로 늘어서서 카르타고군의 맹공에 맞서 싸웠지만, 적 기병대가 전장을 우회하여 로마군 진영을 점령하고 후방을 강타하면서 전황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결국 로마군은 궤멸되었고, 7,000명에서 13,000명에 달하는 병사가 전사했다. 켄투말루스는 11명의 [[트리부누스 밀리툼]]과 함께 전사했다. == 전투 이후 == 한니발은 대승을 거둔 뒤 적 진영을 약탈하여 무수한 전리품을 챙긴 후 헤르도니아를 불태우고 주민들을 메타폰툼과 투리니로 옮겼다. 또한 지난날 켄투말루스와 밀통했던 헤르도니아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한편, 살아남은 로마군 장병들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와 합류했지만, 원로원은 이들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시칠리아로 보내 거기서 근무하게 했다. [[분류:포에니 전쟁]][[분류:지상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