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 개요 == 平島 [[일본의 성씨]].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가문]] [[아시카가]]의 후예로 유명하다. == 역사 == [[시조]]는 제1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동생이자 제14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데]]의 아버지, 요시아키의 숙부였던 '''아시카가 요시츠나'''(足利義維, 1509~1573).[* [[호소카와 하루모토]], 야나기가와 카타하루, [[미요시 모토나가]] 등에 의해 쇼군격으로 올려졌으나 공식적인 쇼군이 되지는 못했다.] 요시츠나는 [[사카이]] 쿠보를 자칭했으나 형인 요시하루와의 항쟁 끝에 패배하여 [[아와]]로 추방당했다. 이 후 [[에이로쿠의 변]]으로 [[아시카가 요시테루]]가 시해된 뒤 [[키나이]]에 복귀, 아들인 요시히데가 쇼군이 되었지만 직후 요시아키를 옹립한 ~~제육천대마왕~~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군에 맞서 고전 끝에 요시츠나 일족은 다시 키나이에서 아와로 쫓겨가듯 돌아갔다. [[무로마치 막부]]의 멸망 이후 요시히데의 동생인 아시카가 요시스케(足利義助, 1541~1592)는 [[조소카베 모토치카]]에 의해 [[영지(역사)|영지]]를 온존받았으나, 모토치카가 도요토미에 항복하면서 아와의 주인이 [[하치스카 이에마사]](蜂須賀家政)로 바뀐 이후로 상당수의 영지를 [[가이에키]]당하고, [[녹봉|봉록]]이 100석 언저리까지 줄어들었다. 그나마 하치스카 가문이 지원을 해주어서 굶지는 않았다(...). 요시스케의 손자 아시카가 요시츠구(足利義次, 1596~1680)때부터 아시카가 성을 히라시마로 고쳤고, [[에도 막부]]에 들어오면서 봉록은 1,000석에 살짝 못 미칠 정도로 늘어나기는 했다. 19세기 초 히라시마 가문의 당주였던 요시토모(義根)는 처우 개선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쿠시마]] [[번(제후국)|번]]을 탈번하여 [[낭인]]이 되어 [[교토]]로 이주하고, 이주 후에 아시카가 성을 다시 썼다. 그리고 요시토모의 아들인 아시카가 요시토시(足利義俊, 1795~1876)는 [[메이지 유신]] 이후 대다수의 [[쿠게]]([[공경]])와 [[다이묘]]들이 [[화족]]의 신분을 얻을 때 아시카가 쇼군가의 정통 후손임을 내세우며 그 자신도 화족의 신분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재력이 없었던데다가(...)[* 화족의 신분을 얻는 데에는 가문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재력도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당시 아무리 귀한 가문이라도 가난하면 [[남작]] 작위도 얻기 힘들었다.] 요시토모의 탈번 전력이 문제가 되어 기각되었고, 결국 교토의 시골로 귀농하여 [[평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현재 히라미사계 당주인 아시카가 요시히로(足利義弘)는 요시타카의 증손으로, 현 아시카가씨 종친회 특별 고문을 맡고 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무로마치 시대, version=209)] [[분류:성씨/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