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fff 후잔트[br]Хуҷанд}}}'''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후잔트, 높이=224px, 너비=100%)]}}} || || '''면적''' ||40㎢ || || '''인구''' ||191,000명 || || '''인구밀도''' ||4,775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타지키스탄]] 서북부 [[수그드 주]][* 타지키스탄의 주요 행정구역 중 하나이다.]에 위치해 있는 타지키스탄의 주요 도시. 대체로 과거 러시아어 표기의 영향을 받은 호젠트(Ходжент, Khodzhent 또는 Khodjent)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타지크어 기준으로는 후잔드에 더 가깝다. 타지키스탄의 [[수도(도시)|수도]] [[두샨베]]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기도 하다. == 역사 == ||[[파일:후잔트 문장.svg|width=300]] || ||후잔트 시 문장.|| [[아케메네스 왕조]]의 [[키루스 대제]]의 이름을 딴 키루폴리스(Κυρούπολις / Kyroúpolis)라는 고대 도시가 기원이다. 즉 고대부터 [[실크로드]]를 통과하는 도시 중 하나였으며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이곳에서 유명한 학자와 시인들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의 마케도니아 제국이 점령한 이후에도 도시는 유지되었고 본격적으로 더욱 개척된 시기이기도 했다. 고대 동양에서는 서역의 국가 중 하나였던 대완국의 귀산성(貴山城)이 후잔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슬람 제국 시절에는 아랍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실크로드를 구성하는 도시를 유지하면서 여러 외래 민족들과의 교류로 나름 경제가 발달하기도 했고 [[호라즘 제국]]의 거점지역으로도 번성했다. 하지만 [[몽골-호라즘 전쟁]]으로 몽골 제국이 침공하자 저항하다가 점령당했다. [[티무르 제국]] 이후 [[코칸트 칸국]]이 지배를 하면서 이곳은 코칸트 칸국의 땅이 되었다.[* [[페르가나]] 계곡을 경계로 서쪽은 우즈베키스탄의 코칸트이고, 동쪽이 타지키스탄의 후잔트이므로 가깝다.]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 일대를 침공하자 러시아 제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소련 시기인 1936년 이전까지는 러시아어식 명칭인 호젠트로 불렸으나 1936년부터는 레니나바트(Ленинабад, 타지크어로는 레니노보드·Ленинобод)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였으나 1936년 1월 10일,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1991년 [[소련 해체]]를 통하여 타지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내륙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되자 다시 타지크어식에 가까운 후잔트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타지크인 다음으로 우즈베크인들이 많기도 했는데 이는 우즈베크와 타지크의 영토분쟁이 되기도 했었다.[* 실제로 후잔트의 우즈베크인들은 타지크인들을 못마땅히 여겼고 이는 타지키스탄 내전 때에는 봉기 및 반란으로도 이어졌다. 반대로 부하라와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타지크인들이 많은 도시들이다.] [[타지키스탄 내전]]이 끝난 이후 다시 안정을 되찾았고, 최근에는 우즈베키스탄과의 협력을 맺으면서 이러한 분쟁은 미약해졌다. == 자메도시 == 자매도시로서는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아제르바이잔]]의 [[아그스타파]],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부하라]], 카자흐스탄의 [[쉼켄트]], 이란의 [[타브리즈]]와 [[니샤푸르]], 미국 [[네브래스카]] 주의 링컨 시가 있다. == 여담 == [[1999년]]에 발매된 러시아 영화 루나 파파(''Лунный папа'')가 후잔트 주변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감독은 타지키스탄 출신인 바흐티요르 후도이나자로프(Бахтиёр Худойназаров)이며 타지키스탄은 물론 우즈베키스탄과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일본, 투르크메니스탄도 제작에 도움을 주었다.] 타지키스탄의 성곽 유적지이자 후잔트를 상징하는 박물관이기도 한 [[수그드 역사 박물관]]이 있다. [각주] [[분류:후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