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8월22일 자정 무렵. 서울 후암동 다세대 주택 3층에서 갑자기 불길이 타올랐다. 용산소방서가 화재 신고를 받은 것은 10분 후. 소방대원이 화재 현장에 도착했을 때 주택 안 세 개의 방과 거실은 불기둥에 휩싸였고, 한쪽 방에선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린 아이는 다른 방을 가리키며 연신 “엄마”를 불러대고 있었다. 곧바로 소방대원은 다른 방을 뒤졌으나 아이의 엄마 김아무개씨(당시 28세)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누전이나 가스 누출의 흔적은 없었다. 대신 방 곳곳에는 발화 흔적이 남아 있었다. 특히 김씨의 머리 쪽에선 커다란 골절상이 발견됐다. 더욱이 방 안에는 옷가지가 널려 있었다. ‘누군가 김씨를 타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지른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떠올릴 만한 광경이었다. 경찰은 김씨의 주변 인물을 탐문 조사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김씨는 일본인 사업가와 동거중이었다. 일본인 사업가 사이에서 낳은 딸은 엄마의 성을 따랐다. 사건 발생 3일 후, 현장 증거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경찰은 김씨의 네 살배기 딸인 김양에게서 ‘뜻밖의’ 단서를 확보했다. 사건 다음날부터 범인에 대한 기억을 얘기하기 시작한 김양이 이날 경찰 수사진 앞에서 “엄마하고 나를 때린 아저씨는 ‘애기아저씨’”라는 말을 털어놓은 것. 아이의 얘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경찰은 곧바로 새로운 용의자를 찾아 나섰다. 그 과정에서 김양은 “그 아저씨가 엄마 목을 졸랐다”, “아저씨는 낮에도 오고 밤에도 왔다”, “아저씨 집에 갔는데 애기도 있었다”라며 사건 전후의 상황을 더욱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9월7일 김양은 “애기아저씨는 하얀 옷 입었어. 머리는 짧았어. 점 있는 아저씨. 점이 하나 있었어”라며 범인의 인상착의도 상세히 떠올렸다. 경찰은 곧 이아무개씨(당시 32세)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이씨가 사망한 김씨에게 8백만원을 차용한 사실이 있고, 김양의 진술과 비슷한 외모인 데다 슬하에 어린 아이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씨가 “내 장모와 사망한 김씨의 모친이 서로 친하나, 나와 김씨는 장모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아는 사이”라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는 데다 현장에서도 이씨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뚜렷한 추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사건은 결국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후 경찰은 약 2년여간 검찰과 이씨의 혐의 인정 여부를 놓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경찰은 김양의 진술이 상당한 신빙성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이씨가 살인·방화범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검찰은 어린 아이의 진술은 증거로 채택하기 어렵다며 경찰의 영장 신청을 연달아 기각시켰던 것이다. 검찰의 재조사 지시를 받고 보강수사에 들어간 경찰은 결국 일본으로 간 김양을 다시 불렀다. 김양은 경찰의 신문에서 “엄마와 나를 때린 아저씨는 애기 아저씨다. 애기아저씨가 불을 질렀다”며 2년 전 말한 내용을 똑같이 진술했다. 경찰은 “애기아저씨가 불을 지르기 전에도 집에 온 적이 있었다”는 김양의 추가 진술을 확보하고, ▲사건 당시 이씨가 머리, 목, 팔, 겨드랑이, 가슴 부위에 긁힌 상처가 있었다는 점과 ▲이씨가 김씨로부터 돈을 빌려 카드사용대금을 일부 변제하였음에도 다시 카드 사용대금 채무가 1천만원으로 늘어났고, 이씨의 카드대금 연체로 김씨의 차명 예금통장이 지불 정지된 정황도 추가해 구속영장을 다시 신청했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빚을 진 이씨가 사건 직전 김씨로부터 빚 독촉을 받은 사실까지 확인되자 이씨를 사건 발생 2년 만에 살인 및 방화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에서도 이씨는 결백을 주장했다. 이씨는 사건 당일 오후 9시쯤 햄버거를 사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받고 남영동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샀으며, 곧이어 과일과 소고기 등을 구입한 뒤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게임을 했다며 경찰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검찰은 이씨가 뒤늦게 자신이 사온 햄버거를 아내가 먹었다고 진술한 점 등 이씨와 이씨 아내의 진술이 불일치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결정적인 추가 증거 확보에는 실패한 채 1심 재판을 맞게 됐다. 1심 재판부는 이씨의 진술과 사고 직후 머리, 목 등에서 발견된 상처, 그리고 김씨와의 관계 등을 철저하게 검증했다. 일단 재판부는 사건 당시 행적에 대한 이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검찰 의견과 마찬가지로 ▲당초 이씨가 자신이 사온 햄버거를 어떻게 했는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하지 않다가, 98년 10월20일에서야 아내가 햄버거를 먹었다고 진술한 점 ▲96년 8월27일 작성한 이씨 아내의 진술 조서에서 사건 당일 남편 이씨에게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한 내용이 나타나지 않은 점 ▲98년 11월11일에서야 아내가 남편이 사온 햄버거를 먹었다는 내용을 진술한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상처에 대해서도 이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러 상처가 사건 무렵에 각각 다른 경위로 동시에 발생하였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이씨가 사건 당시 왼쪽 눈썹 부위에 멍이 생긴 경위에 대해 적절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한 점을 들어 이씨의 상처는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네 살짜리 아이의 진술을 이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잣대로 판단하고 있던 재판부는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딪혔다. 재판에 출석한 김양이 경찰 조사 때와는 달리, 사건 당시 상황을 묻는 신문에 “모른다”고 하거나 처음과는 다른 내용을 진술한 것. 99년 1월2일 법정에 나온 김양은 일본어 통역을 통해 먼저 검사의 신문을 받았다. 아버지를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말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김양은 검사의 신문에 이렇게 답했다. 검사: 애기아저씨가 낮에 놀러온 적도 있어? 김양: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