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2A3C 2%, #F09C68 2%, #F09C68 4%, #5F5596 4%, #5F5596 6%, #E62A3C 6%, #E62A3C);" {{{#ffec4b '''후안데 라모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folding ▼ ||<-4> {{{#333333,#cccccc '''둘러보기 틀 모음'''}}} || ||<-4> {{{#333333,#cccccc '''대표팀'''}}} || || || || || || ||<-4> {{{#333333,#cccccc '''클럽'''}}} || || [[틀: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감독|[[파일: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9655; font-size: 0.9em;" [[틀: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감독|{{{#fff '''베티스'''}}}]]}}}[br]{{{-2 90대}}} || [[틀:RCD 에스파뇰 감독(41대~80대)|[[파일:RCD 에스파뇰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066a9; font-size: 0.9em;" [[틀:RCD 에스파뇰 감독(41대~80대)|{{{#ffffff '''에스파뇰'''}}}]]}}}[br]{{{-2 67대}}} || [[틀:세비야 FC 감독(41대~80대)|[[파일:세비야 FC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 font-size: 0.9em;" [[틀:세비야 FC 감독(41대~80대)|{{{#eb2626 '''세비야'''}}}]]}}}[br]{{{-2 68대}}} || [[틀:토트넘 홋스퍼 FC 감독|[[파일:토트넘 홋스퍼 FC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0B1C56; font-size: 0.9em;" [[틀:토트넘 홋스퍼 FC 감독|{{{#ffffff '''토트넘'''}}}]]}}}[br]{{{-2 36대}}} || || [[틀:레알 마드리드 CF 감독|[[파일:레알 마드리드 CF 로고.svg|height=50]]]][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FFFFFF; font-size: 0.9em;" [[틀:레알 마드리드 CF 감독|{{{#fcaf17 '''레알 마드리드'''}}}]]}}}[br]{{{-2 57대}}} || [[틀:PFC CSKA 모스크바 감독|[[파일:PFC CSKA 모스크바 로고.svg|height=55]]]][br]{{{#!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 #E21921; font-size: 0.9em" [[틀:PFC CSKA 모스크바 감독|{{{#f3be16 '''CSKA'''}}}]]}}}[br]{{{-2 38대}}} || || || }}}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스페인의 축구감독 '''}}}}}}}}} || ||<-3> [[파일:koreanhln_juanderamos_r5j2nc0iixja17jy5olfa5p1e-726x400.jpg|width=100%]] || ||<-2> {{{#000000,#e5e5e5 ''' 이름 ''' }}} || {{{+1 '''후안데 라모스'''}}}[br]'''Juande Ramos''' || ||<-2> {{{#000000,#e5e5e5 ''' 본명 ''' }}} ||후안 데라크루스 라모스 카노[br]Juan de la Cruz Ramos Cano[*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군|로망어]]와 [[게르만어파|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 ||<-2> {{{#000000,#e5e5e5 ''' 출생 ''' }}} ||[[1954년]] [[9월 25일]] ([age(1954-09-25)]세) / [br] {{{-1 [[스페인]] 시우다드레알주 페드로무뇨스}}} || ||<-2> {{{#000000,#e5e5e5 ''' 국적 ''' }}} ||[include(틀:국기, 국명=스페인)] || ||<-2> {{{#000000,#e5e5e5 ''' 신체 ''' }}} ||[[키(신체)|키]] 173cm || ||<-2> {{{#000000,#e5e5e5 ''' 직업 ''' }}} ||축구선수([[미드필더]] / ^^은퇴^^)[br][[축구감독]] || ||<|2>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엘체 CF]] (1973~1977)[br][[CD 알코야노]] (1977~1979)[br][[리나레스 데포르티보|CD 리나레스]] (1979~1980)[br]CD 엘덴세 (1980~1981)[br]알리칸테 CF (1981~1982)[br]CD 데니아 (1982~1983) || || {{{#000000,#e5e5e5 ''' 감독 ''' }}} ||[[엘체 CF|엘체 일리시타노]] (1990~1992)[br]CD 알코야노 (1992~1994)[* 네이버 정보에는 AD 알코르콘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영어위키나 과거 존재했던 후안데 라모스 홈페이지의 경력란에 의거하면 알코야노가 맞는것으로 보인다.[[https://web.archive.org/web/20071028155254/http://www.juanderamos.com/index.php?s=lang%2Fen%2Fbiografia.html&sel=ms2&hl=en|아카이브]]][br][[레반테 UD]] (1994~1995)[br]CD 로그로녜스 (1995~1996)[br][[FC 바르셀로나 B]] (1996~1997)[br]UE 예이다 (1997~1998)[br][[라요 바예카노]] (1998~2001)[br][[레알 베티스 발롬피에]] (2001~2002)[br][[RCD 에스파뇰]] (2002)[br][[말라가 CF]] (2003~2004)[br]'''[[세비야 FC]] (2005~2007)'''[br]'''[[토트넘 홋스퍼 FC]] (2007~2008)'''[br][[레알 마드리드 CF]] (2008~2009)[br][[PFC CSKA 모스크바]] (2009)[br][[FC 드니프로]] (2010~2014)[br][[말라가 CF]] (2016) || [목차] [clearfix] == 개요 == [[스페인]]의 [[축구선수]] 출신 [[코치(스포츠)|감독]]. [[2016년]]에 [[말라가 CF]] 감독을 맡았다. 28살의 이른 나이에 부상으로 은퇴하고 하부리그부터 감독 커리어를 쌓아 [[UEFA 유로파 리그|UEFA컵]] 트로피를 들어올리고 결국에는 [[레알 마드리드 CF]]라는 세계구급 빅클럽의 감독직까지 따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또한 무관으로 유명한 토트넘에서 21세기에 부임한 감독 중 유일하게 토트넘 커리어를 유관으로 마무리한 감독이자, 다니엘 레비 회장 체제에서 유일하게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독이다. == 선수 경력 == [[엘체 CF]]에서 데뷔했으나 오래 뛰지 못하고 하부리그를 전전했으며, 무릎 부상으로 인해 28세의 나이에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었다. == 감독 경력 == 은퇴 후 [[엘체 CF]]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0년 엘체의 B팀인 엘체 CF 일리시타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92년 CD 알코야노에서 본격적으로 1군 팀 감독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레반테 UD]], CD 로그로녜스에서 감독을 맡았고 로그로녜스에서는 [[세군다 디비시온]] 2위를 기록해 [[FC 바르셀로나 B]]팀에서 감독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1년만에 팀을 나와 UE 예이다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1년 후 [[세군다 디비시온]]에 있던 [[라요 바예카노 데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해 첫 시즌에 리그 우승을 일궈내며 [[라리가]] 승격에 성공했고, 승격 첫 해에는 시즌 중반까지 리그 선두를 질주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아쉽게도 후반기에 힘이 떨어지며 리그 9위로 시즌을 마감했지만 페어 플레이 랭킹에 따라 [[UEFA 유로파 리그|UEFA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거머쥐었으며, 이어진 2000-01 시즌에는 리그 순위는 14위[* 더구나 강등당했던 18위 [[레알 오비에도]]와의 승점차는 단 2점차였다. 이 해는 리그 최하위 [[CD 누만시아]](39점)와 12위 [[아틀레틱 클루브]](43점)간 승점차가 단 4점밖에 나지 않았을 정도로 강등권 경쟁이 치열한 시즌이었다.]에 그쳤으나 [[UEFA 컵]]에서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FC 지롱댕 드 보르도]] 등을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라요에서의 성공 이후 후안데 라모스를 영입한 팀은 [[레알 베티스 발롬피에]]였다. 베티스는 90년대 중반 로렌소 세라 페레르 감독 하에서의 성공적인 나날들 이후 하락세를 타더니, 급기야 1999-00시즌에는 시즌 내내 부진하다가 결국 18위로 강등을 당하는 고통까지 겪었다.[* 당시 베티스를 이끌던 카를로스 그리구올 감독 하에서 리그 16위를 기록하던 베티스는, 그리구올 경질 이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했으나 오히려 성적이 18위까지 떨어지며(...) 강등 위기에 직면했다. 결국 시즌 종료 직전 히딩크를 경질하고 파루크 하지베기치 감독을 선임하나 강등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 CF]]에 이어 베티스에서도 실패를 겪으며 커리에어 적잖은 타격을 입은 히딩크는 이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위기감을 느끼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동아시아의 어떤 나라]]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그 기적이었다.]]'''] 2000-01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절치부심해서 승격을 이루어낸 베티스는 팀을 도약시키기 위해 라모스를 영입했고, 라모스는 베티스를 6위에 올려놓으며 팀에게 UEFA 컵 1라운드 진출 티켓까지 안겨주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이후 [[RCD 에스파뇰]]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에스파뇰에서 단 3개월만 팀을 이끌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이후 휴식을 취하다가 2003년 여름 [[말라가 CF]]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팀 순위를 지난 시즌 13위에서 10위로 끌어올렸다. 말라가에서의 1년이 끝난 후 한동안 감독직을 맡지 않다가 2005-06시즌을 앞두고 [[세비야 FC]]의 지휘봉을 잡은 후안데 라모스는 임대로 데려온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주포 [[프레데릭 카누테]]라는 강력한 공격 자원들을 바탕으로 리그에서 6위를 기록하고 [[UEFA 유로파 리그|UEFA컵]]에서는 [[릴 OSC]],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FC 샬케 04]]를 연달아 격파하더니 결승에서는 [[미들즈브러 FC]]를 4:0으로 대파하고 UEFA 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어진 2006-07시즌에는 사비올라가 바르샤로 돌아갔으나 카누테가 리그에서 21골을 기록하며 [[호나우지뉴]]와 함께 리그 득점 3위에 랭크되는 기염을 토하며 리그 3위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냈으며, UEFA 슈퍼컵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3:0으로 격침하고 [[코파 델 레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UEFA 컵]]에서는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안드레스 팔롭]]이 PK 3개를 막아내는 활약을 보여주며 2회 연속 우승을 기록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2007년 유럽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이후 2007-08시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레알 마드리드 CF]]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으나, [[안토니오 푸에르타]]의 비극적인 사망과 [[UEFA 슈퍼컵]] 준우승을 기록하며 팀 분위기가 저하되었다. 거기에 라모스는 시즌 시작 전부터 [[토트넘 홋스퍼 FC]]의 러브콜을 꾸준히 받고 있었는데, 시즌 시작 전에는 제안을 거절했으나 결국 10월 25일, [[마틴 욜]] 토트넘 감독이 [[경질]]되었고, 2일 후 후안데 라모스의 토트넘 부임이 발표되었다. 당시 [[마틴 욜]] 체제 하에서 심각한 수비 붕괴를 겪으며 18위까지 밀려나있던 토트넘은 라모스 부임 이후 수비 안정감을 어느정도 되찾으며 중위권으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풋볼 리그 컵|칼링컵]]에서 승승장구하며 준결승에 진출, [[북런던 더비]] 라이벌 [[아스널 FC]]를 만나 원정 1차전에서 1:1로 비기고 홈 2차전에서 '''5:1''' 대승을 거두면서 결승에 진출했으며, 결승전에서는 [[첼시 FC]]를 만나 [[디디에 드록바]]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으나 후반에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페널티킥 동점골을 기록하고 연장전에서 [[조너선 우드게이트]]의 결승골이 터지며 칼링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여담으로 이 우승컵 이후로 토트넘은 우승을 하지 못하고 있다.] [[UEFA 유로파 리그|UEFA컵]]에서도 조별리그를 2위로 통과하고 32강에서 [[SK 슬라비아 프라하]]를 격침시키며 16강에 진출했으나, 16강에서 [[PSV 에인트호번]]을 만나 승부차기 끝에 석패하며 아쉽게 탈락했다. 그래도 충분히 희망적인 시즌을 보냈고 리그컵 우승으로 내년 시즌 UEFA 컵 진출 티켓까지 따내면서 이제 라모스 체제 하 토트넘에 대한 기대감이 본격적으로 꽤나 높아졌다. 2008-09 시즌을 앞두고 [[루카 모드리치]], [[에우렐류 고메스]], [[데이비드 벤틀리]],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로만 파블류첸코]], [[베드란 촐루카]] 등을 폭풍영입했다. 그러나 [[로비 킨]]과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한꺼번에 떠나며 득점력이 빈약해졌고 2008-09 시즌 개막 후 8경기 2무 6패를 기록하는 극도의 부진에 빠지며 팀이 최하위로 처지자 10월 25일 [[해임]]되었다(...). 조금 위를 다시 읽어보면 알겠지만 라모스 직전 토트넘 감독이던 마틴 욜도 10월 25일에 해고되었으니, 참 묘한 결말. 또한 라모스는 재임 시기 [[이영표]]를 잘 기용하지 않아서 국내 팬들이 라모스 감독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당연히 이영표에 대해 모종의 감정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었고 이영표와 별다른 불화도 없었다. 다만 이영표는 당시 이미 30줄이 넘긴 시점이라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었던 데다가 이 시점 토트넘의 리그 성적이 부진한 데에 당시 주전으로 뛰었던 이영표의 경기력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순 없었던 탓도 있다. 젊은 선수였다면 그래도 포지션 경쟁 차원에서 로테이션이라도 굴려볼 만했지만 그러기엔 이영표는 신체능력이 하락하기 시작하던 시점이라 계속 굴릴 순 없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드리아누 코헤이아]], '''[[다니 알베스]]'''라는 수준급의 풀백들을 지도해봤던 탓에 공격력이 애매한 이영표를 기용하는 것도 좀 성에 안 찰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봤을 때 이영표의 수비력도 준수한 편이긴 해도 리그 탑급은 아니었기에 대체 불가 수준도 아니었다.] 그런 라모스에게 러브콜을 보낸 팀은 다름아닌 '''[[레알 마드리드 CF]]'''였다. 당시 [[베른트 슈스터]] 감독이 이끌던 레알은 리그에서 [[세비야 FC]]에게 3:4로 지는 등 5위로 처지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테 보리소프]]에게 진땀승을 거두고, [[유벤투스 FC]]와의 2연전을 모두 내주는 등 기세가 좋지 않아 결국 슈스터 감독이 짤린 상황이었다. 라모스는 부임 이후 18경기에서 승점 52점을 쓸어담고 1위를 질주하던 [[FC 바르셀로나]]와의 격차를 좁혔으나,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6강에서 [[리버풀 FC]]를 만나 2경기 합산 스코어 0:5라는 부진한 경기력으로 광탈했고, 그나마 가망이 보이던 리그에서도 후반기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6으로 패하는 대참사를 겪은 이후 4연패 늪에 빠지며 바르샤와 9점차로 벌어진 채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으며, 그 여파로 재계약에도 실패하며 시즌 종료와 함께 레알을 떠나야했다. 레알 이후 2009년 여름, [[지쿠]]의 후임으로 [[CSKA 모스크바]]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부진 끝에 2009년 '''10월 25일''' 경질되었다. 토트넘 시절의 데자뷰가 느껴진다면 [[기분 탓]]이다. 이후 2010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팀 [[FC 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4시즌 동안 76승 30무 29패를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고 2013-14 시즌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이후 계약 만료와 함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재계약을 포기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드니프로의 재정난으로 인해 봉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참고로 14-15 시즌 [[UEFA 유로파 리그]] 결승전까지 진출하며 화제가 됐던 드니프로는 이 재정 문제로 인해 16-17 시즌부터 UEFA 주관대회 출전 금지 징계를 먹었고, 리그에서도 16-17 시즌을 끝으로 3부 리그로 강등당하였고, 2018년 여름에는 아마추어 리그로의 강등까지 결정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이후 2016년 5월 24일, [[하비 그라시아]] 감독의 후임으로 오랜만에 [[말라가 CF]]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코파 델 레이]]에서 [[코르도바 CF]]에 패해 탈락한 이후 2016년 12월 22일 사임한다는 소식이 들렸고, 27일 자로 공식적으로 사임이 발표되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종료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후보군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는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2019년 [[김판곤]] 선임위원장이 밝히기를, 라모스 산하 스태프들에게 실망이 컸다고 한다. 라모스 감독은 2016년에 말라가에서 사임한 뒤 따로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라모스 사단은 공중분해되었고, 그 자리를 경험이 일천한 인물들이 채운 상태였는데 [* 심지어 몇몇 스태프는 빅리그 경험도 전무했다고 한다.] 여기에 너무 시대에 뒤떨어지는 전술이나 스타일, 확실하지 못한 느낌이 계약 포기의 요인이 되었다고 한다. [각주] [[분류:1954년 출생]][[분류:스페인의 축구선수]][[분류:스페인의 축구감독]][[분류:엘체 CF/은퇴, 이적]][[분류:리나레스 데포르티보/은퇴, 이적]][[분류:CD 알코야노/은퇴, 이적]][[분류:CD 엘덴세/은퇴, 이적]][[분류:알리칸테 CF/은퇴, 이적]][[분류:토트넘 홋스퍼 FC/역대 감독]][[분류:레알 마드리드 CF/역대 감독]][[분류:말라가 CF/역대 감독]][[분류:라요 바예카노/역대 감독]][[분류:UEFA 유로파 리그 다회 우승 감독]][[분류:미드필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