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레젠다리움/인간]][[분류:레젠다리움/세력 및 단체]] || '''{{{#C0C0C0 {{{+5 House of Húrin}}}[br]섭정 가문}}}''' || ||<#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후린가문 인장.png|width=100%]]}}} || ||<#FFF> [[곤도르]] 섭정의 인장[* [[텡과르]]로 r nd r을 나타내는 문장이며, 별로 치환되어 있는 모음을 적절히 넣으면 아란두르(Arandur). 즉, 집사(섭정)라는 의미가 된다.] || [목차] == 소개 == [[레젠다리움]]에 등장하는 가문. [[누메노르]] 출신의 명문가로 시조는 남 [[이실리엔]]의 [[에뮌 아르넨의 후린]]이다.[* 이로 인해 가문의 정확한 명칭은 '후린 가문'이다.] [[미나르딜]]왕 이후 섭정직은 후린과 그 자손들이 계승하였고, [[곤도르]]의 왕통이 단절된 이후로 이 가문이 곤도르를 통치하였다[* [[https://blog.naver.com/numenorian07/222680888419|이들이 곤도르의 통치권을 찬탈했다는 해석이 있다.]] 다만 해당 글은 후린 가문이 흑막이란 걸 전제로 서술하고 있는 점을 주의하자. [[친족분쟁]] 이후 왕이 다른 왕족들을 숙청한 공백을 틈타 후린 가문이 세습섭정으로 성장했다는 부분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나머지는 억지에 가깝다.]. 마지막 섭정 [[데네소르 2세]]를 끝으로 통치 섭정의 시대는 끝나고 다시 [[아라고른 2세|국왕]]이 다스리는 시대가 돌아왔다. 후린 가문이 섭정직을 계승할 수 있었던 건 가문이 곤도르인들 가운데서도 누메노르의 혈통이 가장 짙었기 때문이다. 후린 가문의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12대 섭정 키리온의 치세 때 에오세오드인들과의 인연을 계기로 [[로한(가운데땅)|로한]]의 건국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들과 확고한 동맹 관계를 체결한 것이다. 이 동맹은 후일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사우론의 수하들에 의해 나라가 여러 차례 멸망할 뻔할 때마다 곤도르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역할을 톡톡히하게 된다. 그 외 특징으로는 후린 가문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제1시대]]에 활동했던 영웅들이나 전설적인 사람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 통치 섭정 이전 세대 == * [[에뮌 아르넨의 후린]]: [[미나르딜]]왕 시기의 섭정. 이후 왕들은 항상 후린의 가문에서 섭정을 선출하였다. * [[펠렌두르]]: [[아르베두이]]의 왕위 계승 주장을 묵살하고 곤도르의 마지막 국왕인 [[에아르누르]]를 추대한 섭정이자 [[권신]]이다. * [[보론딜]]: 펠렌두르의 아들. [[오로메]]의 들소를 사냥해 그 뿔로 나팔을 만들었는데 이는 가보로 전해지게 되었다. 그의 아들인 [[마르딜 보론웨|마르딜]]은 최초의 통치 섭정이 되었다. == 역대 통치 섭정들 == * 왕이 다스리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곤도르의 최초 섭정은 [[로멘다킬 1세]]시절 제정되었으며 세습이 아니었으나 후린 이후로는 세습으로 바뀌었다. 이후 펠렌두르, 보론딜을 거쳐 [[에아르누르]]가 실종되어 왕위가 공석이 된 제3시대 2050년부터 반지전쟁이 끝나는 제3시대 3019년까지 섭정들이 곤도르를 다스리게 된다. * 편의상 통치 섭정들을 아래에 기록하며, 마르딜을 초대 통치섭정으로 간주함. ||<#000000> {{{#ffffff ''''''}}} ||<#000000> {{{#ffffff '''역대 섭정'''}}} ||<#000000> {{{#ffffff '''즉위년일'''}}} ||<#000000> {{{#ffffff '''퇴위년일'''}}} ||<#000000> {{{#ffffff '''재위 기간'''}}} ||<#000000> {{{#ffffff '''주석'''}}} || || 1대 || [[마르딜]] || 제3시대 2050년 || 제3시대 2080년 || 30년 ||[* 통치 섭정의 시조. 보론딜의 아들.][* 마르딜의 통치 이후 제3시대 2460년까지는 그럭저럭 평화가 지속되었다.] || || 2대 || [[에라단]] || 제3시대 2080년 || 제3시대 2116년 || 36년 || || || 3대 || [[헤리온(가운데땅)|헤리온]] || 제3시대 2116년 || 제3시대 2148년 || 32년 || || || 4대 || [[벨레고른]] || 제3시대 2148년 || 제3시대 2204년 || 56년 || || || 5대 || [[후린 1세]] || 제3시대 2204년 || 제3시대 2244년 || 40년 || || || 6대 || [[투린 1세]] || 제3시대 2244년 || 제3시대 2278년 || 34년 || || || 7대 || [[하도르(곤도르)|하도르]] || 제3시대 2278년 || 제3시대 2395년 || 117년 || [* 가장 오래 다스린 섭정이다.] || || 8대 || [[바라히르(곤도르)#s-2|바라히르]] || 제3시대 2395년 || 제3시대 2412년 || 17년 || || || 9대 || [[디오르(곤도르)|디오르]] || 제3시대 2412년 || 제3시대 2435년 || 23년 || || || 10대 || [[데네소르 1세]] || 제3시대 2435년 || 제3시대 2477년 || 42년 || || || 11대 || [[보로미르(섭정)|보로미르]] || 제3시대 2477년 || 제3시대 2489년 || 22년 ||[* 계승자 시절, [[오스길리아스]]에서 [[나즈굴]]을 격퇴했는데 여기서 부상을 입어 오래 통치하지 못하고 죽었다.~~근데 그게 20년이 넘어~~] || || 12대 || [[키리온(가운데땅)|키리온]] || 제3시대 2489년 || 제3시대 2567년 || 78년 ||[* 그의 재위 시기에(제3시대 2510년) 에오세오드인들이 [[칼레나르돈]]에 들어와 정착했다. 그들은 키리온을 도왔고 키리온은 기꺼이 [[에오를]]에게 칼레나르돈을 하사해 나라를 세우게 해주었다. 그 나라의 이름은 '''[[로한(가운데땅)|로한]]'''이 되었다.] || || 13대 || [[할라스]] || 제3시대 2567년 || 제3시대 2605년 || 28년 || || || 14대 || [[후린 2세]] || 제3시대 2605년 || 제3시대 2628년 || 23년 || || || 15대 || [[벨렉소르 1세]] || 제3시대 2628년 || 제3시대 2655년 || 27년 || || || 16대 || [[오로드레스(곤도르)|오로드레스]] || 제3시대 2655년 || 제3시대 2685년 || 30년 || || || 17대 || [[엑셀리온 1세]] || 제3시대 2685년 || 제3시대 2698년 || 13년 ||[* [[미나스 티리스]]의 백색탑을 보수한 섭정으로, 이 때부터 백색탑은 엑셀리온의 백색탑으로 불리게 된다.] || || 18대 || [[에갈모스(곤도르)|에갈모스]] || 제3시대 2698년 || 제3시대 2743년 || 45년 || || || 19대 || [[베렌(곤도르)|베렌]] || 제3시대 2743년 || 제3시대 2763년 || 20년 || || || 20대 || [[베레곤드(섭정)|베레곤드]] || 제3시대 2763년 || 제3시대 2811년 || 48년 || || || 21대 || [[벨렉소르 2세]] || 제3시대 2811년 || 제3시대 2872년 || 61년 || [* 그가 서거하자 [[텔페리온#님로스|님로스]] 역시 시들어 버렸고, [[엘렛사르 텔콘타르]] 왕이 돌아오기 전까지 새로운 묘목이 자라지 않았다.] || || 22대 || [[소론디르]] || 제3시대 2872년 || 제3시대 2882년 || 10년 || || || 23대 || [[투린 2세]] || 제3시대 2882년 || 제3시대 2914년 || 32년 || || || 24대 || [[투르곤(곤도르)|투르곤]] || 제3시대 2914년 || 제3시대 2953년 || 39년 || || || 25대 || [[엑셀리온 2세]] || 제3시대 2953년 || 제3시대 2984년 || 31년 || || || 26대 || [[데네소르 2세]] || 제3시대 2984년 || 제3시대 3019년 || 35년 ||[* 사실상 마지막 통치 섭정. 그의 뒤를 이어 통치 섭정이 된 [[파라미르]]가 바로 [[아라고른 2세|아라고른]]에게 통치권을 반환했다. 그 후에도 섭정 지위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기에 섭정 가문으로서의 영향력은 제4시대에서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