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한 황후)] ||<-2> '''{{{#ece5b6 후한의 황후[br]{{{+1 孝靈皇后 | 효령황후}}}}}}''' || || '''[[시호|{{{#ece5b6 시호}}}]]''' ||<(> 없음 || || '''{{{#ece5b6 별칭}}}''' ||<(> 폐후(廢后) || || '''[[성씨|{{{#ece5b6 성씨}}}]]''' ||<(> 송(宋) || || '''{{{#ece5b6 출생}}}''' ||<(> 미상 || || '''{{{#ece5b6 사망}}}''' ||<(> 178년 || ||<|2> '''{{{#ece5b6 재위}}}''' ||<:> '''{{{#fff 후한의 황후}}}''' || ||<:> 171년 ~ 178년 || || '''{{{#ece5b6 부군}}}''' ||<(> [[영제(후한)|영제]](靈帝) || || '''{{{#ece5b6 부친}}}''' ||<(> [[송풍]](宋酆) || [목차] [clearfix] == 소개 == [[후한]] [[영제(후한)|영제]]의 첫 번째 황후이자 폐위된 황후다. [[폐위]]된 황후라서 [[시호]]가 없고 효령황후는 시호가 아니라 [[존호]]다.[* 존호는 [[소헌황후 하씨]], [[효인황후 동씨]], [[경황후 주씨]]의 사례처럼 부군의 시호를 중복해서 쓴다.] 이름은 전하지 않으며 옹주 부풍군 평릉현 사람으로, 장제귀인 송씨의 종증손녀다. == 생애 == 영제 건녕 3년에 간택되고 액정으로 입궁하여 귀인이 되었으며, 다음해에 황후로 세워졌다. 아버지 [[송풍]]은 집금오(執金吾)로 임명되고 불기향후(不其鄉侯)로 봉해졌다. 황후는 영제의 총애를 받지 못해 그저 황후의 지위를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고, 실제로 총애받는 여러 후궁들에게 참소를 당하고 있었다. 당초 중상시(中常侍) [[왕보(후한)|왕보]](王甫)가 당시 환관 중에 실세로서, 황족인 발해왕(勃海王) [[유회#s-1|유리]](劉悝)[* 유회라고도 한다. 선황 [[환제(후한)|환제]]의 [[동생]].]를 참소하여 주살한 일이 있었는데, 발해왕비 송씨도 옥중에서 죽었다. 그런데 발해왕비가 송황후의 고모였다. 이 때문에 왕보는 황후가 고모의 일로 원망을 품고 자신을 해치리라 생각해서 선수를 쳤다. 황후가 저주를 행하고 있다고 모함한 것이다. 영제는 이 모함을 신뢰하였고, 광화 원년에 책서를 내려 황후의 새수(璽綬)를 거두니 스스로 폭실(暴室)[* 궁정 내 감옥이다.]로 가 있다가 걱정 속에 병이 나서 사망하였고, 아버지와 형제 모두 연좌되어 주살되었다. 참고로 이 때 [[조조]]의 친척도 연루되어 억울하게 처형당하며 조조는 관직에서 쫒겨났고 조조가 한실에 대해 충성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니냐는 [[https://mkan.china.com/article/1175368.html&|추측]]이 있다. 궁에서 황후를 가까이 시봉하였던 상시와 소황문들은 모두 송황후와 그 가문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을 가련히 여겨, 십시일반으로 재물을 각출하여 장사지내 주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후한서)] [[분류:후한의 황후]][[분류:178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