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남양 홍씨(토홍)]][[분류:화성시 출신 인물]][[분류:1888년 출생]][[분류:1945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분류: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운동가|{{{#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br] {{{#ffffff '''{{{+1 홍준옥}}}'''[br]'''洪㻐玉'''}}}}}} || ||<-2> [[파일:홍준옥.jpg|width=300]] || || '''본관''' ||[[남양 홍씨]][* 토홍계 23세. 조카 홍진후가 24세 후(厚) 항렬을 쓰고 있다.[[http://m.kyeongin.com/view.php?key=20180222010008035|#]]] || ||<|2> '''출생''' ||[[1888년]] [[7월 25일]] || ||[[경기도]] [[화성시|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br](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화성)|송산면]] 사강리) || ||<|2> '''사망''' ||[[1945년]] [[11월 8일]] || ||[[경기도]] [[화성시|수원군]] || ||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홍준옥은 1888년 7월 25일 경기도 남양도호부 수산면 사강동(현 화성시 송산면 사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6일 송산면 사무소에서 200여 명의 독립만세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사강 장날인 28일에도 형 홍면(洪冕)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 송산면 뒷산에서 1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대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코오조오(野口廣三)이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군중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노구치는 주동자 홍면 외 2명을 체포하여 꿇어 앉혀 놓았는데, 갑자기 홍 면이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야구광삼이 권총을 발사하여 총알이 홍 면의 어깨를 관통하였다. 이 때 그는 형을 업고서 면사무소로 가서 응급조치를 하며 형에게 발포한 일본인 수사를 죽이라고 부르짖었다. 당시 면사무고 서기였던 [[문상익]]이 뛰쳐나가서 그 순사를 죽이라고 외치자, 사태의 위급함을 느껴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 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하는 일경을 추격했다. 그도 즉시 뛰어나와 형의 장인인 김명제(金命濟)와 [[김교창]], [[왕광연]], 김용준(金容俊) 등과 함께 추격하여 미처 주재소에 도착하지 못한 노구치를 도로에서 포위하여 투석으로 격살시켰다. [[파일:홍준옥2.png]] || [[서대문형무소]]에서 촬영된 사진 ||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수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11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홍준옥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87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