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FFFFFF {{{+1 홍세민}}}[br]洪世旻 | Hong Sae-min}}}'''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흙에살리라 고향처녀 앨범.jpg|width=100%]]}}} || ||<|2> '''출생''' ||[[1950년]] || ||[[전라남도]] [[해남군]] || || '''사망''' ||[[2021년]] [[11월 30일]] (향년 71세) || || '''학력''' ||[[동양공업전문대학]] {{{-2 ([[전기과]] / [[전문학사]])}}} || || '''데뷔''' ||[[1971년]] '정 두고 떠난 사람'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 생애 == 1970년대 당시 인기가 많았던 가수로 1950년에 태어난 홍세민은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동양공업전문대학]] 전기과를 졸업했다. 1971년, 노래 '정 두고 떠난 사람'으로 가수에 데뷔하여 오래 무명 생활을 지내며 많은 곡을 냈는데 이중에 1973년에 낸 '흙에 살리라'가 히트를 치게 돼서 인기가 많아지게 됐다. 본인도 곡중에 대히트를 치게 된 '흙에 살리라'를 가장 좋아했다. 흙에 살리라가 2006년, [[한국방송공사|KBS]] [[가요무대]]가 선정한 35주년 기념 방송 횟수 집계 애창곡 100선에서는 47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왜 말 못 해, 나의 생각, 잊지 못해요, 등대지기 등이 그의 대표곡이었다. 그의 곡들은 대부분 1960~70년대 산업화 흐름 속에 고향을 떠나 도시를 향했던 젊은이들을 위로하며 향수와 함께 묵직한 울림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굉장히 흐뭇해 했다. [[코로나19]]의 상황에서도 왕성히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활동하였다. === 사망 === [[2021년]] [[11월 30일]]에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자택에서 향년 71세로 사망했는데, 사망 소식이 뒤늦게 12월 8일에 알려졌다. 사망 후 경황이 없어 주변에서만 알렸고, 장례도 다 치렀다고 한다. 발인날은 12월 2일이다.[[https://news.nate.com/view/20211208n30276?mid=e1100|#]] == 기타 == * 2018년에 흙에 살리라가 농부 소년으로 알려진 [[한태웅]]이 청와대에 열린 농업인 초청간담회에 불러서 다시 주목받았다. == 대표곡 == * [[1971년]] 정 두고 떠난 사람 * [[1973년]] 흙에 살리라 [[분류:한국 남가수]][[분류:트로트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1950년 출생]][[분류:2021년 사망]][[분류:심장마비로 죽은 인물]][[분류:해남군 출신 인물]][[분류:동양미래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