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胡威 (? ~ 280)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백무(伯武)로 [[호질#s-1]]의 아들. == 생애 == 양주 회남군 수춘현 사람으로 젊었을 때 [[장제(조위 태위)|장제]], 주적 등과 함께 장강과 회수 사이의 지역에서 명성이 있었으며, 위나라를 섬겨 정동장군, 형주자사를 역임했다. 아버지 호질이 형주자사로 있을 때 호위가 호질을 만나러 갔다가 돌아가겠다고 할 때 호질이 비단 한 필을 줬는데, 호위가 무릎을 꿇으면서 "아버님은 청렴함으로 이름이 높은데, 어디서 이것을 얻으셨습니까?"라고 묻자 호질이 자신의 봉록의 나머지라면서 그래서 노자로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호위가 받아 가지고 갔으며, 매번 객사에 이를 때마다 손수 말안장을 풀고 땔감을 가져다가 밥을 지으면서 식사가 끝나면 다시 여정을 따라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호질의 부하인 장하도독이 몰래 식량을 싸가지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가 동반해서 매사에 서로 일을 도와 처리했으며, 식사도 마련해줬다. 호위가 이를 이상히 여겨 그를 유도해 물어본 결과 그는 호질의 장하도독이라는 것을 알아냈으며, 나중에 그에게 사례하고 돌려보냈다. 나중에 이 일을 호질에게 얘기해 그 장하도독은 곤장 100대에 처하면서 관작이 삭탈되었는데, 호질과 호위 부자는 청렴하고 신중함이 이와 같았다고 한다. 서진에서는 시어사가 되고 남향후에 봉해졌다가 안풍태수에 임명되었고 서주자사로 옮겨 정치로 백성들을 교화했으며, [[사마염]]이 직접 보는 것을 허락해 변방의 일을 함께 논의했다. 사마염이 호질의 청렴함에 감탄해 부친과 그대 중에 누가 더 청렴하냐고 묻자 자신의 청렴함은 부친만 못하다고 대답했으며, 무엇을 보고 부친이 더 낫냐고 묻자 부친은 남이 알까봐 걱정하지만 자신은 남이 알아주지 않을까봐 걱정이기 때문에 부친보다 못하다고 했고 [[세설신어]]에도 이 일화는 실려있다. 감예주제군사로 옮겼다가 우장군, 예주자사를 지냈으며, 낙양에 들어가 상서, 봉거도위를 지냈다. 호위는 이전에 무제에게 엄숙히 법을 집행해 정치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으며, 전장군, 감청주제군사, 청주자사를 지내고 평춘후에 봉해졌다. 280년 10월에 관직에 있다가 사망했고 사지절, 도독청주제군사, 진동장군에 추증되고 그 밖의 관위는 생전대로 유지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his=문단, title=호위, version=32, paragraph=3)] [[분류:서진의 인물]][[분류:28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