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호남향우회(湖南鄕友會)는 [[전라도|호남]] 바깥 객지에서 고향이 같은 [[전라도]]인 사람들끼리 만나서 [[애향심]]을 매개로 친목을 도모하는 모임이다. 지역 향우회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으며, 실제로도 타 지역 향우회를 압도하는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 도처에 퍼져 있지만 가장 활성화된 곳은 아무래도 [[서울특별시]]다. 원래 지역 자생적으로 발생한 만큼 뚜렷한 구심점 없이 여러 단체가 난립했다. 주로 동 단위로 발생하여 구 단위로 통합 발전하는 형태를 보인다. 특히 호남 지역민들이 오래 전부터 자리잡은 [[구로구]], [[영등포구]]와 [[강북구]] 등 구 [[성저십리]] 지역에서 먼저 크게 발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호남향우회는 조직이 매우 크고 강해 해당 지역에 사는 비호남인들도 몇몇은 호남향우회 조직의 영향력을 크게 실감한다고 한다.[* 다만 현재 호남향우회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은 정작 [[관악구]]도, [[노원구]]도, 성저십리도 아닌 [[서울특별시]] [[강남구]]다. 참고로 [[강남구]]에는 [[부울경]], [[강원도]] 출신도 많다. 중앙회는 [[역삼동]], 총연합회는 [[도곡동]]에 있다.] == 역사 == 처음에 호남향우회라는 것은 외부에서 생각하는 단순히 동질적인 집단만은 아니었다. 각 지역에서 이주해 들어온 호남인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했던 만큼 원래는 서로 독립된 조직이었다. 처음에는 재경광주향우회, 재경전북향우회 등 전라도 내에서도 출신 지역끼리 다른 단체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런 초기 호남향우회의 흔적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는 것이 [[서울특별시|서울]] 도처에 존재해 있는 [[기숙사|사숙]][* [[전라도|호남]] 출신의 우수한 고교생, 대학생들의 [[서울특별시|서울]] 유학을 돕기 위해 호남 지역 자치단체와 재경 호남향우회가 조직, 운영하고 있는 기숙사다.]이다.[* 현재 서울의 사숙들은 서울의 자치구 단위가 아닌 [[전라도|호남]]의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울의 호남향우회들이 주로 서울의 행정구역에 맞게 통합, 정비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 사숙의 운영 주체는 호남 지역 시청과 군청이 맡는 경우가 보통이고 여기에 해당 지역 호남향우회들이 서포트해주는 형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통합, 재분열을 거듭하며 여러 단체가 난립하게 되었는데, 호남향우회가 본격적으로 통합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바로 [[김대중|DJ]]의 등장 이후이다. 특히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여러 호남향우회들이 연대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호남향우회들이 통합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지속적인 통합이 진행되어 2006년 '전국호남향우회'가 출범해 중앙집권적 형태를 갖췄다. 그러나 이후 정치 성향 문제로 '전국호남향우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3개 등으로 나누어졌다가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로 통합되었다. == 분포 == 물론 [[대한민국]]의 다른 지역들도 타지에서 영남향우회, 호서(충청)향우회, 강원도민회 등 향우회를 조직하지만, 아직까지도 호남향우회는 유독 전국, 세계 어디에나 있다는 식의 정보가 [[클리셰]]처럼 알려져있다. 그야말로 향우회의 [[대명사]].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 [[고려대학교 교우회]] 등과 더불어 [[한국 3대 연고주의 사조직|한국의 3대장 단체]]로 꼽힌다.'''[* 이 때문에 농담이지만 호남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하고 해병대까지 나왔다면 국내에서 연결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야말로 혈연, 학연, 지연의 산물인 조직들이다. 심지어 [[서울특별시]] 등 비호남 웬만한 대학들에도 알게 모르게 공식적 단체든 비공식적 모임이든 다 있다시피 하다. 간혹 기숙사 규모가 큰 경우 기숙사에도 호남향우회 모임이 있는 경우도 있다.[[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104142810&qb=7Zi464Ko7Zal7Jqw7ZqM&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 실제로 호남향우회가 [[미국]] 소도시나 [[멕시코]], [[네덜란드]], [[독일]],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구글 검색결과로도 호남향우회가 타 지역 향우회보다 수 배 이상 압도적으로 검색결과가 많기도 하다.[[http://www.jeonnam.go.kr/contentsView.do?menuId=jeonnam0608030000|#]] 그러나 공식적인 단체가 아니다보니 구체적으로 타 지역과의 정확한 세 비교는 어려운 실정이다. 해외에 나가서도 한인회 활동보다는 호남향우회 활동을 열심히 한다는 식으로 [[지역드립]]에 악용되기도 한다.[* 이런 지역드립 때문에 검색결과가 폭증하는 경향도 있다.] [[서울특별시]]에서는 [[노원구]], [[구로구]], [[은평구]], [[금천구]], [[관악구]], [[도봉구]], [[강북구]][* 주로 [[삼양동]], [[미아동]], [[수유동]]에 많이 거주한다.]에 호남 출신 비율이 높으며 [[경기도]]에서는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 [[수원시]], [[성남시]], [[고양시]], [[부천시]], [[김포시]] 등지에 호남 출신의 비율이 높다.[* 다만, 수원, 화성, 부천은 충청과 호남의 경합세에 가깝다. 수원과 화성은 충청도에서 가까운 이유로, 부천은 인접한 인천의 영향이 커서 충청 출신 인구도 상당히 많은 편.] 이렇게 분포하는 이유는 결국 [[대한민국]]의 도시개발 과정에서 이루어진 빈민촌 제거정책의 영향으로 대부분 고향에서 살기 힘들어 올라온 빈민인 이들이 박정희 주도의 도시개발과 판자촌 정리사업 때 이들을 내보낸 곳이 [[관악구]], [[노원구]] 등이기 때문이다. 하술할 호남향우회의 정치적 성향 역시 이들의 경제적 빈곤과 차별, 탄압과 연결되어 있다. == 정치 == 상술할 호남향우들의 약한 경제적 기반, 그로 인한 대한민국 개발기 차별과 탄압으로 인해 그동안 정치에서 힘을 낼 기회가 없었지만, [[김대중]]의 등장과 그들의 많은 인구가 규합되어 생겨난 호남향우회는 그만큼 정치적 성향이 매우 뚜렷한 관계로, 호남향우회가 정치적으로도 상당히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602100014|#]] 1980~90년대 민주당 주요 표밭으로 김대중이 [[통일민주당]] 분당과 [[3당 합당]]의 여파로 보수정당에게 조직력에서 밀렸음에도 서울과 그 근교 지역에서만큼은 [[민주당계 정당]]이 [[대한민국 보수정당|보수 정당]]과 맞먹을 만큼의 조직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에 김대중이 여전히 유력 대권 주자로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고, 당연히 [[김대중]]의 당선에도 기여했기에 [[동교동계]]와의 연관점 역시 적지는 않다. 다만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친노와 동교동계가 따로 놀았기 때문에 호남향우회 조직의 폴가동이 안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해당기간 동안 민주당의 바닥조직력이 안 좋다는 얘기가 나온 원인 중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참패로 지역 조직력이 심하게 박살난 상황에서 민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분당되어서 [[열린우리당]]이 조직력이 심하게 취약했는데 이로 인해서 탄핵역풍으로 승리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부터는 바람선거가 일어나지 않다보니 코어가 취약한 열린우리당이 지속적으로 패배하면서 조직력이 갖추어질 일이 없었고, 결국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지방선거 승리로 조직력이 복구될 때까지 2000년대 내내 이어져 내려왔던 것이 컸다. 단 ‘전국호남향우회 총연합회 중앙회’는 [[박근혜]] 지지 선언을 할 정도로 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노무현]] 쪽과 가까운 [[문재인]]보다는 [[동교동계]]와 가까운 [[박근혜]]를 지지했다. 당장 [[한광옥]], [[한화갑]], [[김경재]], [[장성민]]만 보더라도 [[동교동계]]에서 [[친박]]으로 전향했다. 이처럼 큰 세력으로 인해서 서양의 일루미나티급 흑막으로 매도되기도 한다. == 예외 == 지역에 따라선 호남향우회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인천광역시]]가 있다. [[충청도]] 출신들이 [[전라도]] 출신에 비해 많고 [[인천광역시|인천]] 토박이나 [[화교/대한민국|재한 화교]], [[황해도]]와 [[미수복 경기도]] 출신 [[실향민]] 후손 비중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충청도]] 출신[* 특히 [[홍성군|홍성]] + [[예산군|예산]] + [[서산시|서산]] + [[당진시|당진]] + [[아산시|아산]] + [[천안시|천안]] 출신 인구가 많다.]들이 인천에서 거주한 지 오래되거나 정착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전라도|호남]] 출신들은 충청 출신 출향인에 비해 늦게 인천에 정착해 실질적인 영향력 차이는 훨씬 크다.[* 그나마 인천에서 비교적 서울의 위성도시 성격이 강한 [[부평구]], [[계양구]]는 호남향우회 조직이 잘 갖춰져 있지만 부평권도 충청향우회 파워가 만만치 않다.] 특히 인천은 [[충청도]] 출신자들이 영향력만큼이나 텃세도 심해서 그나마 향우회 조직이라도 있는 호남에 비해 [[경상도|영남]]은 향우회 조직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세력이 미약하다. 일단 영남 지역에서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으로 이주한 사람이 호남 출신이나 충청 출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도 하다.[* [[경상도]]는 산업단지가 많고 대도시나 중견도시가 많기 때문에 타 지역에 비해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으로 이주한 인구의 비율이 적다. 다만 [[강남구]], [[서초구]]에는 [[경상도]] 출신 주민들의 비중도 높다.] 그리고 [[부울경]]의 경우 [[전라도|호남]] 지역 출신 외지인[* [[부산광역시]]의 [[서부산]]과 [[부산진구]], [[김해시]], [[양산시]] 등에 주로 거주한다.]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지만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에 비해 토박이가 많고 [[대경권]][* 부산에선 [[동래구]], [[금정구]]에 대경권 출신들이 많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부산에선 [[영도구]]에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출신들이 많다.], [[이북 5도]] 출신 [[실향민|후손들]][* 주로 [[원도심(부산)|원도심]]에 많이 거주하지만 [[동부산]]이나 [[울산광역시]], [[창원시]], [[김해시]], [[양산시]], [[거제시]] 등에도 많이 거주한다.]의 비중 역시 적지 않은 [[부울경]]의 특성상 향우회의 조직이 미약하다. [[1970년대]]에 남동임해공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전라도|호남]] 출신 주민들이 많이 정착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전라남도]] 동부 지역이나 [[전라북도]] 출신들이고, 상당수가 [[경상도]]와 문화가 비슷하다 보니 [[광주광역시]]나 [[나주시]], [[목포시]], [[강진군]] 등 [[전라남도]] 서부 지역 출신들 위주인 호남향우회와는 꽤 이질감이 있다.[* 실제로도 전라남도 동부 + 전라북도는 [[친노]] 지지 성향이 높고, 반대로 전라남도 서부는 [[동교동계]] 지지 성향이 높다.] [[분류:지역 단체]][[분류:친목 단체]][[분류:광주광역시]][[분류:전라남도]][[분류:전라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