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 || '''{{{#ffff00 한정 관련 틀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상무부총리)] ---- [include(틀:역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부총리 (제7ᆞ8ᆞ9ᆞ10ᆞ11ᆞ12ᆞ13기))] ---- [include(틀:중화인민공화국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제19기))] ---- [include(틀: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include(틀:역대 상하이시 영도인)] }}} || ---- ||<-3>
'''{{{#ffff00 중화인민공화국 제11대 부주석}}}[br]{{{#ffff00 {{{+1 한정}}}[br][ruby(韩,ruby=Hán)][ruby(正,ruby=Zhèng)](韓正, 한정) | Han Zheng}}}'''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한정_136705403_15089392470871n.jpg|width=100%]]}}} || || '''{{{#ffff00 국적}}}''' ||[[파일:중국 국기.svg|width=28]] [[중화인민공화국]] || || '''{{{#ffff00 출생}}}''' ||[[1954년]] [[4월 22일]] ([age(1954-04-22)]세)[br][[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쉬후이구[* 본적지는 [[저장성]] [[츠시시]]다.] || || '''{{{#ffff00 학력}}}''' ||[[푸단대학|복단대학]][br][[화둥사범대학]] || || '''{{{#ffff00 종교}}}''' ||[[무종교]] ([[무신론]]) || || '''{{{#ffff00 정당}}}''' ||[include(틀:중국공산당)] || || '''{{{#ffff00 현직}}}''' ||중화인민공화국 부주석 || || '''{{{#ffff00 주요 이력}}}''' ||제16기~18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br][[상하이시]] 시장[br]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대행)[* 전임자 천량위가 사회복지기금 횡령등 비리(4조원대)로 해임되어 당시 부서기 겸 시장이었던 한정이 직무대행. 천량위는 18년형 선고 후 [[베이징 친청 교도소]] 복역 중][br]상하이시 당위원회 서기[br]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국무원]] 상무부총리 || [목차] == 개요 == 한정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 생애 == 중화인민공화국 [[저장성]] [[츠시시]]에서 태어났다. [[1979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였고 [[푸단대학|복단대]]를 거쳐 [[화둥사범대학]]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후 중국공산당내 지위가 계속 오르게 되었으며 16기, 17기, 18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오르며 중국공산당 내 주요 권력 서열에 반열하게 되었다. [[상하이]] 시장 및 상하이 시 당위원회 서기를 맡게 됨으로서 인지도가 올랐고, 제19기 중국공산당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서열 7위에 발탁되며 국무원 상무부총리를 지냈다. 부총리 중 서열 1위인 상무부총리는 이 때까지 [[경제]]나 [[금융]] 정책을 맡아왔지만 이 부분의 실세가 [[류허]] 부총리였고 한정은 외교안보 문제에 더 집중했다는 시각이 있었다. 경제분야에선 [[리커창]]이나 한정을 총리나 [[경제부총리]]로 본다면 대통령급인 [[시진핑]]의 최측근이자 경제참모인 정책실장격인 류허가 두 사람의 직급보다 낮지만 경제정책에선 힘이 매우 강했다는 평가이다. == 행보 == 줄곧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 입적을 쌓다가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리고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며 중국공산당 주요 서열에 첫 얼굴을 보였다. 이는 중국공산당 계파 갈등 내 [[공청단]], [[태자당]] 그리고 [[상하이방]]의 힘겨루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시진핑]]이 상하이 시 당위원회 서기였을 때 한정이 보좌한 경험이 있기에 발탁되었다고 보는 쪽이 더욱 우세하다. 19차 당대회 이후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에 [[시진핑]]이 참석할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으나 이 사람이 대신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30명 가량의 대표단과 함께 특별대표로 참가하였다. 여기서 한정 부총리는 [[김영남]] 전 상임위원장과 접견을 가졌다고 한다. [[https://m.khan.co.kr/world/china/article/202210052257005|리커창 뒤를 이어 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 한편 [[중국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20차 당대회]]에서 정계은퇴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는데, 2023년 3월 열린 [[전인대]] 14기 1차 회의에서 [[왕치산]]의 후임 국가부주석에 임명되었다. 한정은 상무위원 7인보다 낮은 서열 8위였던 전임 왕치산과 달리, [[왕후닝]] 정협 주석 바로 다음의 당 서열 5위[* 다시 말해 서열 5, 6, 7위 상무위원인 [[차이치]], [[딩쉐샹]], [[리시]]보다는 앞선다는 이야기이다.]로 호명되었다. 한정은 68세로 정년에 도달했음에도 국가부주석으로서 임기 5년을 추가로 보장받으면서, 당내 서열도 7위에서 5위로 상승하였다. 상무위원단에서 빠지고 상징적인 직책인 국가부주석으로 이동하며 실권은 줄었지만, 정년에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사실상 은퇴를 강요당한 공청단파의 [[리커창]], [[왕양]]과 달리 여전히 시진핑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봐도 될 듯. == 여담 == 중앙 진출 이전에는 평생 [[상하이시]]에서 일했던 만큼, 중국공산당 정치계파로는 [[상하이방]]에 포함된다. 한정이 상무위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시진핑이 상하이에서 일할 때 그를 잘 보좌했던 점[* 시진핑은 2007년 3월 전임 상하이 서기 천량위의 숙청 이후 구원투수로서 부임해오게 되었는데, 이 자리는 시진핑 입장에서는 위기를 잘 수습할 경우 단번에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등극하는 디딤돌일 수 있지만,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본인의 정치경력이 망가지거나 최악의 경우 숙청까지 감수해야 하는 독이 든 성배였다. 시진핑은 [[후진타오]]의 명을 받들어 천량위와 결탁한 상하이방 일파들의 여죄를 캐면서도, 틈만 나면 자신과 훨씬 가까운 [[리커창]]을 밀 게 뻔했던 후진타오가 책잡을 거리를 주지 않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은 상하이 토박이로서 현지 실정을 잘 모르는 서기 시진핑을 성공적으로 보좌해 인간적인 신뢰관계를 쌓고, 다음 해 시진핑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어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등극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공을 세우게 된다. 때문에 상하이방임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의 신임을 얻게 된 것. 상하이의 2인지였던 시장 한정은 서기 천량위의 비위행위를 모를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천량위 숙청 당시에는 좌천, 혹은 천량위의 뒤를 이어 숙청될 거라는 소문까지 도는 상황이었다. 그랬는데도 한정은 시진핑을 잘 보좌해 책임 추궁을 피하고, 오히려 다음 당대회에서 정치국원 겸 상하이 서기로 승진까지 해낸다. 한정 역시 본인 계파인 상하이방을 떠나, 관료 생활 최대 위기를 전화위복으로 만들어준 시진핑에게 개인적으로 충성할 이유가 충분했던 셈이다.]과, 성격이 모나지 않고 원만하며 윗사람을 잘 모시고 성실하다는 평이 있는 점 (나쁘게 말하면 예스맨) 등 때문에, 다른 [[파벌]]의 [[비토]]를 받지 않은 이유가 크다고 보인다. 중국은 상무위원들이 전체 구역을 나누어 각기 지도하는데, [[홍콩]]이 한정의 지도를 받는다. 즉, 현재 [[홍콩 행정장관]]의 [[직속상관]]이 한정이 되는 것이다. 원래라면 [[캐리 람]] 행정장관 - 한정 상무부총리 - [[리커창]] 총리 - [[시진핑]] 주석 순으로 보고가 올라간다. 실제로 [[11월]]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진행되고 있었을 때 [[선전시]]에서 관료들을 다 모아서 대책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19년]] [[11월 4일]]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한정보다 먼저 시진핑을 만나게 되는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이건 중국 [[국립전시컨벤션센터]](상하이)에서 시진핑이 캐리 람을 직접 소환하면서 벌어진 일인데, 캐리 람은 기조연설만 하고 나갈 예정이었으나 '''시진핑이 캐리 람의 손을 잡고 회담장으로 끌고 들어가서'''(영상도 있다!) 강제로 회담한 케이스이다.(...) 캐리 람은 [[11월 5일]] 한정에게 이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 바 있다 (직속상관을 건너뛰고 윗선을 먼저 만난 것이므로). 한정은 그 상황에 대해 양해를 한다고 밝혔지만 당연히 기분은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분류: 중화인민공화국 국가부주석]] [[분류: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상무부총리]][[분류:1954년 출생]][[분류:상하이시 출신 인물]][[분류:중국공산당 16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7기 중앙위원회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8기 중앙정치국 위원]][[분류:중국공산당 19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분류:중국공산당 상하이시 서기]][[분류:중국의 무종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