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고려의 배향공신)] || '''{{{#670000,#fedc89 한언공 관련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고려의 문하시중)] ---- [include(틀:고려사)] }}} || ||<-2> '''고려 중추원 차관[br]고려 문하시중[br]{{{+1 한언공}}}''' || || '''시호''' ||'''정신공(貞信公)''' || || '''작위''' ||개국후(開國侯) || || '''본관''' ||[[한(성씨)|단주 한씨]][* 湍州 韓氏] / 장단 한씨[* 長湍 韓氏][* 장단현(長湍縣)에서 단주(湍州)로 승격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본관 항목 참조] || || '''이름''' ||언공(彦恭) || || '''배우자''' ||미상 || || '''자녀''' ||[[한조(고려)|한조]] || || '''생몰연도''' ||939년~ 1004년 6월 ([[향년]] 65세)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목종(고려)|목종]] 대의 문신. 장단 한씨 가문 소속으로 [[고구려]]계 패서 호족 출신으로, 광종, 경종, 성종, 목종 4대 임금을 섬긴 신료이다. [[정종(고려 제10대)|정종]] 제1,2비인 [[용신왕후]], [[용의왕후]]의 친조부이기도 하다. == 상세 == === 국자감 출신 차관 === 장단 한씨는 가문의 어린 자제인 한언공을 개경의 국자감에 보내 공부를 시킬 정도로 나름 명망있는 호족 가문이였다. [[광종(고려)|광종]] 재위 중에 국자감 학도로 들어가 관리 양성 기관의 교육을 받았다. 곧이어 관직을 얻어 조정에 진출하였고, [[경종(고려)|경종]] 대를 거쳐 [[성종(고려)|성종]] 때 형부시랑(지금의 법무부 차관) 겸 병부시랑(지금의 국방부 차관)이 된다. 이를 보아 법과 군사에 능통한 것으로 보인다. === [[중추원]] 설립 === [[성종(고려)|성종]]의 외교관으로 [[북송]]에 갔을 때 그곳에서 꽤 주목을 끌었다고 한다. 이에 [[태종(송)|송태종]]은 그에게 정2품 품계, 명예 국방부장관, 감찰기관 장관직을 봉해주었다. 북송에 있으면서 그들의 기관구조를 주의깊게 보고 온 한언공은 고려로 귀환한 후, 성종에게 [[중추원]] 설립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해서 만든 중추원은 [[중서문하성]]과 함께 고려 양대 최고 정부기관이 된다. === 문하시중이 되다 === 한언공은 성종뿐 아니라 목종 대에도 큰 신임을 받았다. 문관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직위인 [[문하시중]]에 임명되었으며, 항상 직언을 하여 목종이 그를 크게 신임했다. 하지만 결국 나이가 들어 65세에 죽으니, 목종은 곡식, 비단, 찻잎을 유가족에게 보내고 대부(大夫)의 예법으로 장사지내게 했다. == 후손 == 그의 아들 [[한조(고려)|한조]]도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고, 한조의 두 딸은 [[정종(고려 제10대)|정종]]과 결혼하여 왕후가 되었다. 한언공 딸 덕분에 가문이 고려의 외척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편, [[남평 문씨]], [[전주 이씨]]와도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데, 다름아닌 한언공의 후손인 한안인(韓安仁)[* [[이자겸의 난]]으로 이자겸이 몰락하기 전까지 이자겸 일파와 정치적으로 대립한 신진관료세력의 거두(巨頭)였다. 그러나 이자겸 일파에게 결국 패배하면서 유배를 가던 중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이 [[문극겸]], 나아가 [[태조(조선)|이성계]]의 여계 조상이기 때문이다. == 본관 == 장단(長湍)은 지금의 개성시 장풍군[* 경기도 북서부에 있었던 곳으로 [[6.25 전쟁]] 이후 남쪽 지역 일부가 [[연천군]]에 편입되었다.]이다. 장단현(長湍縣)은 [[목종(고려)|목종]] 4년인 1001년 한언공의 고향이란 이유로 단주(湍州)로 승격되었기 때문에 장단 한씨나 단주 한씨나 같은 지역을 본관으로 삼았다. == 역임 관작 == ||<-3> '''한언공의 생전 역임 직위''' || || '''품계''' ||특진(特進) ||정 2품 품계 || ||<:><|5><#191970> '''직위''' ||형부시랑(刑部侍郞) - 병부시랑(兵部侍郞) ||시랑은 차관직 즉 형부의 차관 및 병부의 차관 || ||중추원(中樞院) 부사(副使) ||중추원의 차관 || ||참지정사(叅知政事) ||중서문하성의 서열 3위 직위 || ||내사시랑평장사(內史侍郞平章事) ||중서문하성의 서열 2위 직위 || ||[[문하시중]](門下侍中) ||[[중서문하성]]의 서열 1위 직위 || || '''작위''' ||개국후(開國侯)||특이하게 봉지가 없다 || || '''훈위''' ||상주국(上柱國) ||최고위 훈위 || ||<-3> '''한언공의 북송 직위''' || || '''품계'''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종 2품 품계 || || '''검교직''' ||검교병부상서(檢校兵部尙書) ||검교는 명예직[* 실권이 없고 직함만 있는 관직] 병부상서는 지금의 국방부장관 || || '''직위''' ||어사대부(御史臺夫) ||정부 감찰기관인 어사대의 장관 || ||<-3> '''한언공의 사후 추증 직위''' || || '''삼사''' ||태보(太保) ||천자의 스승. 명예직[* 신하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칭호 중 하나] || || '''시호''' ||정신공(貞信公) ||목종 선양대왕 [[배향공신]]으로서의 시호 || == 대중매체 == 드라마 강감찬에서는 필름이 소실되었기에 배우는 알 수 없으며, [[동아일보]]의 기사에 남은 정보에 따르면 실존인물이 병사한 것과 다르게 [[김치양]]에게 맞서다가 형벌을 받아 사망했다고 한다. 드라마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에서는 배우 [[임병기]]가 연기했다. [각주] [[분류:고려의 공작]][[분류:939년 출생]][[분류:1004년 사망]][[분류:단주 한씨]][[분류:고려의 배향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