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명사)] ||<-2><:>{{{#800000 {{{+2 '''韓成 | 한성'''}}}}}}|| ||<-2><:>[[파일:한성의초상화.jpg|width=80%]]|| ||<:>'''{{{#800000 이름}}}'''||<(>韓成, Hán Chéng, 한성|| ||<:>'''{{{#800000 시대}}}'''||<(>원나라 말 ~ 명나라 초|| ||<:>'''{{{#800000 출생}}}'''||<(>미상 ~ 1363년|| [목차] [clearfix] == 개요 == 중국 [[명나라]]의 개국공신. == 일생 == 호주 홍현(虹縣, 지금의 안후이성 [[쑤저우시(안후이성)|쑤저우시]](宿州市) 쓰 현 출신이다. 농촌에서 태어나 물고기를 잡으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혔다. 원나라 말에 [[주원장]](훗날의 명나라 태조)이 봉양(지금의 안후이성 [[추저우시]] [[펑양현]])에서 봉기했을 때 곽자흥의 홍건군에 들어갔다가 얼마 후 주원장에게 의탁했다. 한성은 충직하고 용모도 주원장을 닮아 주원장이 그를 총애하여 장전아장으로 봉했다. 이후 한성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장전총제, 친병좌부지휘사, 사숙위등의 벼슬을 지냈다. 주원장은 응천(지금의 장쑤성 난징시)을 점령하고 스스로 오국공이라 칭했다. 이후 무창(지금의 후베이성 우창)을 점령하고 있던 다른 봉기 세력인 남한왕 [[진우량]]과 통일을 위한 격전을 벌였다. 1363년 주원장의 남방 병력이 약해진 틈을 타 진우량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홍도(지금의 장시성 난창시)를 공격했다. [[주원장]]은 20만의 원병을 이끌고 [[파양호]](장시성 북부에 있는 중국 최대의 호수)로 들어가 [[진우량]]과 결전을 벌였다. [[파양호 대전]]을 참조. 주원장이 탄 배가 좌초하자 진우량의 군대가 그를 포위했는데, 주원장의 수하 장수들이 전사하자 주원장은 전의를 상실하여 자결을 결심했다. 그러자 한성이 주군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며 마치 [[왕건]] 대신 죽은 [[신숭겸]]이나 [[김춘추]] 대신 죽은 [[온군해]]처럼 소위 [[카게무샤]]를 자처하여 주원장의 옷을 입고 그의 행세를 하며 진우량과 담판을 벌이다 물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이에 시간을 번 주원장은 병력을 재정비하여 화공으로 공격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진우량은 화살을 맞고 사망했다. 주원장은 결국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세웠다. 주원장은 한성의 충성심에 감복하여 그를 고양군후(高陽郡侯)로, 그의 부인을 고명부인(誥命夫人)으로 추봉했고, 그의 아들 한금호(韓錦虎)를 [[부마]](임금의 사위)로 삼았다. == 관련자료 == *『고성현상전략(古聖賢像傳略)』 *『만소당화전(晩笑堂畫傳)』 [[분류:원나라의 인물]][[분류:명나라의 인물]][[분류:쑤저우시(안후이성) 출신 인물]][[분류:1363년 사망]][[분류:전쟁 사망자]][[분류:익사한 인물]][[분류:중국의 자살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