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한무숙(소설가).jpg|width=100%]]}}} || ||<-2>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한무숙(소설가)2.jpg|width=100%]]}}} || ||<-2> ^^1950년 당시의 한무숙^^ || || '''성명''' ||한무숙([[韓]][[戊]][[淑]]) || || '''호''' ||향정(香庭) || || '''본관''' ||[[청주 한씨]][* 참의공파(參議公派) 31세.] || ||<|2> '''출생''' ||[[1918년]] [[10월 25일]] || ||[[경기도]] [[경성부]] [[통의동]][br](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 || ||<|2> '''사망''' ||[[1993년]] [[1월 30일]] (향년 74세)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 '''사이트''' ||[[http://www.hahnmoosook.com|한무숙 문학관]]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의 [[소설가]]. 역시 여류 소설가인 [[한말숙]]의 언니다. == 생애, 활동 == 1918년 10월 25일 [[경기도]] [[경성부]] [[통의동]](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의동]])의 외가에서 [[경상남도]] 창녕경찰서 경부로 근무하던 아버지 [[한석명]]과 어머니 [[인동 장씨]] 장숙명(張淑命, 1893. 9. 20 ~ ?)[* 장윤규(張潤奎)의 딸이다.] 사이의 1남 4녀 중 차녀로 [[http://www.hahnmoosook.com/public_html/pages/hms/biography01.asp|태어났다]]. 2살 되던 1919년 11월 2일 아버지가 [[조선총독부]] 도경부(道警部)에 [[http://db.history.go.kr/id/gb_1919_11_20_a21830_0250|임명되어]] 경상남도 제3부 부산경찰서로 발령을 받자 이를 따라 경상남도 [[부산광역시|부산부]]로 이주했다. 부산봉래공립심상소학교(現 부산 봉래초등학교), [[부산여자고등학교|부산고등여학교]]를 졸업했다. 화가를 지망하여 1937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김말봉]]의 소설 '밀림'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나 1940년 김진흥(金振興)과 결혼 후 완고한 집안의 며느리로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소설가의 길을 선택했다. 1943년 '신시대'라는 잡지의 장편소설 모집에 일본어로 쓴 '燈を持つ女(등불 드는 여인)'을 투고,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조선연극협회 작품 모집에 희곡 '마음', '서리꽃'이 당선되었다. 본격적인 작가로서의 첫 번째 작품은 1948년 [[국제신보]]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역사는 흐른다'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월훈'(1956), '감정이 있는 심연'(1957), '축제와 운명의 장소'(1963), '우리 사이 모든 것이'(1978), '빛의 계단'(1960), '석류나무집 이야기'(1964), '만남 상·하'(1986), '[[생인손(소설)|생인손]]'(1987) 등을 발표했다.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한국소설가협회 대표위원을 역임했다. 1993년 1월 30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심부전증]]으로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3013100329122008&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1-31&officeId=00032&pageNo=22&printNo=14658&publishType=00010|별세했다]]. 향년 74세. == 한무숙문학상 == 사후 한무숙문학상이 제정되었다. 1993년 남편 김진흥에 의해 한무숙재단이 설립되어 1995년부터 시상하고 있다. 제1회 수상자는 동생 한말숙의 친구인 [[박완서]]다. * 1996년 제01회 [[박완서]] 《환각의 나비》 * 1997년 제02회 강용준 《광야》 * 1998년 제03회 [[김원일]] 《아우라지로 가는 길》 * 1999년 제04회 이경자 《사랑과 상처》 * 2000년 제05회 이순원 《그대 정동진에 가면》 * 2001년 제06회 [[최일남]] 《아주 느린 시간》 * 2002년 제07회 정을병 《꽃과 그늘》 * 2003년 제08회 최인석 《구렁이들의 집》 * 2004년 제09회 [[유현종]] 《두고온 헌사》 * 2005년 제10회 서하진 《비밀》 * 2006년 제11회 [[박범신]] 《나마스테》 * 2007년 제12회 [[구효서]] 《시계가 걸렸던 자리》 * 2008년 제13회 김병언 《남태평양》 * 2009년 제14회 [[정지아]] 《봄빛》 * 2010년 제15회 [[이현수]] 《장미나무 식기장》 * 2011년 제16회 해이수 《젤리피쉬》 * 2012년 제17회 [[정영문]] 《어떤 작위의 세계》 * 2013년 제18회 [[김애란]] 《비행운》 * 2014년 제19회 박성원 《하루》 * 2015년 제20회 엄창석 《빨간 염소들의 거리》 * 2016년 제21회 심상대 《나쁜놈》 * 2017년 제22회 [[김언수]] 《뜨거운 피》 * 2018년 제23회 김덕희 《급소》 * 2019년 제24회 정한아 《친밀한 이방인》 * 2020년 제25회 [[정용준(소설가)|정용준]] 《프롬 토니오》 * 2021년 제26회 [[최제훈]] 《위험한 비유》 * 2022년 제27회 백민석 《플라스틱맨》 == 가족 == 아버지 [[한석명]]은 [[일제강점기]] 사천군수, 동래군수, 하동군수를 지냈고, 오빠 [[한복(1914)|한복]]은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판사, 광복 후 변호사를 지냈다. 여동생은 소설가 [[한말숙]]이고 여동생의 남편은 국악인 [[황병기]]다. 남편 김진흥(金振興)은 1916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김덕경(金悳卿)의 차남으로 태어나 [[서울대학교/학부/경영대학|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한일은행]]장, [[한국주택은행]]장, 한국종합금융 회장을 지낸 원로 금융인이다. 슬하에 장녀 김영기(金榮起, 1941 ~ ), 장남 김호기(金虎起, 1942 ~ ), 차남 김용기(金龍起, 1944 ~ ), 차녀 김현기(金賢起, 1946 ~ ), 3남 김봉기(金鳳起, 1948 ~ )를 두었다. 장남 김호기가 현재 한무숙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 수상 == * 1957년 제5회 자유문학상 * 1973년 제5회 신사임당상 * 1986년 대한민국문화훈장 * 1986년 제7회 대한민국문학상 * 1989년 제30회 3.1문학상 * 1991년 제36회 대한민국예술원상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청주 한씨 참의공파]][[분류:1918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분류:1943년 데뷔]][[분류:심부전으로 죽은 인물]][[분류:부산여자고등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