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부르고뉴 공작)] ||<-2> '''부르고뉴의 공작[br]{{{+1 필리프 1세}}}[br]Philippe Ier de Bourgogne''' || ||<-2>{{{#!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필리프 1세(부르고뉴).png|width=100%]]}}} || || '''출생''' ||[[1346년]]경[br][[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 || '''사망''' ||[[1361년]] [[11월 21일]][br][[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 ||<|2> '''재위''' ||<#E7E7E7>[[부르고뉴 공국]]의 공작|| ||[[1349년]] [[4월 3일]] ~ [[1361년]] [[11월 21일]]|| || '''배우자''' ||마르그리트 3세 드 플란데런 ,,(1355년 결혼),,|| || '''아버지''' ||오베르뉴와 불로뉴 백작 필리프|| || '''어머니''' ||오베르뉴 여백작 잔 1세|| || '''형제''' ||잔|| [목차] [clearfix] == 개요 == [[부르고뉴 공국]]의 공작. 3살에 부르고뉴 공작이 된 뒤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섭정]]을 받았으나 승마 사고로 사망했다. == 생애 == 1346년경 프랑스 왕국 루브르앙플렌 성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오베르뉴와 불로뉴 백작 필리프이고, 어머니는 오베르뉴 백작 기욤 12세의 딸이자 오베르뉴 여백작 잔 1세였다. 아버지는 부르고뉴 공작 [[외드 4세]]의 유년기에서 죽지 않은 유일한 아들이었기에 부르고뉴 공작에 계승하는 것이 보장되었지만, 1346년 [[에기용 공방전]]에 참여했다가 도랑을 건너던 중 낙마해 전사했다. 이후 할머니인 부르고뉴의 잔 3세가 사망하면서, 할머니의 영지였던 부르고뉴 백국과 아르투아 백국을 상속받았고, 3살 때 할아버지 외드 4세가 사망하면서 부르고뉴 공작이 되었다. 1350년, 어머니 잔 1세가 프랑스 국왕 [[장 2세]]의 새 왕비가 되었다. 이후 그는 [[장 2세]]의 후견을 받았으며, 어머니의 섭정을 받았다. 1355년 플란데런 백작 루이 2세의 딸인 마르그리트 드 플란데런과 결혼했다. 루이 2세에겐 아들이 따로 없었기 때문에, [[플란데런 백국]], 네베르, 레텔, 앤트워프 백국 및 [[브라반트 공국]], 림부르크 공국의 상속을 보장받았는데, 이 땅의 대부분은 [[저지대 국가]]에 위치했다. 1360년 9월 어머니 잔이 [[중세 흑사병]]으로 사망했고, 같은 해 10월 20일에 성년이 되었다. 그러나 1361년 11월 승마 사고로 크게 다쳤고, 그해 11월 21일 자신이 태어났던 성인 루브르앙플렌 성에서 사망했다. 장 2세는 그가 자녀를 낳지 못한 채 죽으면서 카페부르고뉴 가문이 단절되자 부르고뉴 영지를 자신의 소유로 사고, 막내아들 필리프를 차기 부르고뉴 공작 계승자로 지명했다. 나바라 국왕이자 에브뢰 백작 [[카를로스 2세(나바라 왕국)|카를로스 2세]]는 자신이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딸 마르그리트[* [[루이 10세]]의 첫번째 왕비이자 [[호아나 2세]]의 모친으로, 불륜을 저질러 감금되었다.]의 손자인 점을 이용해 자신이 부르고뉴 공국을 물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기를 들었고, 1364년 나바라-잉글랜드 연합군을 부르고뉴로 파견해 무력으로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1364년 5월 16일 [[코르슈렐 전투]]에서 [[베르트랑 뒤 게클랭]]이 이끄는 프랑스군에게 참패했고, 부르고뉴 공작위는 장 2세의 막내아들 필리프로 굳어졌다. [각주] [[분류:부르고뉴 공작]][[분류:카페부르고뉴 가문]][[분류:1346년 출생]][[분류:1361년 사망]][[분류:백년전쟁/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