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아스투리아스 국왕)] [include(틀:역대 레온 국왕)] [include(틀:역대 갈리시아 국왕)] ||<-3><:>[[파일:프루엘라 2세.jpg|width=100%]]|| ||<-3><:>{{{+1 '''Fruela II de León''' }}}|| ||<-2> '''가문''' ||<(> 아스투리아스 왕조 || ||<-2> '''생몰년도''' ||<(> [[877년]] ~ [[925년]] [[8월]] || ||<-2> '''출생지''' ||<(> [[아스투리아스 왕국]] 오비에도 || ||<-2> '''사망지''' ||<(> [[레온 왕국]] 사모라 || ||<|2> '''재위'''[br]'''기간''' || '''[[아스투리아스 왕국]] 국왕''' ||<(> 910년 - 925년 || || '''[[레온 왕국]]-[[갈리시아 왕국]] 국왕''' ||<(> 924년 - 925년 || ||<-2> '''아버지''' ||<(> [[알폰수 3세]] || ||<-2> '''어머니''' ||<(> 팜플로나의 히메나 || ||<-2> '''형제''' ||<(> [[가르시아 1세]], [[오르도뉴 2세]], 곤잘로, 라미루 || ||<-2> '''배우자''' ||<(> 누닐로 히메나(불확실함), 우라카 || ||<-2> '''자녀''' ||<(> [[알폰수 프루엘라스]],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 || [목차] [clearfix] == 개요 == [[아스투리아스 왕국]] 14대이자 마지막 국왕, [[레온 왕국]] 3대 국왕, [[갈리시아 왕국]] 국왕. == 생애 == 876년경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수도 오비에도에서 아스투리아스 왕국 13대 국왕 [[알폰수 3세]]와 팜플로나의 히메나 사이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 [[가르시아 1세]], [[오르도뉴 2세]], 곤잘로, 라미루가 있었다. 909년 큰형 가르시아 1세의 정변에 어머니 히메나와 형 오르도뉴 2세와 함께 가담해 아버지를 산 살바도르 데 발데디오스 인근의 볼리데스 마을에 유폐시킨 뒤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 개로 나누었다. 큰 형 가르시아 1세는 레온 왕국의 국왕이 되었고, 작은 형 오르도뉴 2세는 갈리시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그는 아스투리아스 국왕이 되었다. 아스투리아스 국왕으로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단지 912년 10월 24일 오비에도에 이쓴 산살바도르 대성당에 토지를 기증하는 등 여러 교회와 수도원에 제물이나 토지를 기증한 사실이 여러 문서에서 확인되었을 뿐이다. 914년 큰형 가르시아 1세가 자식을 낳지 못한 채 사망한 뒤 오르도뉴 2세가 레온 국왕을 겸임했을 때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924년 1월 18일 오르도뉴 2세가 사망했다. 오르도뉴 2세는 가르시아 1세와는 달리 여러 자식을 두었지만, 프루엘라 2세는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레온과 갈리시아 전역을 장악해 세 왕국을 일시적으로 통합했다. 924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군대를 일으켜 [[나바라 왕국|팜플로나 왕국]]으로 쳐들어오자, 그는 카스티야 백작들을 파견해 팜플로나 국왕 [[안초 1세]]를 돕게 했다. 그러나 레온-팜플로나 연합군은 무슬림군에게 격파되었고, 팜플로나가 함락되었다. 그러나 후방에서 반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접한 아브드 알 라흐만 3세가 점령지에 수비대를 배치하지 않은 채 철수했기 때문에, 안초 1세는 곧 돌아와서 잃어버렸던 영토를 도로 확보했다. 프루엘라 2세는 서고트 왕국 [[위티자]] 왕의 후손임을 자처하던 올문도(Olmundo)의 아들 게불도(Gebuldo)와 아레신도(Aresindo)를 살해하고, 그들과 가깝게 지내던 레온의 주교 프루니미오(Frunimio)를 추방해 귀족들의 반발을 샀다. 그러다 925년 8월 [[나병]]에 시달린 끝에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형 오르도뉴 2세가 묻혔던 산타 마리아 데 레글라 데 레온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986년 레온 국왕 [[베르무두 2세]]는 무슬림군의 공세를 피해 그의 유해를 다른 군주들의 유해와 함께 오비에도 대성당으로 옮겼다. 이후 다른 유해들은 [[알폰수 5세]]에 의해 레온 대성당으로 돌아갔지만, 프루엘라 2세의 유해는 오비에도 대성당에 그대로 남았다. == 가족 관계 == 스페인 신부이자 역사가 엔리케 플로레스(Enrique Flórez, 1702 ~ 1773)에 따르면, 프루엘라 2세는 911년 이전에 팜플로나 국왕 [[안초 2세]]와 우라카 페르난데스의 딸 누닐로 히메나와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초 2세는 970년부터 994년까지 팜플로나 왕국을 다스렸기 때문에 프루엘라 2세의 왕비가 될 여인을 낳을 수 없다. 일각에서는 엔리케 플로레스가 [[안초 1세]]를 안초 2세로 잘못 표기했다고 보지만, 안초 1세의 왕실 문헌 기록에는 '누닐로 히메나'라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몇몇 학자들은 그녀가 팜플로나 국왕 [[세메로 가르세이츠]]와 안차 아자에리츠 왕비의 딸이라고 추정하나 이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이 때문에 마누엘 루벤 가르시아 알바레스(Manuel Rubén García Álvarez)를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이 여인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프루엘라 2세는 911년경 바누 카시 혈통이며 투델라의 타이파인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의 딸인 우라카와 결혼했다. 두 부부간의 사이에서 [[알폰수 프루엘라스]][* 누닐로 히메나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가 태어났다. 925년 8월 프루엘라 2세가 사망한 뒤 알폰수 프루엘라스가 왕위에 올랐지만, 926년 오르도뉴 2세의 세 아들 [[산추 오르도녜스]], [[알폰수 4세]], 라미루 2세에게 밀려난 뒤 두 형제와 함께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등지에 은거했다. 931년 알폰수 4세가 형제 라미루 2세에게 왕위를 넘기고 퇴위한 뒤 수도원에 들어갔다가 932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복위를 꾀했을 때 이를 도왔지만, 라미루 2세에 의해 진압되고 알폰수 4세와 라미루 프루엘라스, 오르도뉴 프루엘라스와 함께 실명형에 처해진 뒤 루포르코 데 토리오 수도원에 감금되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분류:아스투리아스 국왕]][[분류:갈리시아 국왕]][[분류:레온 국왕]][[분류:877년 출생]][[분류:92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