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프랑스의 대외관계)] [include(틀:우크라이나의 대외관계)] || [[파일:프랑스 국기.svg|width=100%]] ||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width=100%]] || || [[프랑스|{{{#ffffff '''프랑스'''}}}]] || [[우크라이나|{{{#ffffff '''우크라이나'''}}}]] || [목차] == 개요 == [[프랑스]]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90년대초 [[소련 해체]]이후에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많아지고 있다. == 역사적 관계 == === 중세 === [[키예프 루스]] 시절에 키예프 공국과 [[프랑크 왕국]]과 교류한 역사가 있다. [[야로슬라프 1세]]의 딸인 안나가 프랑크 왕국의 국왕과 결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양자 간의 나름 활발했던 교류는 키예프 루스가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하면서 사실상 교류 단절 수준으로 크게 축소되었다. === 근세 === > [[코사크]]에게 평범한 것은 제복 뿐이다. 이들은 기지가 뛰어나고 예리하며, 진취적이고 포용력이 크다. 이들은 부에 연연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자유를 무엇보다 소중이 여긴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강해서 더위와 추위, 배고픔과 목마름을 다 잘 견딘다. 전투에서는 인내심이 강하고 대담하고 용맹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무분별하기까지 한데 이는 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키가 크고, 기민하고 강하고, 건강상태가 좋다. 심지어 웬만해서는 병에 걸리지 않으며 아주 나이가 든 경우가 아니면 병에 걸려 죽는 일이 드물다.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코사크들의 명예의 전당에서 생을 마친다.-그것은 곧 전쟁터에서 죽는 것이다. >---- > 기욤 르 바쇠르 드 보플랑(Guillaume le Vasseur de Beauplan) 1673년 사망 프랑스의 군사기술자 겸 건축가, 지도제작자였던 기욤 르 바쇠르는 1630년에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와서 1647년까지 폴란드 군대에서 장교, 측량기사, 지도제작자로 근무했다. 이 자격으로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에 속한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우크라이나 지리, 코사크들의 제도와 문화에 대해서도 상세한 정보를 얻고 기록했다. 그는 1645년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 [[브와디스와프 4세 바사]]의 위촉으로 상세한 우크라이나 지도를 제작하였다. 프랑스로 귀국 이후 그는 자신이 관찰한 우크라이나의 사정과 코사크들의 생활, 문화 제도 관련하여 우크라이나 개괄(Description de l'Ukraine)이라는 책을 남겼다. 삽화와 지도를 포함한 이 책은 우크라이나와 코사크 생활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인 저술로서, 문화사적으로 극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19세기 === 19세기에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영역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프랑스 혁명|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내 귀족들이 러시아 제국으로 망명을 가기도 했다.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우크라이나 지역에도 프랑스인 귀족들이 망명 및 정착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내에서 [[유대인]]들이 탄압받자 일부 우크라이나내 유대인들이 프랑스로 건너가기도 했다. === 20세기 === 갈리치아를 제외한 우크라이나 지역은 [[소련]]의 공화국이 되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후에는 [[폴란드]]에 정착했던 일부 [[우크라이나인]]들이 프랑스, 영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다. 90년대초에 소련은 해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 되었고 양국은 공식수교했다. === 21세기 === 양국은 독립 이후, 교류와 협력이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양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가 2010년대부터 러시아와는 [[유로마이단]], [[크림 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으로 인해 갈등을 심하게 빚으면서 프랑스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측은 크림 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고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프랑코포니]]의 참관국에 가입돼 있다. 2021년 4월 15일에 젤린스키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돈바스 전쟁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421&aid=0005292227|#]] 2022년 6월 4일에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에 굴욕감을 줘선 안 된다고 밝히자 우크라이나가 반발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593437?sid=104|#]] 6월 9일에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중화기 지원 의사를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240315?sid=104|#]] 6월 15일에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어느 시점이 되면 러시아와 협상해야 한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48940?sid=104|#]] 6월 17일 마크롱 대통령은 오데사를 통한 곡물수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53207?sid=104|#]] 2023년 1월 13일, 프랑스 국방장관은 두달안에 우크라이나에 프랑스제 탱크를 인도한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642403?sid=104|#]] 1월 22일,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제 전차 르클레르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714930?sid=104|#]] 1월 31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세자르 자주포 12문을 보낸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729780?sid=104|#]] 5월 14일, 마크롱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전차 수십여대 지원을 발표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21/0006806400?sid=104|#]] 5월 17일, 프랑스 상원에서 홀로도모르를 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했다.[[https://en.interfax.com.ua/news/general/910843.html|#]] 7월 2일,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보낸 전차가 불량율이 높다보니 우크라이나 측이 불만을 가졌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8/0004907086?sid=104|#]] == 대사관 == [[키이우]]에 주 우크라이나 프랑스 대사관, [[파리(프랑스)|파리]]에 주 프랑스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존재한다. [[2022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면서 각국 대사관이 철수를 했지만, 프랑스 대사관은 키이우에 위치했다. 그러다가 2022년 2월 28일에 프랑스 정부는 대사관을 르비우로 이전한다고 밝혔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3&aid=0011033259|#]] == 관련 문서 == * [[프랑스/외교]] * [[우크라이나/외교]] / [[유럽연합-우크라이나 관계]] * [[유럽 평의회]] * [[프랑코포니]][* 프랑스는 정회원국이지만, 우크라이나는 참관국에 가입되어 있다.] * [[프랑스/역사]] * [[우크라이나/역사]] * [[프랑스/경제]] * [[우크라이나/경제]] * [[프랑스인]] / [[우크라이나인]] * [[프랑스어]] / [[우크라이나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서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분류:프랑스의 대국관계]][[분류:우크라이나의 대국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