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나치 독일 퓌러)] [include(틀:아돌프 히틀러)] ||<-2> [[파일:퓌러 휘장.svg|width=40]][br]{{{#white '''{{{+1 지도자 겸 국가수상}}}[br]Führer und Reichskanzler'''}}}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아돌프 히틀러 사진1.jpg|width=100%]]}}} || || '''이름''' ||[[아돌프 히틀러]]|| || '''취임일''' ||[[1934년]] [[8월 2일]]|| || '''퇴임일''' ||[[1945년]] [[4월 30일]] {{{-2 (자살)}}}|| || '''정당''' ||[include(틀: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관저''' ||국가수상부|| [목차] [clearfix] == 개요 == |[[파일:퓌러 휘장.svg|width=100%]]| {{{#fff '''퓌러 깃발 겸 휘장'''}}} || [[나치 독일]]의 [[최고지도자]]로 정식 명칭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이라는 뜻의 '''Führer und Reichskanzler'''(퓌러 운트 라이히스칸츨러)다. 보통 줄여서 퓌러(Führer)라고 말한다. [[컴퓨터]]로 [[움라우트]](변모음)를 적을 수 없을 경우 '''Fuehrer'''로 대체한다. Führer(퓌러)라는 단어 자체는 [[독일어]]로 '''지도자''', '''영도자''', '''수령'''이라는 뜻이며, 정확히는 독일어 [[동사]] führen(이끌다)을 하는 남성[* [[독일어]] 직업명으로서 -er는 남자를 뜻한다. 남성명사이기 때문에 [[정관사]]는 Der(데어)를 사용한다.]이라는 의미다.[* 대상이 [[여성]]일 경우 뒤에 -in이 붙어서 '''Führerin'''(퓌레린)이 되며(움라우트를 적을 수 없을 경우의 대체 표기는 '''Fuehrerin'''), [[정관사]]는 Die(디)를 사용한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총통]]'''으로 의역한다. 그러나 퓌러는 실제 의미상 [[북한]]에서 쓰는 '''[[수령]]'''과 유사한 단어로 총통보다는 수령, 영도자가 더 정확한 번역이다. 지도자를 뜻하는 이런 식의 호칭은 파시즘 국가에서 쓰였다.[* [[베니토 무솔리니]]([[두체]]), [[프란시스코 프랑코]]([[카우디요]]). 영어단어 Leader에 대응한다.] == 역사 == 정치적 의미에서의 '''퓌러'''는 1920년대 [[바이마르 공화국|독일]]과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오스트리아]]의 [[대독일주의]]자들에게서 처음 나타났다. 정치적 의미에서 '''퓌러'''로 칭해진 최초의 예는 [[오스트리아]]의 극우 [[대독일주의]]자 게오르크 폰 쇠네러(Georg von Schönerer)로,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퓌러'라 칭하고 [[로마식 경례]]까지 행한 바 있다고 한다. 1920년대 초반 [[아돌프 히틀러]]가 [[나치당]]에서 입지를 굳히자, 히틀러의 추종자들도 이러한 풍조의 영향을 받아 그를 '''퓌러'''(Führer)라고 칭했다. 히틀러는 당 [[총재]] 같은 직위는 맡지 않았지만 당 내에서 절대적인 입지를 굳혔고, [[루돌프 헤스]] 같은 히틀러 추종자들이 독일 민족을 구원할 영도자 또는 지도자라며 '''Führer'''라고 불렀다. 그리고 히틀러가 [[나치당]](독일 노동자당)의 창시자 [[안톤 드렉슬러]]와 견해 차이로 다투고 탈당 협박을 할 때 그를 달래기 위해 나치당의 전권을 주었고, 이때부터 그는 나치당 내에서 공식적으로 퓌러라 칭해졌다. [[1933년]] [[1월 30일]]에 히틀러는 총리에 취임했다. 당시 독일에서 총리는 라이히스칸츨러(Reichskanzler)라 칭해졌으므로, 나치당원들은 그를 '''퓌러 운트 라이히스칸츨러(Führer und Reichskanzler)''', 즉 '''지도자 겸 국가수상'''이라 칭했다. 히틀러는 3월에 [[수권법]]을 제정해 입법권을 장악하는 식으로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독재 정권을 완성한다. 1934년에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해준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였다. 이에 히틀러는 '''[[독일국]] 국가원수에 관한 법률(Gesetz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es)'''을 제정하여,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에게 부여한다. 이로써 히틀러는 [[나치당]] 대표, 정부수반([[총리]]), 국가원수([[대통령]]) 직위를 모두 겸임했다. 이때부터 히틀러의 공식 직함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이 되었고, 실제로는 '국가수상'은 얼마 못가 떨어져나가 '''퓌러'''로만 칭해졌다. 기존의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에서는 대통령은 [[상징적 국가원수]], 그리고 총리는 [[정부수반]]을 맡는 [[내각책임제]] 형식[* 그러나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의 권한 자체는 [[내각책임제]] 국가치고는 상당히 강력한 편이었다. 심지어 [[의회해산]]권과 비상상황에 한해서 '''[[긴급조치]]권(즉 [[헌법]] 정지 명령권)'''까지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이걸 적극적으로 시행해서 말썽이었고 나치의 집권을 초래했다.]이었는데, 히틀러는 아예 대통령과 총리직을 하나로 합치는 것과 동시에 [[나치당]] 대표직까지도 하나로 합쳤던 것이다. 즉, '퓌러'란 호칭은 '''[[대통령]] + [[총리]] + [[당수|당대표]]'''를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법률은 [[국민투표]]에서 90%의 찬성률을 얻어 국민으로부터 추인을 받았다. >Gesetz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독일국 국가원수에 관한 법률 >Vom 1. August 1934. > >Die Reichsregierung hat das folgende Gesetz beschlossen, das hiermit verkündet wird: >국가 정부는 다음과 같은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공포된다. > >1. Das Amt des Reichspräsidenten wird mit dem des Reichskanzlers vereinigt. Infolgedessen gehen die bisherigen Befugnisse des Reichspräsidenten auf den '''Führer und Reichskanzler Adolf Hitler''' über. Er bestimmt seinen Stellvertreter. >1. 국가대통령의 직위는 국가수상의 직위와 통합된다. 결과적으로 국가대통령의 이전 권한은 '''지도자 겸 국가수상 아돌프 히틀러'''에게 이양된다. 그는 그의 대리인을 임명할 수 있다. > >2. Dieses Gesetz tritt mit Wirkung von dem Zeitpunkt des Ablebens des Reichspräsidenten von Hindenburg in Kraft. >2. 이 법은 힌덴부르크 국가대통령이 사망한 때부터 효력을 발휘한다. 이 법의 특이한 점은 [[국가원수]], [[정부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특정 직책을 가진 자가 아니라 아돌프 히틀러 개인에게 이양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히틀러는 원한다면 죽을 때까지 종신 퓌러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견해에서 퓌러는 관직 이름이라기보다는 '독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히틀러를 수식하는 것이었고, '퓌러라는 수식어를 가진' 히틀러를 독일과 동일시하였다. 따라서 퓌러라는 직책은 법리적으로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합친 것이지만, 퓌러는 대통령과는 달리 임기가 만료되는 일이 없으며, 총리처럼 의회 신임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나치 독일은 정부가 입법권을 가지고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독재국가였으나 퓌러가 가지는 구체적인 권한이 명시된 법을 제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히틀러가 곧 독일이므로, 그런 법률은 오히려 히틀러의 신성성을 해치는 것이었다. 당대표와 총리, 대통령을 모두 겸한 히틀러는 일단 자신의 공식 직함을 이전의 "국가수상(Reichskanzler)"에서 [[나치당]] 내부 직함이었던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으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1934년 8월 2일 독일 내무부 장관 [[빌헬름 프리크]]에게 보낸 법령에서 히틀러는 공식 및 비공식 직함을 "모든 미래를 위해(für alle Zukunft)", "지도자 겸 국가수상"으로만 언급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국가대통령(Reichspräsident)" 직위는 공식 직함으로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후술하듯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국가대통령 직위에 "특별한 의미(eine einmalige Bedeutung)", 즉 [[군주제]]의 황제에 상당하는 다양한 특권을 부여하였기 때문이었다.[* Erlaß des Reichskanzlers zum Vollzug des Gesetzes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vom 1. August 1934 (Reichsgesetzbl. I S. 747) v. 2. August 1934, RGBl. I S. 751. Hitler wies hierfür auf „die Größe des Dahingeschiedenen“ hin.] [[아돌프 히틀러]]는 국가대통령직(Reichspräsident)을 다시 채우지 않고 자신과 병합하여 공식적으로 폐지했다.[* So Andreas Dietz: Das Primat der Politik in kaiserlicher Armee, Reichswehr, Wehrmacht und Bundeswehr (= Jus Publicum; Bd. 210), Mohr Siebeck, Tübingen 2011, S. 356–357.] 이는 [[군주제]]를 극도로 혐오한 그가 정부 수반으로서 국가대통령의 특권에 공식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Vgl. Ian Kershaw, Führer und Hitlerkult, in: Wolfgang Benz, Hermann Graml und Hermann Weiß (Hrsg.), Enzyklopädie des Nationalsozialismus, 3., korr. Auflage, Klett-Cotta, Stuttgart 1998, ISBN 3-608-91805-1, S. 22–33, hier S. 28.] 국가대통령과 국가총리 집무 기관의 합병은 1934년 8월 19일의 국민투표에 의해 확인되었다.[* Verordnung zur Durchführung der Volksabstimmung über das Staatsoberhaupt des Deutschen Reichs (3. August 1934), in: documentArchiv.de.] 1934년 이후 [[나치당]] 외부의 직위에 대한 "퓌러" 사용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대표적으로 독일노동전선(DAF)의 대표는 "DAF의 지도자(Führer der DAF)"에서 "DAF의 참모장(Stabsleiter der DAF)"으로 변경되었다. 이어서 1939년 1월, 독일 언론은 더 이상 히틀러를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이라고 부르지 말고 '''"지도자(Führer)"'''라고 부르라는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 Zitat bei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durchges. und überarb. Auflage, Berlin 2007, S. 243 („mein Führer in der Wehrmacht“).] 한술 더 떠 이후 1942년 1월 22일의 지시에서는, "지도자 및 [[독일 국방군]]의 최고 사령관(Führer und oberster Befehlsherr der Wehrmacht)"이라는 용어를 "지도자(der Führer)" 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아예 명시하였다. 목표는 당연히 널리 퍼진 "Führer"라는 공식 명칭을 히틀러의 고유 이름으로 "재해석"하려는 것이었다.[* Zitat bei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durchges. und überarb. Auflage, Berlin 2007, S. 243 („mein Führer in der Wehrmacht“).] [[https://de.wikipedia.org/wiki/Beschluss_des_Gro%C3%9Fdeutschen_Reichstags_vom_26._April_1942|1942년 4월 26일의 대독일 의회 결의안]](RGBl. I p. 247)에서도 마찬가지로, "지도자(Führer)"가 주장한 권리가 확인되고 "지도자(Führer)"라는 명칭이 "지도자 겸 국가수상(Führer und Reichskanzler)" 대신 여러 번 사용되지만 "히틀러"라는 이름은 사용되지 않는다.[* Vgl. Cornelia Schmitz-Berning: Vokabular des Nationalsozialismus, 2. Aufl. 2007, S. 243; Beschluss vom 26. April 1942.] 1942년 8월에는 아예 의회에서도 "지도자(Führer)"로 직위가 바뀌었다.[* Siehe RGBl. I, Nr. 91 vom 29. August 1942.] 1945년 [[https://de.wikipedia.org/wiki/Politisches_Testament_Adolf_Hitlers|그의 유언장]]에서 히틀러는 공식 거주지에서 "지도자 겸 수상(Führers und Kanzlers)"이라고 쓰고 "국가 지도자(Führer der Nation)"로 서명했다. 그는 자신의 사후 자신의 직무를 국가대통령(Reichspräsident)과 국가수상(Reichskanzler)으로 다시 나눌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 이에 따라 국가대통령은 [[카를 되니츠]]에게, 국가수상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에게 나누어졌다.[* 당시 독일은 정부가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걸 넘어 총통 명령도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했다. 히틀러가 명령을 내려 퓌러직을 없애고 대통령과 총리로 나누는 것도 가능했다.] 국가대통령 카를 되니츠는 국가대통령 외에 국방군 최고사령관, 전쟁부 장관, 해군 총사령관을 겸하도록 하였다. 이 중 국방군 최고사령관직은 나치 이전 국가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역임하였던, 대통령이 당연직으로 겸직하는 직책이었다. 이를 히틀러가 대통령직을 흡수하며 승계한 후, 히틀러 사후 대통령직 분리로 되니츠가 승계한 것이다. 그러나 괴벨스는 가족과 동반자살했고 [[루츠 폰 크로지크]]가 총리 자리를 이어받았고, [[플렌스부르크 정부|되니츠가 대표하는 독일 정부]]는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했다. 히틀러는 일찍이 후계자로 [[헤르만 괴링]]을 차기 지도자로 선포했었고, 1939년에는 이를 법률로도 못 박았다. 그러나 전쟁 말기 괴링이 [[마르틴 보어만]]의 정치 공작에 의해 히틀러에게 오해를 사 제명되면서 이 후계자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히틀러는 [[군주제]]를 엄청나게 혐오했기 때문에 이 표현을 무척 긍정적으로 여겼다고 한다. 히틀러는 무능한 인간도 지도자에 오를 수 있다면서 세습제에 대한 막대한 불만을 저서에서 여러 번 표출했으며, 히틀러가 자식을 낳지 않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였을지 모른다. 이러한 사고 방식에는 [[빌헬름 2세]]의 무능함도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 용례 == 퓌러는 지도자(리더)라는 뜻이기 때문에 어느 조직의 수장이든 다 사용가능한 단어이며, [[나치 독일]]은 퓌러라는 말을 히틀러에게뿐만 아니라 나치당 산하 정치단체의 수장 직함에도 붙였다. 예를 들면 [[슈츠슈타펠]]의 최고지도자는 라이히스퓌러-SS(Reichsführer-SS, 국가지도자-SS)라 칭해졌다. '퓌러'는 남자인 히틀러 하나뿐이었으므로 정치적 의미에서 여성형인 '퓌레린'을 단독으로 칭할 일은 없었으나, 퓌레린은 합성어로는 이곳저곳에 쓰여서, 나치 독일 시절 나치당 산하 여성 정치단체인 국가사회주의여성동맹(NS-Frauenschaft)의 수장은 라이히스프라우엔퓌레린(Reichsfrauenführerin)으로 칭해졌다. 나치와 관계가 깊은 단어인 탓에 이 단어는 이제 독일 내에서 잘 쓰이지 않지만, 독일어의 언어학적 특성상 다른 단어와는 혼합되어서는 아직도 잘 쓰인다. Lokführer([[철도기관사]]), Führerstand([[조종석]]), Führerschein([[운전면허증]][* 독일어 동사 führen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무언가를 이끄는(lead) 의미로 쓰이나, 탈것을 조종하는 의미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Führer가 들어가는 것이다.]), Bergführer(산악 [[가이드]]) 등이 대표적. 이런 점 때문에 Chef, Leiter 등으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아예 '지도자'라는 단어는 안퓌러(Anführer)로 바꾼 지 오래이다. 이러한 용법의 연장선상에서 [[브이 포 벤데타]]의 [[영화]] 버전에 등장하는 가공의 [[독재자]] 아담 서틀러의 직책은 한국어 자막에서 오역된 "[[의장]]"이 아니라 "총통"이나 최소한 "총리"로 번역되어야 맞다는 의견도 있다. 복돌이 자막으로는 "대법관"이라고 번역됐다. [[영국]] 어휘에서 "the Lord(High) Chancellor"는 정관사가 붙어 단수로 쓰이며 의미는 "(영국의) 대법관"이나[* [[의회]]가 개회 중일 때는 상원의장의 의미로 쓰인다.], "Chancellor"는 독일의 수상을 부를 때 쓴다. [[스타워즈|스타워즈 프리퀄]]에 등장하는 [[최고 수상]]직, 예를 들어 [[쉬브 팰퍼틴|팰퍼틴]]도 마찬가지. [[나치식 경례|나치를 연상시키는 경례]]에서도 혐의는 짙다. == 번역 == [[한자]]를 사용하는 한국, [[일본]]에서는 Führer를 '총통'으로 번역한다. 한국에서 히틀러의 직위를 지칭할 때 쓰는 표현인 [[총통]]의 경우, 이 당시 일본의 언론에서 히틀러를 총통이라 표기하였던 것이 굳어진 것이다. 총통을 단순히 공식적인 지위로만 쓰자면 히틀러가 무명 시절부터 정권을 잡기 직전에도 Führer로 불린 것이 설명이 안 되긴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야당 지도자로서의 히틀러에 대한 직함 Führer는 수령이나 당수로 번역했다.], 1934년부터 히틀러의 직책을 일본에서 총통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쓰고 있다. 이 단어가 오늘날 [[대만]] 국가원수인 '[[대만 총통|총통]]'과 겹치기 때문에 종종 오해를 초래하기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대통령'을 총통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이며, 중국어에서는 Führer를 원수(元首)라고 번역한다. 국내에서는 한때 Führer를 '영도자'로 번역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내 묻히고 말았다. 일례로 [[영국]]의 전쟁사학자 [[존 키건]] 경의 <2차세계대전사>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Führer"를 '영도자'로, 종래의 "총통 지령" 또는 "총통 명령"을 '영도자 지령'으로 번역했다. [[영어권]]에서도 나치 독일의 퓌러는 워낙 특이한 지위라서 Führer라는 독일어 단어를 번역하지 않고 "독일 제3제국 총통"이라는 의미 그대로 쓰는 학자들이 많다. [[영어]]에서 발음할 때는 독일어 '위(ü)' 발음이 영어에 없다 보니 영어권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원어 발음을 보존하지 않고 '퓨러', 혹은 '푸러' 정도로 발음한다. 한편 독일어에서는 1979년 이후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라흐바르]]([[루홀라 호메이니]]→[[알리 하메네이]]) 직위를 Führer로 [[https://de.wikipedia.org/wiki/F%C3%BChrer_(Iran)|번역]]한다. 정확히는 Religionsführer(종교 지도자), 더 정확하게는 Oberste Religionsführer(최고 종교 지도자). == 매체에서 == 실제 나치 총통은 아돌프 히틀러 단 한 명뿐이었지만, 나치 독일의 승리를 가정하는 [[대체역사물]]에서는 히틀러 사후에도 후임 총통이 계속 등장하기도 한다. 작품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히틀러는 1950~60년대에 사망한다. 패전하고 자살하지 않았더라도 히틀러는 워낙에 건강이 좋지 않았고 생활 태도도 개판이어서 장수하기는 무리였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후의 2대 총통은 보통 [[암살]]에서 살아남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취임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워낙에 권력욕이 강하고 능력도 뛰어난 인물이기에 계속 살아남아서 10여년 이상 [[헤르만 괴링|괴링]], [[하인리히 힘러|힘러]], [[파울 요제프 괴벨스|괴벨스]], [[마르틴 보어만|보어만]] 따위의 결함투성이 인간들과 권력 다툼을 했다면 실제로 2인자가 되거나 히틀러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높다. 반면 나치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대역물인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하이드리히가 힘러와 괴링을 제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명색이 갈색의 배후자인 [[마르틴 보어만]]을 꺾지는 못한 것으로 나온다. 제2대 총통 보어만이 사망한 이후 제3대 총통의 자리는 대중연설을 통한 프로파간다로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차지하게 된다. 그 외에는 [[하인리히 힘러]], [[아르투어 자이스잉크바르트]] 등이 언급되며, 특히 힘러는 높은 성의 사나이의 TV판에서 원작과 달리 생존해 괴벨스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총통직에 오른다. 하이드리히도 사망한 이후의 3대 총통부터는 대부분 가상의 인물이다. 나치 독일과 나치당 자체가 1945년에 몰락하였기 때문에, 하이드리히의 뒤를 이을 만한 실존 나치 관료는 역사에 기록될 수가 없었다. 하급직의 사회 초년생 무명인물이면 모를까. 또한 실존 인물이면서 딱히 나치 [[관료]]가 아닌 인물을 등장시키면 굉장한 논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찾는다면 [[발두어 폰 시라흐]]나 [[쿠르트 발트하임]], 굳이 더한다면 [[에리히 폰 만슈타인]] 정도가 총통 자리에 올라가는데, 쿠르트 발트하임의 경우 실제 [[오스트리아 대통령]]도 역임했으니 적절한 편. 그외엔 [[독일 사회주의 국가당]]이나 [[독일 민족민주당]]의 인사들 정도가 나와야 하는데 마이너한 인물이 많다. 아돌프 히틀러의 전기 영화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다운폴/패러디|다운폴]]에서도 [[한스 크렙스]]가 [[아돌프 히틀러]]에게 'Mein Führer(마인 퓌러)'로 호칭한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총통 각하' 정도가 된다. == 기타 == [include(틀:나치즘)] [[분류:나치 독일 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