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몰년 미상]][[분류:후한의 인물]][[분류:손오의 인물]] 馮則 생몰년도 미상 [목차] == 생애 == [[후한]] 말 [[오(삼국시대)|오나라]]의 인물. [[손권]] 휘하의 기마 무사(騎士)인 '''병졸.''' 208년 봄에 [[황조(삼국지)|황조]]를 공격할 때 황조가 수군을 파견해 손권의 군대를 막자 도위 [[여몽]]이 황조의 선봉을 격파하거나 [[능통]], [[동습]] 등이 모든 정예 부대로 황조를 공격해 강하성을 함락했는데, 황조가 혼자 달아나자 추격해서 그의 머리를 베었다. 황조와 싸운 것은 3대에 걸쳐 싸운 것으로 손견이 형주의 [[유표]]를 공격할 때 황조와 싸우거나 [[손책]]도 [[원술]]과 독립하면서 군사적으로 충돌했으며, 손권은 203년에도 공격한 적이 있었다. 신분이 높지도 않은 일개 병졸인데도 그 이름이 사서에 기록된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보통 전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전공은 대부분 지휘관에게 귀속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관도대전]] 당시 [[문추]]는 난전 중 전사했고, [[순우경]]은 [[악진]] 휘하의 병졸한테 사로잡혀 코가 잘린 뒤 [[조조]]의 심문을 받고 참수되었으며, 제갈량의 북벌 당시 [[장합]]은 [[제갈량]]과 싸우다가 활에 맞아 죽었다. 하지만 사서에서는 [[조조]]가 [[문추]]를 참했다, [[악진]]이 [[순우경]]을 참했다. [[제갈량]]이 [[장합]]을 쏘아 죽였다 정도로 기록될 뿐 직접적으로 사로잡거나 죽인 병졸의 이름이 나오진 않는다. 다만 위 상황은 각각 조조, 악진, 제갈량의 군세가 적을 몰아세우는 상황으로, 저 상황을 만든 것이 지휘관의 공이기 때문에 특정 병졸이 적 지휘관을 죽였다고 한들 그 병졸의 공 자체는 그렇게까지 크지 않다.[* 물론 적장을 사로잡거나 죽인 사실이 입증되면 포상을 받긴 했겠지만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까진 아니란 것이다.] 황조는 패배 후 혼자 달아났다고 되어있고, 풍칙은 이를 추격해 죽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라도 죽을 수 있는) 난전 중에 병졸 아무나한테 죽은 것과는 경우가 확연히 다르다. 게다가 위 경우는 주요 적장 중 하나일 뿐이지만 손권에게 있어 황조는 아버지를 죽인데다 아버지, 형, 자신과 계속해서 충돌이 있었던 철천치원수이니 그를 죽인 인물을 특별히 대접해줄 만하다. == 창작물에서 == 같은 꿈을 꾸다 in 삼국지에 등장했다. 이준경이 시상에 들를 때에, 역병에 걸린 채로 격리 구역 밖으로 이탈해 강하 사선현으로 역병을 옮기려다 끌려가던 아이로 첫 등장했다. 형주 강하군 서릉현에서 태어났다고 했으며 황조가 강하 태수로 부임하고 사선현으로 치소를 옮겨서 서릉현이 빈촌이 되자, 풍칙의 아버지가 [[황조#s-3]]에게 따지다 사망하여서 황조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것으로 설정이 짜여져 있다. 이준경은 풍칙을 살리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20만 석이나 되는 쌀을 쓰게된다. 그리고 풍칙에겐 약재를 주어서, 그가 낫자마자 [[송겸]]의 휘하로 배속시키게 했다. 조조군의 수춘 공격(3부 4장 낙일(落日) 편) 때, 화계를 위해 송겸과 함께 미끼가 되었고, [[이통]]과 싸우는[* 벌써 [[풍해]]와 [[노초]]를 죽이고 싸우는 상태였다.] 송겸을 잡으러 가는[* 송겸과 풍칙을 미끼로 쓴다는걸 깨달은 [[조조]]가 [[하후연]]에게 송겸을 생포하라고 명했다.] 하후연을 막으러 갔으나, 실력과 장비[* 조조가 보검을 내려주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연륜까지 딸리던 풍칙은 하후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웠고, 이준경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사망한다. >"살아날 기회를 박차다니, 어리석구나. 어째서냐?" 하후연은 손등으로 묻은 피를 닦아냈다. 예리하게 절단된 풍칙의 머리를 보니 그 눈빛은 원망과 두려움보다 오히려 담담하게 하후연을 향해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군인이니까.''' 후에 하후연은 결국 [[황충|바닥에 쓰러져있는 노병에게 살해당하고]], 상관인 송겸도 [[여건#s-2]]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