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000,#ddd 폴란드-벨라루스-우크라이나 관계 관련 틀}}}'''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20]] [[파일:벨라루스 국기.svg|width=20]]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width=20]] || ||<-7><:><#fff,#2d2f34>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폴란드의 대외관계)] ---- [include(틀:벨라루스의 대외관계)] ---- [include(틀:우크라이나의 대외관계)] ---- }}} || ||
[[파일:폴란드 국기.svg|width=100%]] || [[파일:벨라루스 국기.svg|width=100%]] ||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width=100%]] || || [[폴란드|{{{#fff '''폴란드'''}}}]] || [[벨라루스|{{{#fff '''벨라루스'''}}}]] || [[우크라이나|{{{#FFFFFF '''우크라이나'''}}}]] || [목차] == 개요 == [[폴란드]],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삼각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3국은 [[슬라브]] 국가에 속해 있지만, [[동슬라브]]족에 속한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과는 별개로 [[폴란드인]]은 [[서슬라브]]족에 속하며 언어와 종교, 문화 관련하여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폴란드는 독일, 체코와 문화적으로 접점이 많으며 반대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및 그리스와 접점이 많다. 이러한 연유로 폴란드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3국은 역사적, 정치적인 이유로 입장 차이가 달라지는 상황이다. 오늘날 기준으로는 [[신냉전]] 시대 벨라루스가 [[친러]]- [[반서방]] 노선을 타면서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갈등이 늘어나고 있다. == 역사적 관계 == === 중세 ===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게르만족들이 서쪽으로 대이동하는 과정에서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폴란인들이 오늘날의 폴란드 일대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폴란인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 영지|피아스트 왕조]]를 건국하던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일대에는 [[키예프 대공국]]이 번성하였으며, 폴란드 동부 벨라루스 일대에는 투로프 공국, [[폴로츠크 공국]] 같은 키예프 루스 계열 공국들이 등장하였다. 키예프 대공국을 비롯한 동슬라브족들은 [[동로마 제국]]의 영향으로 [[정교회]]로 개종하였다. [[키예프 대공국]]이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한 이후, [[폴란드 왕국]]은 점차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서쪽의 [[갈리치아]] 지방을 병합하였다. 폴란드의 지배 하에서 갈리치아 지방은 15세기부터 황소를 사육하여 [[실레시아]] 지방으로 수출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를 계기로 황소는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금화나 은화에 상응하는 교환의 단위가 되었다. === 근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폴란드-리투아니아)] 14세기 말 폴란드 왕국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을 정복한 [[리투아니아 대공국]]과 [[동군연합]]을 맺었고, 16세기 [[루블린 조약]]을 통해 [[연방제]]로 통일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 거듭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키예프 공국에 속했던 지역 상당수가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루테니아인]] 귀족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폴란드어]]를 사용하고 [[폴란드인]]과 통혼하며 사실상 폴란드인들과 동화되었다. 벨라루스 일대의 영토는 리투아니아 대공국 측의 영토로 계속 남아있을 수 있었으나, 벨라루스의 토지는 비옥도가 떨어지고 생산성이 높지 못했다. 대신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의 곡물들을 [[그단스크]] 항으로 옮기는 뗏목에 사용될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다. 다른 한편으로 16세기 말 이후 폴란드 리투아니아는 루테니아 정교회 소시민들과 농노들에게 [[정교회]] 전례를 보전하되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하면서 심각한 갈등이 일어났다.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모스크바 대공국]]의 후신 [[루스 차르국]]과 사이가 무척 나빴는데, 그 이유는 루스 차르국이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속국이던 리보니아 연맹의 공국들을 공격하는 동시에 리투아니아 대공국 동부의 주요 도시 [[스몰렌스크]]를 계속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는 [[지그문트 3세 바사|지그문트 3세]] 시절 루스 차르국이 [[혼란 시대]]에 빠지자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도 했다. 루스 차르국과 코사크는 정교회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했던 상황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가 심지어 우크라이나 대초원 지대의 반자치 집단이었던 [[코사크]]들한테까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를 강요하자 코사크들은 [[보흐단 흐멜니츠키]]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봉기하였고, 이를 계기로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키이우|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영토 대부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루스 차르국은 [[표트르 대제]] 때부터 근대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 제국]]으로 거듭났고, 다른 한편으로 이웃한 [[합스부르크 제국]]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의 국력 역시 급속히 신장되었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국력을 추월하게 되었다. 18세기 후반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폴란드 분할]]로 인해 멸망하고 우크라이나 일대와 벨라루스 일대는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 19세기 === 19세기에는 폴란드 분할로 폴란드의 동부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 이른바 [[러시아령 폴란드]]로 편입되었다. 벨라루스 전 지역과 우크라이나 중부와 동부 대부분 지역 역시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근세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강요로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으로 반강제로 개종당했었던 벨라루스인들은 러시아 제국 지배 하에서 다시 한 차례 정교회로 환원되었다. 이는 에스토니아와 체코의 유사 사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벨라루스인들 사이에서 종교 관련한 회의주의가 만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다른 한편으로 로마 가톨릭을 고수하던 벨라루스 일대의 폴란드인 지주들은 11월 봉기와 1월 봉기가 차례로 실패하면서 대거 귀족 특권을 잃어버리고 프랑스/미국 등으로 망명하거나 시베리아로 유배를 당하면서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9세기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은 이미 17세기 [[흐멜니츠키 대봉기]]의 여파로 폴란드계 지주들의 세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고, 러시아 제국 지배 하에서 우크라이나 [[체르노젬]]의 주 소유주들은 대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에 기반한 러시아 대귀족들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우크라이나 일대는 상대적으로 11월 봉기와 1월 봉기에 영향을 적게 받은 편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서부와 폴란드의 남부 영토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으로 편입되었다. [[동방 가톨릭 교회]]가 대대적인 박해를 받았었던 러시아 제국 영토와 다르게 오스트리아 제국 내에서는 정교회 대신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등등 교파가 더 우대를 받았고 이러한 연유로 갈리치아와 [[자카르파탸]][* 중세 이래 헝가리 왕국 영토였다. 그리고 근대 당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일부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문서와 [[대타협]] 문서 참조] 내에는 동방가톨릭 교회가 교세를 유지하게 되었다. === 20세기 초반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폴란드는 [[폴란드 제2공화국]]을, 벨라루스는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을,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과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세워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벨라루스는 볼셰비키에게, 서우크라이나는 폴란드에게 멸망했다. 우크라이나측은 볼셰비키 및 폴란드와 모두 적대했지만, 볼셰비키에게 영토 대부분을 점령당함에 따라 전자가 더 큰 위협이라고 판단하여 폴란드와 동맹을 맺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볼셰비키와 전쟁]]을 치렀다. 폴란드는 이 전쟁에서 벨라루스 서부를 획득했지만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은 멸망했다. 전간기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은 2등시민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전간기에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아르헨티나]]로 이민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계 아르헨티나인]], [[벨라루스계 아르헨티나인]] 문서 참조. 전간기에는 수십만의 폴란드인이 [[벨로루시 SSR]] 및 [[우크라이나 SSR]] 서부에 거주했다. 1932-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으로 우크라이나인과 재소 폴란드인은 큰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 [[대숙청]]이 한창이던 [[스탈린]] 정권 하에서 [[NKVD]]가 1937-1938년 [[https://en.wikipedia.org/wiki/Polish_Operation_of_the_NKVD|폴란드인 작전]]을 벌여 재소 폴란드인 1/6에서 1/3이 학살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당시 소련과 폴란드는 1932년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 [[뮌헨 협정]] 직전까지 관계가 오히려 개선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대전은 [[독소전쟁]]으로 이어졌다. 폴란드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으로 각각 수백만의 사망자를 내는 역사적 비극을 공유하게 되었다. 초반에 나치 독일에 무너지는 듯 했던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우세를 보이고, 결국 소련군은 베를린을 함락시킨 후 동유럽과 중유럽 영토 전반을 대대적으로 재조정하였다. 폴란드의 영토로 편입되었던 우크라이나 서부, 벨라루스 서부가 소련의 영토로 편입되었으며 폴란드에는 그 대가로 독일 동부 영토 상당부분을 떼어주었다. === 20세기 후반 === [[냉전]]시절에 폴란드는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란 소련의 위성국이 되었다. 당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각각 소련의 공화국인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2차대전의 참상을 급속히 복구하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과 상당한 수준으로 연계가 이루어졌던 상황이었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폴란드는 [[탈냉전]] 이후에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91년 [[벨라베자 조약]]으로 [[소련 해체]] 이후에는 독립국이 됐다. 90년대 후반에 폴란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에 가입했다. === 21세기 === 2004년에 폴란드는 [[유럽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폴란드는 탈냉전 이후에 친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폴란드와 함께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반면, 벨라루스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친러]]정책을 실시하고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를 견제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벨라루스는 폴란드, 우크라이나와 갈등이 존재하며 2010년대부터 [[유로마이단]],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이 일어나자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협력을 강화했다. 벨라루스는 2010년대부터 러시아와 갈등이 생겨났지만, 2020년에 벨라루스에서 [[2020년 벨라루스 시위|시위]]가 일어나자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통합을 추진하면서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와는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 벨라루스측이 우크라이나 외교관들을 추방시켰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2D&mid=shm&sid1=104&sid2=233&oid=001&aid=001306867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벨라루스 철도 노동자들과 해커들로 이루어진 반체제 세력들이 러시아군의 철도 이용을 막았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136550?sid=104|#]]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며 대러 제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3197008|#]] 벨라루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저항군 묘지를 파괴하자 양국간 갈등이 일어났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400502?sid=104|#]] 9월 8일, 벨라루스가 폴란드 국경 인근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1412325?sid=104|#]] == 문화 교류 ==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으면서 폴란드 문화로부터 상당히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근세 폴란드는 [[르네상스]] 문화를 동유럽에 전파하는 첨병 역할을 맡았고, 이러한 연유로 중근세 [[루테니아]]의 지배층들 역시 폴란드 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벨라루스어]]와 [[우크라이나어]]는 동슬라브어파 계열임에도 불구 서슬라브어파 [[폴란드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한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향으로 생성된 정교회 전례를 유지하되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파가 오늘날에도 우크라이나 서부를 중심으로 교세가 적지 않은 편이다.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동슬라브어파 언어인 [[러시아어]] 화자가 많은 반면, 폴란드는 애초에 [[폴란드어]]와 [[러시아어]]가 차이점이 적지 않기 때문도 있고 반러 감정도 적지 않기 때문에, 소련 해체 이후 학교를 다닌 인구 중에서는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 가능한 인구가 제한된 편이다. == 관련 문서 == * [[폴란드/외교]] * [[벨라루스/외교]] / [[유럽연합-벨라루스 관계]] * [[우크라이나/외교]] / [[유럽연합-우크라이나 관계]] * [[폴란드-벨라루스 관계]] * [[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 *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관계]] * [[유럽 평의회]] * [[유럽연합]] /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 폴란드만 가입되어 있다.] * [[독립국가연합]] / [[유라시아 연합]][* 벨라루스만 가입되어 있다.] * [[루블린 삼각동맹]][* 벨라루스는 가입하지 않았다.] * [[폴란드/역사]] * [[벨라루스/역사]] * [[우크라이나/역사]]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 [[러시아 제국]] *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 [[소련]] -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폴란드 인민 공화국]], [[소련 해체]] * [[신냉전]] / [[유로마이단]] / [[돈바스 전쟁]] / [[라이언에어 4978편 벨라루스 강제착륙 사건]] / [[2021년 벨라루스-유럽 연합 국경 위기]] /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폴란드/경제]] * [[벨라루스/경제]] * [[우크라이나/경제]] * [[폴란드인]] / [[벨라루스인]] / [[우크라이나인]] * [[폴란드어]] / [[벨라루스어]] / [[우크라이나어]]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분류:중부유럽 국가]][[분류:동유럽 국가]][[분류:폴란드의 외교]][[분류:벨라루스의 외교]][[분류:우크라이나의 외교]][[분류:폴란드-우크라이나 관계]][[분류:폴란드-벨라루스 관계]][[분류:우크라이나-벨라루스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