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노벨상|{{{#cd9f51 노벨}}}]][[노벨경제학상|{{{#cd9f51 경제학상}}}]] {{{#cd9f51 수상자}}}'''}}} ||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width=150px]] || || [[노벨경제학상/수상자|{{{#cd9f51 1970년}}}]] || || '''폴 새뮤얼슨''' || [[파일:external/1gr.cz/KOT2fc329_apaul_0014768013.jpg]] [youtube(RbIzwTGN3Yc)] Paul Anthony Samuelson [[1915년]] [[5월 15일]] ~ [[2009년]] [[12월 13일]] (향년 94세) [목차] == 개요 == [[미국]]의 경제학자. [[인디애나]] 주 출신이며 [[1931년]]에 [[시카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1935년에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36년 [[석사]]학위를, [[194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0년도 [[MIT]] 조교수로 일하다가 1947년에 정식 교수가 되었다. 현시 선호 이론(revealed preference theory)을 개발했고 신고전학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을 이루어냈다. 또한 [[효율적 시장 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의 개발에도 일조했고 [[후생경제학]]에도 큰 자취를 남겼다. 또한 [[국제경제학]]의 [[헥셔-올린 모형|헥셔-올린 모델]]에서나, 재정학 쪽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심지어는 인구가 정상상태(steady state)일 때 공적연금의 재정방식은 완전부과방식(PAYG)가 최적이라는 논문을 남겨 보험계리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현대 경제학의 각 분야가 어느 정도 정립된 이후에도, 세부전공을 가리지 않고 큰 연구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흔히 '''경제학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린다. 새뮤얼슨 이후의 경제학자들은 모두 특정 세부 전공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며, 새뮤얼슨처럼 소비자 이론부터 거시 경제 정책론까지 전방위적으로 활약한 학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현대적 의미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를 정립한 인물로도 꼽힌다. 맨큐의 경제학을 비롯한 오늘날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들은 그의 저서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생애 == [[유대인]]이다. 근친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서로 4촌관계. 시카고를 떠나 인디애나에서 태어난것도 시카고 일리노이는 4촌혼인을 금지해서 이다. 가계도를 봐도 조카로 [[로렌스 서머스]],[* [[빌 클린턴]] 재임 시절에 미국 재무 장관을 역임했고, 이후 하버드대 총장으로도 재직했던 경제 관료 출신의 저명 학자다.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윙클보스 형제]]가 면담을 요청했던 당시 하버드대 총장으로 등장(물론 본인은 아니고)했다. [[이창용]] 총재의 박사 시절 은사로도 알려져 있다.] 처남으로 [[케네스 애로우]][*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며, 1972년 52세의 나이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에스테르 뒤플로의 47살 기록의 뒤를 이은 두 번째로 어린 경제학상 수상 기록.]를 두는 등, 나름 명망 있는 가문. [[신자유주의]]와 자유 시장론의 상징이라고 볼 수있는 시카고 대학 출신이지만, 케인지언 이론에도 상당히 정통했다. 따라서 [[시카고학파]]의 자유 시장 이론과 케인지언의 혼합 경제 이론을 절충한 신고전학파 종합 이론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합리적인 규제가 동반된 시장이 훨씬 이롭다고 하였다. [[밀턴 프리드먼]]과 사적으로는 친구였지만,[* 두 사람 모두 시카고 대학교 출신 경제학자이기 때문이다. 새뮤얼슨은 시카고에서 학사 학위를, 프리드먼은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리드먼과 학문적 갈등이 있었다. 시장주의적인 프리드먼과 케인지언 성향의 새뮤얼슨은, 둘 모두 신고전학파 종합으로 분류가 된다고는 해도, 사상적으로는 꽤 다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학문적 경쟁 관계는 선배격인 케인즈-하이에크의 것과 동급으로 인식되었고, 2021년에는 이를 다룬 <새뮤얼슨 vs 프리드먼>이라는 책도 나왔다.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17|한국에서는 2022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소련]]이 존속 가능한 체제임을 보였다고 1989년에 의견을 표명했다. '사실임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이론'으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 우위|비교 우위론]]을 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하버드 대학교]] 박사 과정 당시 지도 교수가 [[조지프 슘페터]]였다. 박사 논문 심사 때 슘페터가 '''"Did we pass?"'''라고 물었다고 하는데, 즉 '''"우리가 잘 이해했는가?"''' 스승이 제자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인 셈이다. 저 박사 논문은 이후 책으로 출판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경제학의 고전 중 하나인 [[https://ko.wikipedia.org/wiki/%EA%B2%BD%EC%A0%9C_%EB%B6%84%EC%84%9D%EC%9D%98_%EA%B8%B0%EC%B4%88|<경제 분석의 기초>]]이다. 그러나 정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모교인 하버드에서는 교수가 되지 못하고 MIT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분류:미국의 경제학자]][[분류:1915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노벨경제학상 수상자]][[분류: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 수상자]][[분류:시카고 대학교 출신]][[분류: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게리(인디애나 주) 출신 인물]][[분류:유대계 미국인]][[분류:MIT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