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bottom, rgba(50%, 50%, 50%, 30%) 0%, transparent);" {{{+1 {{{#000000,#e5e5e5 '''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Fábio Aurélio.jpg|width=100%]]}}} || ||<-2> {{{#000000,#e5e5e5 '''이름'''}}} || '''{{{+1 파비우 아우렐리우}}} [br] Fábio Aurélio''' || ||<-2> {{{#000000,#e5e5e5 '''본명'''}}} ||파비우 아우렐리우 호드리게스 [br] Fábio Aurélio Rodrigues || ||<-2> {{{#000000,#e5e5e5 '''출생'''}}} ||[[1979년]] [[9월 24일]] ([age(1979-09-24)]세) / [br]{{{-1 [[브라질]] [[상파울루]]}}} || ||<-2> {{{#000000,#e5e5e5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브라질)] || ||<-2> {{{#000000,#e5e5e5 '''신체'''}}} ||173cm 73kg || ||<-2> {{{#000000,#e5e5e5 '''직업'''}}} ||[[축구선수]] ('''[[레프트백]]''', [[측면 미드필더]] / ^^은퇴^^) || || {{{#000000,#e5e5e5 ''' 소속 ''' }}} || {{{#000000,#e5e5e5 ''' 선수 ''' }}} ||[[상파울루 FC]] (1997~2000) [br] '''[[발렌시아 CF]] (2000~2006)''' [br] '''[[리버풀 FC]] (2006~2012)''' [br] [[그레미우]] (2012~2013) || ||<-2> {{{#000000,#e5e5e5 '''국가대표'''}}} ||없음 || [목차] [clearfix] == 개요 == 과거 [[발렌시아 CF]]와 [[리버풀 FC]]에서 활약했던 [[브라질]] 국적의 선수이다. == 클럽 경력 == === [[발렌시아 CF]] 이전 === 1997년 17세의 어린 나이에 [[상파울루 FC]]에서 데뷔경기를 가졌다. === [[발렌시아 CF]] === 브라질 U-17, U-20 팀을 거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올림픽 이후 [[발렌시아 CF]]와의 계약이 확정되었다. 계약기간은 6년. 01-02 시즌부터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베법사]]의 지도 아래 발렌시아의 31년만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02-03 시즌에는 리그 27경기를 포함해 총 36경기를 소화하면서 팀의 핵심멤버로 성장하였다. 03-04 시즌에는 팀이 2년만에 리그를 다시 제패했고 '''구단 최초'''로 UEFA컵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정작 본인은 장기부상으로 인해 한 시즌 동안 100분도 채 뛰지 못했다. === [[리버풀 FC]] === || [[파일:fabio_aurelio_free_kick.jpg|width=100%]] || || '''08-09 챔스 8강 2차전 [[첼시 FC]]를 상대로 뽑아낸 허를 찌르는 프리킥골 이후'''[* 이 날 경기는 첼시와 리버풀 양 팀 팬들이 21세기 챔피언스리그 명승부를 뽑을 때 승패여부에 무관하게 반드시 거론하는 전무후무한 혈전으로, 선수들도 팬들도 해설자도 관중들도 모두 정신줄을 놓은채 하얗게 불태운 명경기였다. 오히려 이 경기 때문에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가 머리로 미친 존재감을 보여준 1차전이 묻혔다.] || 실력으로 [[욘 아르네 리세]]를 밀어냈으나 부상으로 리버풀 레프트백 잔혹사의 시조가 된 선수[* 리세가 2008년 여름 로마로 이적한 후 아우렐리우가 딱 한 해만 그나마 멀쩡한 폼을 보여준 뒤 무너지면서 리버풀 레프트백은 2017/18시즌 [[알베르토 모레노]]의 갱생, [[앤드루 로버트슨]]의 가세 이전까지 8년에 달하는 세월을 돌려막기로 때워야 했다. 07/08 시즌부터 계산하면 10년간 이 자리에서 땜질에 나선 오른발잡이 선수만 해도 대여섯 명은 될 정도. 글렌 존슨, 존 플라나간, 알바로 아르벨로아, 마틴 켈리, 조 고메즈, 심지어 미드필더 제임스 밀너까지 오른발잡이였다. 단적으로 리세와 아우렐리우, 모레노와 로버트슨의 나이 차이는 12년~15년에 달한다. 그 사이 연배의 레프트백들이 모조리 크게 망했다] 2006년 이적료 없이 자유계약으로 [[리버풀 FC]]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이적 과정에서 자신의 은사인 [[라파엘 베니테즈|베니테즈]] 감독이 리버풀에 있던 것이 리버풀로의 이적을 결심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은 4년. 등번호는 [[12]]번이었으나, 2010년 재계약 이후 [[6]]번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아우렐리우가 6번 달고 뛴 경기가 얼마 없어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 사실을 팬들에게 알려주면 [[TMI]] 취급당한다는게 아이러니다. 이적 첫 시즌부터 [[욘 아르네 리세|리세]]와 경쟁 체제를 가져가며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말에 [[PSV 에인트호번]]과의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아웃이 확정되었고, 반 년 가량 푹 쉰 뒤 다음 시즌 [[FC 포르투]]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복귀하였다. 07-08 시즌 좋은 활약을 보여주다가 [[첼시 FC|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리세의 영광스러웠던 리버풀 커리어가 너무도 잔인하게 끝장난 그 경기.]에서 [[조 콜(축구선수)|조 콜]]과 충돌 이후 다리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또 시즌아웃 당하였다. 08-09 시즌 또 종아리 부상으로 약 2~3주 정도 결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만 안드레아 도세나의 영입으로 주전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했지만 결국 도세나를 밀어내는데 성공하였고, [[포츠머스 FC|포츠머스]]전에서의 간접프리킥 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맨유]]전에서의 프리킥 골 등 킥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클래스를 과시했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첼시 원정에서 허를 찌르는 프리킥으로 [[페트르 체흐]]를 농락하면서 선취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였고, 한 시즌 동안 무려 33경기를 소화하며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09-10 시즌 초반에는 후에 서술할 '''[[파비우 아우렐리우#s-4|엽기적인 부상]]'''을 당하면서 최대 6개월정도 결장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아우렐리우가 부상당한 동안 계속 백업으로 있던 [[에밀리아노 인수아]]가 주전을 차지한다.[* 다만 인수아 역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으며 라파 베니테즈가 경질되고, [[로이 호지슨]]이 후임 감독으로 부임한 후 리버풀은 [[폴 콘체스키|새로운 레프트백]]을 [[먹튀|영입하게 되는데]]...] 원래 09-10 시즌이 끝나고 자유 계약으로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아무도 원하는 팀이 없어서 다시 리버풀에 2년 계약에 서명하였다. 10-11 시즌 [[트라브존스포르]]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며 장기간 결장하게 되었다. 긴 회복시간 이후 복귀했으나 4월 17일 [[아스날 FC]]전에서 또다시 허벅지 부상을 당했다. 11-12 시즌은 [[호세 엔리케]]의 영입과 잔부상으로 인해 입지가 좁아져 겨우 4경기에 출장하는 데에 그쳤다. 시즌종료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리게 되었다. === [[리버풀 FC]] 이후 === 2012년 리버풀과의 계약이 끝난 후 [[그레미우]]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부상으로 인해 2014년 4월 4일, 만 34세의 나이로 공식 은퇴를 선언하였다. == 국가대표 경력 == 브라질 U-17 팀, U-20 팀 등을 거쳐왔으며, 2000년에는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하여 주전으로 뛰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성인 대표팀 경력은 전무한데, 사실 몇 차례 소집이 된 적은 있었으나 그 놈의 부상 때문에 하차를 반복하면서 대표팀 경력이 없었던 것이다. 이쯤되면 정말 지독한 유리몸이 아닐 수가 없다. == 플레이 스타일 == || [youtube(DijWBnpFKsg)] || [youtube(m4rBs_fiUJc,start=191)] || 사실 부상때문에 얼마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상당히 날카로운 왼발을 가지고 있다. 왼발이 필요한 지역에서는 항상 킥을 전담해서 직접 골을 넣거나, 당시 뛰던 [[페르난도 토레스|토레스]]나 [[디르크 카위트]] 등의 골을 돕는 등 쏠쏠하게 공격포인트를 쌓아올렸다. 이러한 왼발을 바탕으로 발렌시아 시절에는 [[루벤 바라하]]와 함께 팀내 득점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아우렐리우가 왼쪽 미드필더까지 겸하던 시절이었고, 당시 발렌시아의 득점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킥 능력 이외에도 빠른 발과 브라질리언 특유의 발기술을 바탕으로 공수 전환이 자유로웠고 팀의 연계플레이에 자주 관여했으며, 가끔씩 때려놓는 롱패스가 일품이었다. == 여담 == 유리몸의 절정을 달리던 리버풀 시절에는 심지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39&aid=0001951493|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가족들과 축구를 하다가 무릎 부상을 당했다!]]''' 위에 서술한 것처럼 이 부상으로 거의 5~6개월 정도를 쉬었기 때문에 이 선수가 어느정도의 유리몸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상이었다. 아우렐리우가 리버풀에 있던 시절, 대략 2006년 정도부터 리버풀 축구를 봐왔던 콥들은 아우렐리우에 대해 '부상만 없었다면 월클 레프트백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몇몇 팬들은 부상을 제외하고 비교했을 때, [[욘 아르네 리세|리세]]보다는 아우렐리우가 경기에서 끼쳤던 임팩트가 상당했다고 말한다. 포지션 경쟁자였던 [[욘 아르네 리세]]와 생일이 같다. 리세가 정확히 1년 어리다.[* 리세는 리버풀에서 일곱 시즌을 보냈고, 아우렐리우는 여섯 시즌을 보냈다.] [[카카]]와 더불어, 집안이 매우 부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에서 축구하는 것을 크게 반대했다고. [각주] [[분류:1979년 출생]][[분류:1997년 데뷔]][[분류:2013년 은퇴]][[분류:상파울루 출신 인물]][[분류:브라질의 축구선수]][[분류:상파울루 FC/은퇴, 이적]][[분류:발렌시아 CF/은퇴, 이적]][[분류:리버풀 FC/은퇴, 이적]][[분류:그레미우/은퇴, 이적]][[분류:브라질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9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나이지리아 참가 선수]][[분류:1995 FIFA U-17 세계 축구 선수권 대회 에콰도르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