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스폴레토 공작)] ||<-3><:>{{{+1 '''Thrasamund II''' }}}|| ||<-2> '''생몰년도''' ||<(> 미상 ~ [[745년]] || ||<-2> '''출생지''' ||<(> 미상 || ||<-2> '''사망지''' ||<(> [[스폴레토]] || ||<-2> '''재위 기간''' ||720년 - 739년(1차 재위)[br]740년 - 742년(2차 재위)[br]744년 - 745년(3차 재위) || [목차] == 개요 == [[스폴레토 공국]] 7, 9, 11대 공작. == 행적 == 스폴레토 공국 6대 공작 [[파로알트 2세]]의 아들이다. 720년 아버지가 [[랑고바르드 왕국]]의 국왕 [[리우프란트]]에게 지나치게 순종적이라며 봉기를 일으켜 아버지를 발레의 산 피에트로 수도원에 유폐시킨 뒤 스폴레토 공작에 선임되었다. 737년 또는 738년 갈레세를 공략해 로마와 [[라벤나 총독부]]와의 연락망을 단절한 뒤, 교황 [[그레고리오 3세]]와 협상해 갈레세를 돌려주고 평화 협약을 맺는 대가로 막대한 공물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리우프란트는 자신의 허락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평화 협약을 맺은 그를 반역자로 간주하고 739년 6월 스폴레토를 무력으로 공략한 뒤 [[힐데리크(스폴레토)|힐데리크]]를 새 공작으로 세웠다. 트라사문트 2세가 로마로 망명하자, 리우프란트는 그를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며 교황청으로부터 아메리아, 오르테, 보마르초, 비에르다를 공략했다. 그레고리오 3세는 트라사문트 2세를 넘겨주길 거부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궁재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740년 12월, 트라사문트 2세는 교황과 베네벤토 공작 [[고데스칼]]의 지원에 힘입어 스폴레토 공국을 되찾고 [[힐데리크(스폴레토)|힐데리크]]를 참수했다. 그러나 리우프란트가 빼앗았던 교청의 도시들을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청과의 동맹이 깨졌다. 742년 리우프란트가 재차 공세를 개시해 트라사문트를 체포하고 수도원에 감금한 뒤 자신의 조카 [[아지프란트]]를 스폴레토 공작으로 세웠다. 이후 교황청과 화해하기 위해 앞서 빼앗았던 도시들을 돌려줬으며, 그를 도와줬던 베네벤토 공작 고데스칼을 축출하고 [[기술프 2세]]를 새 베네벤토 공작으로 세웠다. 744년 리우프란트가 사망하자 지지자들에 의해 수도원에서 빠져나와 아지프란트를 축출하고 스폴레토 공작에 복위했으나 1년만인 745년에 사망했다. 사후 스폴레토 귀족 [[루푸스(스폴레토)|루푸스]]가 새 공작으로 선임되었다. [[분류:스폴레토 공작]][[분류:745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