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튀르키예의 대외관계)] [include(틀:헝가리의 대외관계)] || [[파일:튀르키예 국기.svg|width=100%]] || [[파일:헝가리 국기.svg|width=100%]] || || [[튀르키예|{{{#ffffff '''튀르키예'''}}}]] || [[헝가리|{{{#fff '''헝가리'''}}}]] || [목차] [clearfix] == 개요 == [[헝가리]]와 [[튀르키예]]의 대외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 역사적 관계 == === 근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모하치 전투)]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오스만 헝가리)]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헝가리 왕국)] 헝가리는 역사적으로 16-17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의 오랜 지배를 받아왔었다. 오스만에 대한 헝가리의 감정은 꽤 미묘하다고 할 수 있다. 헝가리 교과서 등에서는 오스만의 침입에 맞서싸운 지도자와 헝가리 민중의 영웅적인 투쟁을 강조하는 반면 오스만군의 잔혹함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오스만의 간접지배를 받았던 [[동헝가리 왕국|헝가리 동부]] [[트란실바니아|에르데이]] 지역의 역사를 오스만의 지원을 받아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에 맞선 독립투쟁으로 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에르데이 공작 보치커이 이슈트반(Bocskai Istvan 1557~1606)이나 퇴쾨이 임레(Thököly Imre 1657~1705), [[라코치 페렌츠 2세]](II. Rákóczi Ferenc 1676~1735) 등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맞서 민족의 독립투쟁에 헌신한 위인으로 존경받고 있고 [[부다페스트|부더페슈트]]의 영웅광장에도 조각과 부조가 전시되어있다. === 19세기 === [[프랑스 대혁명]] 이후 19세기 중엽부터는 헝가리에 근대적인 국민국가 건설노력이 이어지면서 헝가리인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범투란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부터 식자층 중에는 범투란주의에 영향을 받아 오스만 제국에 우호적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한 이들도 많았다. [[1848년 혁명]] 당시 오스만 술탄은 [[https://en.wikipedia.org/wiki/J%C3%B3zef_Bem|유제프 벰]]과 [[코슈트 러요시]]를 포함한 폴란드와 헝가리 출신 혁명가들에게 망명지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 현대 === 오스만 제국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적대적인 감정을 포함한 미묘한 관점을 가진것에 비해 오스만의 후신으로 볼수 있는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에는 나름 좋게 보는 편이다. [[청년민주동맹|피데스]]나 [[요빅]]같은 우익정당의 경우에는 친 튀르키예 성향으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르도안]]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선망하고 있다. 오스만 제국과 튀르키예에 대한 인식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오늘날 헝가리-튀르키예 관계의 특이점으로 꼽히고 있다. 그 외에도 헝가리와 튀르키예는 [[훈족]]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어서, 양국의 [[범투란주의]]자들이 서로 교류하고 더 나아가 동아시아와 서아시아 및 캅카스,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몽골계, 퉁구스계, 튀르크계, 우랄계 민족들까지 이러한 교류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 관련 문서 == * [[튀르키예/외교]] * [[헝가리/외교]] * [[튀르키예/역사]] * [[헝가리/역사]] * [[오스만 제국]] / [[오스만 헝가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헝가리/경제]] * [[튀르키예/경제]] * [[헝가리/문화]] * [[튀르키예/문화]] * [[헝가리인]] / [[튀르키예인]] * [[헝가리어]] / [[튀르키예어]] * [[우랄알타이어족]], [[범투란주의]]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중부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남유럽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서아시아 국가]]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헝가리/외교, version=15)] [[분류:튀르키예-헝가리 관계]][[분류:나무위키 외교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