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사우디 타이마.jpg|width=700]] 타이마 성채 [[파일:타이마 사우디 1.jpg|width=700]] 기원전 6세기에 파여 12세기경 홍수 후에 재건된 하다즈 우물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랍어]]: {{{+1 تيماء }}} [[영어]]: Tayma ||<-3><:> [include(틀:지도, 장소=Tayma)] || [[사우디아라비아]] 서북부의 도시. [[알 울라]]에서 동북쪽으로 100km, [[타부크]]에서 동남쪽으로 150km 떨어진 [[오아시스]]에 자리한다. 인구 4만의 작은 도시이나 유서 깊은 역사 덕에 볼거리가 많다. 또한 해발 800m의 고원에 자리한 덕에 여름에도 40도 이상 오르지 않고 겨울에는 0도 대까지 떨어지는 등 선선한 기후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데마]]가 이곳이고, 그밖에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초기 [[이슬람]] 역사와 관련이 있다. 1877년부터 고고학 발굴이 진행 중이고, 기원전 6세기 경 유적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산물로는 [[대추야자]]가 있다. == 역사 == 고대에는 데단 (알 울라), 두마 ([[두마툴잔달]]), 미디안 (알 바다아)와 함께 사우디 북부의 중심지 중 하나인 데마였다. [[구약]] 성경의 [[하바꾹]], [[예레미야]], [[이사야]]서 등에서 언급되었고, [[이집트]]와 [[히자즈]]를 잇는 교역 도시로 성장하였다. 2010년 발굴에서는 [[람세스 3세]]의 기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우디 내에서 발견된 최초의 [[이집트 상형문자]] 기록이었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국왕 티글라트 필라세르 3세에게 조공했다는 것으로 언급되었고, 아랍계 케다르 왕조가 통치하였다. 남쪽 데단의 리흐얀 왕국과는 경쟁과 대립 관계였다. 기원전 6세기에는 [[신바빌로니아]] 국왕 [[나보니두스]]가 일대를 정복한 후, 아들 벨샤자르에게 [[바빌론]] 본토를 맡기고는 자신은 10여년간 타이마 일대에 머물며 예언을 찾고 숭배하는 일에 몰두했다 한다. 기원전후 무렵 유대 전쟁으로 인한 [[디아스포라]]로 [[카이바르]], [[파다크]]와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일대에 정착하였다. 서기 6세기경 유대인 갑부 사무엘 벤 아디야는 타이마에 알 하므라 궁전을 세웠다. 7세기 [[이슬람]] 태동기에 타이마는 대부분의 유대계 도시들처럼 [[무함마드]]를 적대했으나 와디 알 쿠라와 카이바르가 정복되자 협상하여 [[지즈야]]를 내고 그 지배 하에 들어갔다. 첫 총독은 [[무아위야 1세]]의 이복형인 야지드 이븐 아비 수피안이었다. 무슬림과 공존하던 유대인들은 630년대 칼리파 [[우마르]]에 의해 다른 아라비아 반도의 비무슬림들처럼 [[레반트]] 등지로 이주되었다. 다만 12세기까지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남아있었다 한다. 1181년 여름 타이마는 [[십자군]] 제후 [[르노 드 샤티용]]의 습격을 받았다. 그후 군소 도시로 남았다가 19세기 후반. 자발 샴마르 휘하의 토후국이 세워졌고, 20세기 초엽 사우디아라비아에 병합되었다. 다만 1949년 내분 시까지 기존 아미르 가문이 총독을 역임하였다. == 갤러리 == [[파일:타이마 사우디 2.jpg|width=800]] 도시 북쪽의 알 하므라 --알함브라-- 궁전 유적 [[파일:사우디 타이마 3.jpg|width=800]] 하다즈 우물과 도르래 [[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분류:오아시스]][[분류:옛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