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이란의 세계유산)] [include(틀:이슬람 도시 기구의 도시)] [[파일:Panorama_of_Tabriz.jpg]] ||<-3> '''[[유네스코|{{{#fff 유네스코}}}]] [[세계유산|{{{#fff 세계유산}}}]]''' || ||<-3> [[파일:유네스코 세계유산 로고(흰 배경).svg|width=160]] || ||<|4> 이름 || 한국어 || 타브리즈 역사 지구 || || 영어 || Tabriz Historic Bazaar Complex || || 아랍어 || مجموعة البازار التاريخي في تبريز || || 프랑스어 || Ensemble du bazar historique de Tabriz || ||<-2> 국가·위치 || [[이란]] 동아제르바이잔 주 || ||<-3> [include(틀:지도,장소=타브리즈 그랑 바자, 너비=100%, 높이=224px)] || ||<-2> 등재유형 || [[세계유산#s-3.1|문화유산]] || ||<-2> 등재연도 || [[2010년]] || ||<-2> 등재기준 || (ii)[*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 (iii)[*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 (iv)[*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 || ||<-2> 지정번호 || [[https://whc.unesco.org/en/list/1346|1346]] || ||<-3> [[파일:이란 국기.svg|height=15]] {{{#white '''[[이란|{{{#white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도시[br]{{{+1 تبریز}}}'''[br]타브리즈 | Tabriz}}} || ||<-3> [include(틀:지도,장소=Tabriz,너비=100%,높이=100%)] || ||<-2> '''{{{#white 지역}}}''' || 동아제르바이잔 || ||<-2> '''{{{#white 면적}}}''' || 325km² || ||<-2> '''{{{#white 인구}}}''' || 1,560,000 명 || ||<-2> '''{{{#white 도시권 인구}}}''' || 1,800,000 명 || ||<-2> '''{{{#white 인구밀도}}}''' || 4,800명/km² || ||<-2> '''{{{#white 고도}}}''' || 1,351m || [목차] [clearfix] == 개요 == [[http://3.bp.blogspot.com/-8wok-sJTRcc/T6b_wd3oaAI/AAAAAAAAAO4/80WYeIm9w5M/s1600/Amir+Nezam+House-01.jpg|#]][[https://www.google.co.kr/search?q=tabriz&client=ms-android-lgu-kr&prmd=imnv&source=lnms&tbm=isch&sa=X&ved=0ahUKEwi84vaG9qHZAhVHVbwKHcZ1C-sQ_AUIESgB#imgrc=2yNzi5JiYFtbkM:|#]]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media/File%3ACarpet_Bazaar_of_Tabriz.JPG]] [[페르시아어]]·[[아제르바이잔어]] {{{+1 تبریز }}} [[영어]] Tabriz [[이란]] 서북부 [[남아제르바이잔|이란령 아제르바이잔]]주의 도시. 인구는 174만명으로, 이란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13세기 말에 [[일 칸국]]의 수도로, 16세기 초에 [[사파비 왕조]]의 첫 수도로 번영하였고 특산물로 [[카펫]]과 금속세공품, 특히 [[사모바르]]가 유명하다. 아제르바이잔주라는 이름답게 주민 대부분이 [[튀르크]]계의 [[아제리인]]이다. [[튀르키예]] 도시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 정도로 튀르크계가 많다.[* [[튀르키예어]]나 [[아제르바이잔어]]를 할 줄 알면 현지인들이 반가워하며 매우 친절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애초에 이곳 어르신들 중에는 페르시아어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도 꽤 많다.] 애초 이곳을 수도로 했던 [[일 칸국]]부터 튀르크계 국가다. 정확히는 [[훌라구 칸]]의 자손들이 튀르크화된 '''튀르크화한 [[몽골 제국]]'''으로 [[칭기즈 칸]]의 [[황금씨족|혈통]]을 물려받은 엄연한 튀르크 이슬람 국가였는지라 수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또한 통념상 [[서남아시아]]인 이란이 [[대한민국]]보다 위도가 한참 아래라고 생각하지만 타브리즈는 [[서울]]과 위도가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면 북위 38도 4분으로 [[철원군]]과 동위도이다.] 도심의 그랜드 [[바자]]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우르미아 호]]의 동안의 해발 1500m의 고지에 자리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 역사 == [[파일:Blue_Mosque.jpg|width=800]] [[흑양 왕조]] 시대에 지어진 블루 모스크 (카부드 마스지드) === 상고대 === 타브리즈는 기원전 714년, [[아시리아 제국]]의 왕 [[사르곤 2세]]의 비문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후 [[아제르바이잔]]에 세워진 헬레니즘 왕국인 [[아트로파테네]] 왕국 (BC 323년 ~ AD 3세기) 의 수도가 되어 번영한다. 여담으로 타브리즈 근처에 구약에 나오는 에덴 동산이 위치했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꽤 있다고한다. === 고대 === 그러나 이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로마의 [[안토니우스]]의 원정과 이후 이어진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의 전쟁의 혼란 속에 도시는 파괴된 채로 방치되었다. 다만 [[사산 제국]] 시기에 도시는 재건되어 중세 페르시아 어로 타우레스라 불리었다. === 중세 === [[파일:Tabriz-16.png|width=800]] 중세 타브리즈의 지도 이슬람 정복 이후에 타브리즈에는 [[예멘|남부 아라비아]] ([[예메니]]) 출신의 아즈드 부족이 정착하였다. 한 세기 후, 지진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그러자 791년,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의 왕비 주브이다흐가 손수 거금을 투입하여 도시를 아릅답게 재건, 현재까지도 타브리즈의 건설자로 불린다. 10세기 타브리즈는 쿠르드계 국가인 [[라와드 왕조]]의 수도가 되어 번영하였다. 1042-43년 재차 지진을 겪어 4만의 사상자가 나는 피해를 입었으나 라와드 조의 명군 바수다의 노력으로 금새 복구되었다. 하지만 타브리즈의 번영을 일군 라와드 조는 1070년 [[셀주크 제국]]에 병합되었다. === 13세기 === 1208년의 라마단, [[조지아]] 왕국의 [[타마르]] 대왕이 도시를 점령하였고 부활절에 무슬림들이 [[아니]]에서 학살한 기독교도 1만여명에 대한 복수로 타즈리즈 근교의 아르데빌에서 무슬림 1만여명이 학살되었다. 1221년, 타브리즈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몽골 제국군]]에게 별 저항없이 항복하였다. 그리고 덜 파괴된 도시의 이점으로 1265년, [[일 칸국]]의 [[아바카 칸]]이 수도로 정하며 번영기를 맞이하였다. === [[일 칸국]]의 수도 === 이 시기에 타브리즈에는 여러 도서관과 교육 기관, 카라반 숙소들이 세워졌다. 특히 [[아바카 칸]]의 치세에 현재 남아있는 중세 건축물의 대부분이 지어졌다. 1275년에 이곳을 지난 [[마르코 폴로]]는 타브리즈를 아름다운 정원들로 둘러싸인, 위대한 도시이자 상업의 중심지로 묘사하였다. 또한 금과 비단을 특산물로 생산했고, 서양 상인들이 자주 왕래했다고 한다. === 14세기 === [[일 칸국]]의 수도는 1306년에 신도시 [[술타니야]]로 이전되었지만 타브리즈는 여전히 그 상징성이 있었다. 따라서 1335년에 일 칸국이 분열되자 여러 제후국들이 정통성을 얻기 위한 경주를 시작하였다. 14세기 중반, 타브리즈의 주인은 [[추판 왕조]], [[잘라이르 왕조]], [[무자파르 왕조]], [[흑양 왕조]] 순으로 바뀌었고 결국 --최종보스-- [[티무르 제국]] 령이 되었다. (1392년) === 15세기 === 그후 타브리즈는 1468년 까지는 [[흑양 왕조]], 1469년 ~ 1501년 까지는 [[백양 왕조]]의 수도로 기능하였다. === [[사파비 왕조]]의 수도 === 그리고 1501년, 사파비 조의 [[이스마일 1세]]가 타브리즈에 입성하고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1514년, [[찰디란 전투]]에서 [[셀림 1세]]가 이끄는 [[오스만 제국군]]이 사파비 군대를 대파하고 일시적으로 도시를 점령하였다. 비록 회복되어 계속 수도 기능을 유지하였지만 1534년에 재차 오스만군에게 재점령 당하고 1548년에도 포위를 당하는 등 위협을 느낀 [[타흐마습 1세]]는 1555년에 아마시아 평화 조약으로 메소포타미아를 내주는 대신 타브리즈 일대를 유지하였음에도 후방의 [[카즈빈]]으로 천도하였다. === 대 오스만 투쟁 === 1585년, [[오스만 제국]]이 타브리즈를 점령하였고 1603년이 되어서야 [[아바스 1세]]가 탈환하였다. 그러나 1635년에 [[무라드 4세]]가 이끈 오스만 군대가 재점령 하였고, 1639년의 조하브 조약 이후에 다시 [[이란]] 령이 되었다. === 18세기의 수난 === [[https://en.m.wikipedia.org/wiki/Tabriz#/media/File%3A11_Chardin_Tabriz_1673.png]] 1673년의 도시 1721년, 대지진이 도시를 덮쳐 8만 여명의 시민이 사망하였고 1724년, [[호타키 왕조]]와의 전쟁에서 오스만 군대가 타브리즈를 함락하고 이듬해까지 영위하며 그동안 20만 여명이 학살되었다고 전해진다. 게다가 이후 [[나디르 샤]]의 통치 동안 전염병의 확산으로 인구가 더 감소하였다. 그후 [[잔드 왕조]] 시절인 1780년, 대지진이 발생, 20만명이 사망하면서 도시 인구는 3만명으로 줄며 많은 건물들이 버려졌고, [[유령도시]]가 되었다. === 카자르 왕조 === 18세기의 혼란을 거치며 도시는 여러 가문의 통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가 1799년에 [[카자르 왕조]]의 왕자 아바스 미르자가 총독으로 부임하며 안정을 회복하였다. 그 후로도 카자르 왕자들이 총독을 맡으며 --웨일즈?-- 타브리즈는 다시금 그 중요성을 회복해 나갔다. === 러시아의 간섭 === 굴리스탄 조약 (1813년)으로 [[러시아 제국]]에게 [[캅카스]]를 빼앗긴 카자르 왕조는 1827년, [[러시아 제국군]]의 타브리즈 입성을 막지 못하였다. 러시아군은 이듬해의 투르크만차이 조약으로 물러났지만 그 영향력은 지속되었다. 그 후 총독 미르자는 타브리즈의 근대화를 위해 노력, 현재의 시가지를 확정하였다. 20세기 들어 이란 북부를 점령한 [[소련]]은 타브리즈를 수도로 한 괴뢰국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를 세우는데 1947년 이란에게 재통합되어 현재에 이른다. == 관광 == 주변국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튀르키예]]로 넘어가는 국제버스가 운행된다. [[분류:타브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