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일본 음반 회사, rd1=킹 레코드(일본))] [목차] == 개요 == ||[[파일:80320316171784172.jpg|width=50%]][[파일:80320316171784171.jpg|width=50%]]|| [[조용필]]을 비롯한 한국 음악계 거물 가수들을 발굴했던 음반업체였으나 1990년대 초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나면서 상당수 음반 저작권을 [[선경그룹]]으로 넘겼다. 특히 [[신중현]] 음반 판권은 여러 곳을 돌다가 1996년 예전미디어로 넘겨졌다. == 상세 == 설립자 박성배는 1960년대에 [[청계천]]에서 팝송 [[빽판]](해적판)[* 1970년대까지는 해외 음반이나 소설을 돈주고 사온다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해외발매 음반이 정식수입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대부분은 국내에서 무단복제해서 음질도 조악한 해적판으로 음악을 들었다.] 음반을 팔아서 번 돈으로 킹 레코드를 세웠고, 그 이후 재능있는 [[가수]]들을 알아보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킹박'''으로 불렸다. 당시 박성배가 발굴해서 데뷔시킨 가수들이 바로 [[신중현]], [[양희은]], [[송창식]], [[조용필]], [[이문세]] 등등. [[김추자]]와 펄시스터즈 등 70년대 신중현 사단도 전부 박성배의 작품이었다. 그야말로 70~80년대 가요계를 좌지우지했던 인물. 하지만 동시에 박성배는 음반판매로 엄청난 돈을 벌면서도 '''정작 가수들한테는 한푼도 주지 않는걸로 악명을 떨쳤다.''' 제대로 된 계약서 같은 것은 당연히 없고 모든게 주먹구구식이던 당시 열악한 연예계 현실에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수들을 옭아매서 "내 돈으로 음반제작했으니 수익은 전부 내꺼, 넌 밤무대 뛰면서 알아서 먹고 살아라" 식으로 회사를 운영했다. 박성배는 가수들이 계속 돈달라고 개기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시간 끌다가 갑작스레 회사를 폐업하고 [[미국]]으로 도망가곤 했다. 그리고 잠잠해지면 다시 귀국해서 또 다른 신인을 발굴해서 대박 터트리고, 또 시끄러워지면 잠적. 이 짓거리를 계속 반복했다. 결국 1990년대 초반 무리한 확장으로 인해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부도]]와 함께 참혹하게 몰락했다. 부도 다음날 아내가 충격을 받아 죽었고, 미국에서 살던 아들도 모친의 장례를 위해 귀국하다 [[병역법]] 때문에 출국을 못하여 방위병 복무 도중 탈영병으로 생을 마감했다([[https://news.koreadaily.com/2008/09/11/society/community/691882.html|미주중앙일보 기사]]). 그렇지만 킹박시절의 악명에 치를 떨었던 가요계 인사들은 회사 부도 이후에 비참한 상황에 빠진 박성배 회장을 모두 외면했다.[* 다만 미주중앙일보 보도 후 [[이장희(가수)|이장희]]와 안경희, 이상열 등 일부 가수들이 [[https://news.koreadaily.com/2008/09/12/society/community/692535.html|지원 의사를 밝혔다]].] 그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08년 미국에서 [[노숙자]]로 지내다가 쓰러져 혼수상태가 되었다는 소식이 미주한국일보 등 재미동포 언론을 통해 [[http://dc.koreatimes.com/article/20080912/473396|전해졌고]], 같은 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투병 당시에 혈육이라고는 [[독일]]에서 사는 외동딸밖에 없었다. [[양희은]]의 증언에 따르면 이 딸이 나중에 연락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아버지 대신 사과했다고 한다. 어떻게보면 박성배 회장은 [[조용필]], [[신중현]], [[양희은]], [[송창식]], [[이문세]] 등등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를 좌지우지한 수많은 아티스트들을 발굴한 거물인 동시에 주먹구구식이었던 옛날 한국 연예계의 악습을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012년에 신중현은 킹레코드 시절 음반 판권을 소유한 예전미디어를 상대로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 저작권 반환 소송을 제기하여 1심에서 [[https://www.etoday.co.kr/news/view/605717|승소를 받았지만]]([[https://casenote.kr/%EC%9D%98%EC%A0%95%EB%B6%80%EC%A7%80%EB%B0%A9%EB%B2%95%EC%9B%90_%EA%B3%A0%EC%96%91%EC%A7%80%EC%9B%90/2012%EA%B0%80%ED%95%A937|2012가합37]]), 2013년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 항소심에서 [[https://www.news1.kr/articles/?1189219|패소하자]]([[https://casenote.kr/%EC%84%9C%EC%9A%B8%EA%B3%A0%EB%93%B1%EB%B2%95%EC%9B%90/2012%EB%82%9850836|2012나50836]]) 대법원 상고심까지 갔다가 2016년 최종적으로 패소 판결을 받았다.([[https://casenote.kr/%EB%8C%80%EB%B2%95%EC%9B%90/2013%EB%8B%A456167|2013다56167]]) 현 신나라뮤직[* [[아가동산]]계 기업 미디어신나라(신나라레코드)의 관계사.]의 전신인 동명의 회사와는 무관하며, 그쪽은 1992년에 세워진 다른 회사다. 1998년에 전술한 동명의 일본 음반사와 상표권 갈등이 터져서 [[https://m.etnews.com/199809220000|변경했다]]. [[분류:대한민국의 음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