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FC224 ''' 퀸시 존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include(틀:미국 국가 예술 훈장)] ---- [include(틀:EGOT 달성자)]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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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 [[레이 찰스]], [[사라 본]], [[엘라 피츠제랄드]], [[제임스 잉그램]], [[레슬리 고어]]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인기 가수들의 음반을 프로듀싱하여, 그들의 성공에 기여를 하였다. 또한, [[그래미 어워드]]에서 80회 노미네이트 되며 총 28회 수상한 천재 프로듀서다. [[https://www.grammy.com/grammys/artists/quincy-jones/11020|#]] 대표적으로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 [[Thriller]], [[Bad]]의 총괄 프로듀서였으며, 그의 기여가 없었다면 이 세 명반들은 다른 형태를 띄고 있었을 것이다. == 활동 == 1933년 3월 14일,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소년 시절에 [[트럼펫]]을 배우고 [[밴드]]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1951년 [[버클리 음악대학]]을 졸업한 뒤, 악단에 참가 그 후 편곡자로서의 재능을 발견하였다. 1957년 [[파리(프랑스)|파리]]로 건너가 작곡과 음악 이론을 배운 뒤 프랑스 레코드 사장의 사인을 얻고 유럽에서 수 많은 밴드를 이끈다. 1963년에 [[레슬리 고어]]의 곡들을 프로듀싱하며[* [[It's My Party]], Judy's Turn to Cry, She's a Fool, You Don't Own Me] 대중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64년에는 영화 음악 분야에서도 활동했으며 미국 사람들은 모를 리가 없는 TV 프로그램 Root의 OST를 맡기도 하였다. 1960년대부터 프로듀서로 시작했으며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유명 가수들과 일을 함께 하였다. 자신의 작품에서도 [[Stuff Like That]], [[Ai No Corrida#s-3]], [[One Hundred Ways]], [[I'll Be Good to You#s-5]], [[The Secret Garden (Sweet Seduction Suite)]], [[Tomorrow (A Better You, Better Me)]]를 포함한 수많은 명곡들을 낳았다. [[마이클 잭슨]]과는 1978년 영화 The Wiz 촬영 현장에서 처음 만나게 됐는데 뜻이 맞아 그는 마이클과 함께 일을 하게 된다. 퀸시는 마이클을 재능이 매우 풍부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클의 자서전 문워커 속에서 보면 퀸스 존스와의 협력 과정은 마이클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뒤 퀸시에게 들려주고 퀸시가 이 부분을 수정하라고 하면 수정하는 식으로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위에도 서술했듯이 퀸시는 [[마이클 잭슨]]의 '''[[Off the Wall]]''', '''[[Thriller]]''', '''[[Bad]]'''의 총괄 프로듀서였다. "[[Billie Jean]]" 제작 과정 중 마이클 잭슨과 갈등이 있었는데, Billie Jean은 마이클 잭슨이 단독 작사 작곡/편곡까지 한 노래이지만 퀸시 존스가 프로듀서진에 마이클 잭슨의 이름을 넣지 않으려고 했다. 당연하게도 빡친 마이클 잭슨은 바로 퀸시 존스에게 강하게 항의했고, 이는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가 훗날 갈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컬러 퍼플]]을 연출할 때, 그의 음악적 파트너 [[존 윌리엄스]]보다도 흑인인 퀸시 존스야말로 흑인들이 주역인 이 영화 음악을 잘 그린다고 여겨 퀸시 존스에게 [[오리지널 스코어]] 작곡을 맡겼고 그가 맡은 영화음악도 호평을 받았다. 1983년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전설적인 모델 [[나오미 캠벨]]이 퀸시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클라우스 킨스키]]의 딸인 [[나스타샤 킨스키]]와 동거했으며, 1993년에 태어난 케냐 킨스키-존스 라는 딸이 있다. 퀸시는 2013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부분에 헌액됐다. [[타임지]]는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재즈 뮤지션으로 선정했다. 2006년에 [[이방카 트럼프]]와 데이트를 했다고 주장하며 [[도널드 트럼프]]를 깠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2/08/0200000000AKR20180208008500072.HTML?input=1195m|링크 1]],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5237077&memberNo=37685217|링크]] 제 2의 마이클 잭슨의 자리는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겠으나, 이 라인에 꼽히는 여러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현 세대 최고의 슈퍼스타 '''[[The Weeknd]]'''의 새 앨범 ''[[Dawn FM]]''에 참여한 것으로 공개되었다. == 기타 == * 할아버지가 [[웨일스]] 출신으로, 퀸시의 할머니가 되는 흑인 하녀와의 사이에서 퀸시의 아버지를 낳았다. 어머니는 프랑스계 [[위그노]]를 조상으로 둔 흑인 혼혈이라고 한다.[* 자신의 음악성은 프랑스인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 6~70년대에 활동했던 배우 [[페기 립튼]]과 1974년에 결혼했으며, 1989년에 이혼했다. 또 미국 드라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과 [[The Office(미국 드라마)|오피스]]에서 열연한 [[라시다 존스]]가 이 부부의 딸이다. * [[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레이(영화)|레이]]에서 나온 것과 같이 두 사람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퀸시 존스가 10대와 20대 초반 시절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할 당시, 레이 찰스와 함께 오랫동안 협연했던 것이 인연이 되어, 평생 절친으로 지냈다. * 일본의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이름은 퀸시 존스의 이름을 일본어로 변형하여 지어낸 예명이다. * 딸인 키다다 존스가 [[투팍]]의 약혼녀였다. * 아들 퀸시 존스 3세는 [[QDIII]]라는 예명으로 힙합 프로듀서, [[영화 제작자]]로 활약했다. 90년대엔 아들과 같이 앨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 [[노라 존스]]의 프로듀서로 잘 알려져있는 [[아리프 말딘]]이 데뷔하는데 도움을 줬다. * 전설적인 영화 음악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거장인 [[엔니오 모리꼬네]]와도 절친이었다. 그가 아카데미의 오랜 무시와 냉대를 뚫고 2016년에 [[헤이트풀8]]으로 오스카 영화음악상을 결국 수상했을 때, 시상자가 바로 퀸시 존스였다. 수상자인 엔니오의 이름을 호명하며 "My Brother!" 하면서 크게 기뻐했던 장면이 유명하다. * 퀸시의 대표 가수인 [[마이클 잭슨]]의 라이벌 [[프린스(음악가)|프린스]]가 퀸시를 유난히도 싫어했다. 그가 공로상을 받았을 때도 탐탁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프린스가 진짜로 존경하는 인물인 [[제임스 브라운]]을 실제로 보자 모자를 벗고 깍듯이 모신 것을 보면, 아무래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 유명한 헤드폰 제조업체인 [[AKG]]와 시그니처 모델 N90Q를 만들었다. [[https://eu.akg.com/N90+Q.html|#]] * 항상 주머니에 [[블랙윙(연필)|블랙윙]]연필 한자루를 꼽고 다녔다는 일화가 있다. * 2018년에 [[넷플릭스]]에서 퀸시 존스의 인생과 음악 여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퀸시 존스의 음악과 삶'(원제는 'Quincy')이 공개됐다. 다큐의 연출은 퀸시 존스의 딸이자 배우인 [[라시다 존스]]가 맡았다. 오프닝에서 천하의 [[닥터 드레]]가 퀸시 존스의 집에 찾아와서 함께 팟캐스트 방송을 녹음하며 감격하여 '''"선생님! 존경합니다!"'''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음악적으로 성공한 이후 주로 금발 미인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으며 그의 자녀들도 그래서 대부분 미인에 혼혈로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다. 당연히 이런 백인 여성들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모습에 대해 [[투팍]]은 거칠게 비난 했고 이것을 계기로 퀸시 존스의 딸과 4달간 동거하게 된다. * 2018년 GQ 인터뷰에서 84살의 나이에 22명의 여자친구들을 유럽 아시아 미국 각지에 두고 만난다고 이야기 했다. 여자친구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내며 딸들이 자기들 보다 어린 여자랑은 만나지 말라고 부탁 했기 때문에 28살 이상만 만날수 밖에 없고 그래서 여자친구들 나이는 28살에서 42살 사이라고 답했다. 이런 딸들 때문에 고통 받는다고 덧붙혔다. * 2013년 80세 생일 기념으로 내한 공연을 가진적 있는데, 주최측의 준비 미비나 졸속 진행으로 평이 안 좋았다. 게다가 퀸시 존스도 당시 워낙 나이가 많아서 콘서트를 진행하기엔 체력적으로 힘들어 보였고, 너무 늦게 내한했다는 반응. 그러나 국내 반응과는 별개로 이때 공연한 제임스 잉그램의 Just Once 라이브는 유튜브에서 반응이 무척 좋은편이다. [* 안타깝게도 제임스 잉그램은 이 공연 6년 후 뇌암으로 별세했다.] [youtube(BceqQyMq6fU)] [[분류:퀸시 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