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예루살렘 왕국 국왕)] [include(틀:역대 시칠리아 국왕)] ||||||<:>[[파일:Konradin.jpg|width=400]]|| ||||||<:>{{{+1 '''Konradin''' }}}|| ||||<:> '''가문''' ||<(> [[호엔슈타우펜 가문]] || |||| '''생몰년도''' ||<(> 1252년 3월 25일 ~ 1268년 10월 29일 (16세) || |||| '''출생지''' ||<(> [[신성로마제국]] 란츠후트 || |||| '''사망지''' ||<(> [[시칠리아 왕국]] [[나폴리]] || |||| '''매장지''' ||<(>[[나폴리]]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 ||<|3> '''재위'''[br]'''기간''' || '''[[시칠리아 왕국|시칠리아]] 국왕''' (코라도 2세) ||1254년 5월 21일 – 1268년 10월 29일 || || '''[[예루살렘 왕국|예루살렘]] 국왕''' (콩라드 2세) ||1254년 5월 21일 – 1268년 10월 29일 || || '''[[슈바벤]] 공작''' (콘라트 4세) ||1254년 5월 21일 – 1268년 10월 29일 || |||| '''부모''' ||<(> [[콘라트 4세]],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 |||| '''종교''' ||<(> [[로마 가톨릭]] || [목차] [clearfix] == 개요 == [[독일어]]: Konrad (콘라트), Konradin (콘라딘) [[이탈리아어]]: Corrado II (코라도 2세), Corradino (코라디노) [[시칠리아어]]: Curradu II (쿠라두 2세), Curradinu (쿠라디누) 소년기에 사망하여 통칭 '''[[콘라딘]]'''(콘라디노)이라 표기된다. [[슈바벤]] 공작, [[시칠리아]]의 왕, [[예루살렘]]의 왕.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마지막 당주였다. 그가 16세의 나이로 후사없이 사형되면서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단절되었다. == 상세 ==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일원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 [[콘라트 4세]]와 [[비텔스바흐 가문]]의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1256년 아버지 [[콘라트 4세]]가 27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슈바벤]] 공작, [[시칠리아]] 왕, [[예루살렘]] 왕의 작위를 물려받았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렸기 때문에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후계자]]로 선출되지 못했다. 후계자 선출을 놓고 제후들의 의견이 갈리며 [[신성 로마 제국]]은 [[대공위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콘라딘은 당시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왕]]위와 함께 부여되던 이탈리아 왕위 역시 물려받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콘라트 4세]]는 [[교황]]이 아들을 보호해주리라 믿었지만, 교황들은 콘라트 4세의 믿음을 배신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4세]]와 후임 [[알렉산데르 4세]] 및 제후들은 어린 콘라딘이 당주로 있는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영지를 나눠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1258년 콘라딘이 죽었다는 소문이 돌자 시칠리아를 대리 통치하고 있던 콘라트 4세의 이복 동생 [[만프레디]]가 시칠리아 왕위에 올랐다. 콘라딘이 죽었다는 소문은 거짓이었지만 만프레디는 왕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동생이자 훗 날 카를로 1세로 즉위하게 되는 앙주의 샤를 (Charles d'Anjou)이 만프레디를 제거하려는 교황의 지원을 입고 나폴리로 처들어왔다. 1266년 만프레디가 전사하자 10대 소년왕 콘라딘은 시칠리아에서의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외삼촌 루트비히 2세의 지원을 받아 [[슈바벤]] 공국을 담보로 군자금을 마련하여 시칠리아를 침공했다. 그러나 1268년 탈리아코초 전투에서 시칠리아의 국왕, [[카를루 1세]]로 즉위한 앙주의 샤를에게 포로로 잡혀 나폴리에서 참수당했다. == 영향 == 그의 죽음으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단절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또한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본거지이자 [[독일 왕국]]의 5대 [[부족 공국]]이었던 유서 깊은 [[슈바벤]] 공국이 콘라딘이 군자금 마련을 위해 저당잡혔기 때문에 그의 사후 여러 제후들에게 분할되며 해체되었다. 그리고 그 남쪽 부분은 스위스 연맹이 된다. 아울러 [[아모리 1세]] 사망 후 모계로 이어진 [[예루살렘 왕국]]의 혈통이 단절되었다. 이에 [[키프로스]] 왕이자 콘라딘의 섭정이었던 위그 3세가 예루살렘 왕위를 이었다. 이로써 키프로스-예루살렘 왕국은 후자의 멸망시까지 [[동군연합]]이 된다. [[분류:예루살렘 국왕]] [[분류:시칠리아 국왕]] [[분류:슈바벤 공작]] [[분류:1252년 출생]] [[분류:1268년 사망]][[분류:바이에른 주 출신 인물]][[분류:호엔슈타우펜 가문]] [[분류:참수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