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1986년 재난]][[분류: 열차 충돌사고]][[분류: 칠레의 사건 사고]] [Include(틀: 사건사고)] [[파일: 케론케 열차 충돌.jpg|width=500]] [목차] == 개요 == '''Accidente ferroviario de Queronque de 1986''' [[1986년]] [[2월 17일]] [[칠레]] [[발파라조]] 마르가 마르가(Marga Marga)에서 일어난 열차 정면 충돌사고. == 사고 내용 == 사고 1년 전인 1985년,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88%84%EC%97%98_%EB%A1%9C%EB%93%9C%EB%A6%AC%EA%B2%8C%EC%8A%A4_%EC%95%A0%EA%B5%AD%EC%A0%84%EC%84%A0|#]]의 공격으로 페냐블랑카(Peñablanca) 역과 리마체(Limache) 역 사이에 있는 케론케(Queronque) 다리가 피해를 입었다. 거기다 폭풍까지 오는 바람에 수리는 1986년 2월 중순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이로 인해 다리 위 선로 2개 중 1곳만 운용됐다. 복선 구간이 단선 구간이 됐으니, 열차가 두대가 한번에 통과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한 열차가 통과하기 까지 기다려야 다음 열차가 통과할 수 있었다. 사고 당일, 발파라조발 [[산티아고]]행 AES-16 열차가 오후 5시 30분 경 출발했다. 반대편에선 로스 안데스발 발파라조행 AES-9 열차가 오고 있었다. AES-16 열차는 단선 구간에 들어섰다. AES-16이 단선 구간을 다 지나야 AES-9 열차가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AES-9 열차는 리마체 역에서 대기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두 열차는 단선구간에 들어섰다. 사고 전, 역 간의 통신을 맡던 전화들이 케이블을 도둑맞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다. 1928년에 세워져 사고 당시까지 쓰이던 신호 시스템은 두 열차를 막지 못했다. 오후 7시 45분, 두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당시 AES-16 열차의 속도는 시속 100km, AES-9 열차의 속도는 시속 90km였다. 충돌의 충격이 너무 세서 두 열차가 그대로 뒤엉켜버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두 열차를 분리할 수 있었다. 구조대원이 도착하기 까진 1시간이나 걸렸다. 구조대원이 도착하고, 부상자들은 인근 리마체 역에 세워진 임시 구호소에서 치료받았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헌혈]]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칠레 대통령]]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사고 현장과 부상자들을 방문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58명'''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망자 수 축소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축소 의혹을 주장하는 측에선 '''최소 100명이 사망'''했다 주장하고 있다. 부상자 수는 510명에 달했다. == 사고 이후 == 발파라조 - 산티아고 열차 운행은 한동안 중단됐다. 사고 구간은 화물열차만 다니게 됐다가 1992년이 되어서야 다시 재개됐다. 재개되면서 열차에는 새로운 라디오 무선 통신 수단이 추가됐다. 또한 사고 구간도 복구되어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