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해상병기/영국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계보)] || '''{{{#fff 운용국 둘러보기 ▼}}}''' || {{{#!wiki style="margin-top: -39px; text-align: center" {{{#!folding              {{{#!wiki style="margin-top: 25px;" [Include(틀:1차 세계대전/영국 함선)] [include(틀:현대전/칠레 함선)]}}}}}}}}} [[파일:Chilean_battleship_Almirante_Latorre.jpg]] [[파일:HMS 캐나다.png]] [목차] == 개요 == 칠레 해군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칠레]] 정부가 자국 해군 강화를 위해 1911년 7월 25일 영국 '암스트롱 위트워스'[* 영문으론 Amstrong Whithworth][* 2차대전기 당시 최초로 베를린을 폭격한 암스트롱 휘트워스 휘틀리 폭격기의 제조사다.]사에 총 2척을 의뢰하고 1번함이 1913년 11월 27일에 진수되었다가 [[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1914년 9월 9일이 영국이 정식으로 구매하여 사용되었고 이때 함선 이름이 캐나다로 바뀌었다. 전쟁이 끝난 이후, 1920년 4월에 칠레 해군 소속으로 '알미란테 라토레'란 이름으로 재취역 되고 그해 8월 1일부터 전력화 되었다. 그리고 1959년 2월 일본 [[미쓰비시그룹|미쓰비시]] 중공업에 의해 스크랩 되었다. 그리고 2번함 알미란테 코크라네는 1차 세계 대전 발발로 건조가 중단되었다가 1918년 2월 28일 칠레 해군으로 부터 영국이 구매하여, 1920년에 [[이글#s-3.1|HMS 이글]]이란 이름으로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으로 운용되었다. == 제원 == || 전장 ||191m|| || 전폭 ||28.2m|| || 흘수선 ||10m|| || 기준배수량 ||25,000t|| || 승조원 ||834, 1.167명[* [[1차 세계 대전]] 기준]|| || 추진기관 ||저압 파슨즈 + 고압 브라운-커티스 [[증기터빈]]석탄-중유 혼소|| || 보일러 ||야로우 증기보일러 21기|| || 출력 ||37.000hp|| || 최고속력 ||22.75kn[* 전작인 아이언 듀크급보다 속도가 '''약간 더 올라갔다.''' 의미가 조금 생긴 정도이지만, 당시에는 속도 면에서 확실한 우위에 섰을 것으로 여겨진다.]|| || 항속거리||10kn로 8,100해리|| || 주포 ||35.5cm[* 14인치.] 연장포 5기|| || 부포 ||15.2cm 단장속사포 16기|| || 대공포 ||7.6cm 단장고각포 2기, 4.7cm 단장기관포 4기|| || 어뢰발사기 ||53.3cm 수중 어뢰발사관 4기|| || 현측장갑 ||9인치|| || 갑판장갑 ||1.5인치|| || 바벳장갑 ||10인치|| || 포탑장갑 ||10인치|| || 관측탑 장갑 ||11인치|| == 배경 == 1904년, 브라질 정부가 자국 해군 강화를 심각하게 고려하던 중, 고무와 커피 값의 폭등으로 충분한 자금이 확보되자,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나스제라이스급 전함|미나스제라이스급]]을 영국에 건조를 의뢰하였다. 이에 충격받은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1902년에 맺었던 군비 제한 협정의 즉각적인 무력화를 알리면서 남미의 드레드노트 건함 경쟁이 시작되었고, 이에 칠레 해군이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건조를 의뢰한 전함이 바로 이 알미란테 라토레급 전함이다.[* 아르헨티나가 이탈리아제 신형 장갑순양함들을 도입하자, 브라질이 영국에서 미나스 제라이스급 전함 2척(미나스 제라이스, 상파울루)을 도입했고, 이에 아르헨티나가 미국에서 [[리바다비아급 전함]](리바다비아, 모레노) 2척을 도입하고, 칠레 역시 영국에 알미란테급 2척(알미란테 라토레, 알미란테 코크라네)을 주문하자, 브라질이 다시 영국에 전함 1척(취소된 미나스 제라이스급 3번함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함명은 리우데자네이루)을 추가주문했다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조중에 도입취소한 것이 [[애진코트]]이다.] == 활약 == 1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영국 정부는 당장 쓸 수 있는 함선들을 급히 모으기 시작했고, 그 중 거의 건조가 된 알미란테 라토레를 찾게 된다. 영국은 이 함선을 다시 매입하는 형태로 구입금을 칠레에게 환불하였다. 그 후 1915년 10월 15일, 영국 해군 소속으로 전력화 된 이 배는, '캐나다'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제 4 전함전대에 배속되어 [[유틀란트 해전]]에 참가하게 된다. 전투 당시 42발의 14인치 함포와 109발의 6인치 포탄을 사용하였고, 전투 동안 피탄이나 사고 등은 없었다. 그리고 18:40에 무력화된 독일 해군 소속 순양함 비스바덴에 두 번의 포격을 가했고. 19:20에 알 수 없는 함선에 다섯 번의 포격을 가했다. 그리고 19:11에 6인치 함포로 독일 해군 소속 구축함에 포격을 가했다. 그 후 1916년 6월 12일에 제 1 전함전대로 배속되었고, 1917년부터 1918년까지 개량된 거리 측정기등을 설치하였고, 당시 중앙 주포의 포격으로 인한 포염으로 후미의 6인치 부포가 피해를 받자, 이를 철거한다. 그리고 1919년 3월 예비 함대로 배속된 후, 1921년 칠레 해군에 [[플리머스급 구축함]]과 함께 인도된다. == 칠레 해군 소속으로서의 삶 == 그렇게 칠레 해군 기함으로 재취역 되었다가 1922년 지진 이후 1924년 대개장을 거쳤고 1929년 다시 한번 영국 데번포트 조선소에서 대개장을 거쳤고 1931년 4월 12일 칠레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알마 안가 대공황으로 인한 칠레 해군에 대한 예산 삭감으로 알미란테 라토레함의 승조원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알미란테 라토레함을 중심으로 칠레 해군의 함정 대부분이 반란에 동참했으나, 정부군 공군의 공격으로 인해 5일만에 항복하였다. 그 이후 지출을 줄이기 위해 퇴역시키고 탈카우아노에서 함선관리를 위한 승조원들만이 운용되어졌다. 그 이후 [[진주만 공습]]으로 해군 전함들이 상당수 피해 받은 미국이 구입의사를 밝히지만 칠레는 거절하였다. 그 이후 중립을 위해 경비 용도로 사용되어졌다. 그러다 퇴역을 맞게 된다. 여기서 나온 부품중 일부는 일본의 전드레드노트 전함 미카사의 복원에 투입된것으로 추정된다. == 사건, 사고 == 1951년 칠레 해군 소속 3명의 승조원들이 기관실에서 발생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모형화 == * 1/350 * Iron Shipwrights * 1/700 * 콤브릭 [[분류:전함]][[분류:해상 병기/세계 대전]][[분류:1914년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