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카르베아스[br](영어: Karbeas, 그리스어: Καρβέας)|| || '''출생''' ||미상|| || '''사망''' ||[[863년]]|| || '''직위''' ||[[파울리키아파]] 지도자|| || '''반란 대상''' ||[[미하일 3세]]|| [목차] [clearfix] == 개요 == [[동로마 제국]] [[아모리아 왕조]]의 반란자. [[미하일 3세]]의 모친 [[테오도라(9세기)|테오도라]]가 [[파울리키아파]]를 학살하자, 아랍군에 투신한 뒤 동로마 제국을 상대로 잇달아 전쟁을 벌였으나 863년 전사했다. == 행적 == [[파울리키아파]] 가족에서 태어나 아나톨리아 테마의 스트라테고스 테오도토스 멜리세노스의 휘하 참모를 역임했다. 그러나 843년 [[미하일 3세]]을 대신해 통치하던 [[테오도라(9세기)|테오도라]]가 파견한 제국군이 파울리키아파 10만 명을 학살했다. 이때 카르베아스의 아버지 역시 피살되었다. 그는 5,000명의 추종자를 거느리고 멜리테네 아랍 토후국으로 망명한 뒤 멜리테네의 에미르인 오마르 알 아크타의 도움으로 유프라테스 강변의 테프리케를 중심으로 한 파울리키아 국을 건국했다. 이후 멜리테네 토호국의 침략에 정기적으로 참여했다. 859년, 오마르와 함께 미하일 3세의 동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사모사타 전투를 치렀다. 그는 이 전투에서 많은 포로를 획득하고 그중 일부를 자기 편으로 삼았다.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의 변경지대를 끊임없이 공격했다가 863년 랄라카온 전투에서 전사했다. 사후 조카 [[크리소체르]]가 뒤를 이어 파울리키아파의 리더가 되었다. [[분류:바오로파 지도자]][[분류:86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