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include(틀:포르투갈의 역사/중세 이후)] [[파일:attachment/카네이션 혁명/3d.jpg]] '''Revolução de 25 de abril de 1974''', '''Revolução dos Cravos''' [목차] == 개요 == ||
A 25 de Abril de 1974, o 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coroando a longa resistência do povo português e interpretando os seus sentimentos profundos, derrubou o regime fascista. [[1974년]] [[4월 25일]], 오랜 세월에 걸친 [[포르투갈인]]들의 저항을 보며, [[민주주의|그들의 열망]]을 확인한 군사운동(MFA)은 파시스트 정권을 전복시켰다. ---- 포르투갈 헌법 전문의 첫 문장 || [[1974년]]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발생한 사건. 당시 독재를 일삼던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포르투갈이 [[민주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지에서는 4월 25일 [[혁명]](25 de Abril)이라고 부르며 '[[프라하의 봄|리스본의 봄]]'이라는 별명이 있다. [[포르투갈 제2공화국]]에서 30년 이상 [[독재]]하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퇴임한 뒤 카에타누 정권이 집권했지만 경기 침체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식민지들의 독립을 틀어막는 지지부진한 전쟁]]이 계속되면서 불만이 쌓이던 중 마침 닥쳐온 [[오일쇼크]]로 경제가 낙후되어가자 [[이스타두 노부]](제2공화국) 정권에 비판적인 [[포르투갈군]] 내 [[좌파]] 청년 [[장교]]들[* 대부분 위관급 초급장교들이었다.]이 주도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카네이션 혁명이란 이름은 쿠데타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독재 정권을 몰아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쿠데타를 [[혁명]]으로 인식하고 지지한다는 의미로 거리의 [[군인]]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 준 것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그 군인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음으로써 화답했다. 또 이 혁명의 결과로 [[포르투갈 제2공화국]] 정부가 붕괴되었고 [[포르투갈령 앙골라|앙골라]], [[포르투갈령 기니|기니비사우]], [[포르투갈령 모잠비크|모잠비크]] 등 [[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들의 [[독립]]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혁명 직후 각 식민지에서 [[포르투갈군]]과 식민지 독립군들과의 전투가 중단되었고 곧 [[포르투갈령 기니]](현재의 [[기니비사우]])를 시작으로 [[1999년]]까지의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제외한 모든 식민지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다. == 혁명 과정 == === 혁명 전야 === [[포르투갈]]은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 하에서 사회 분위기가 억압적이었다. 더불어 [[영국]], [[프랑스]] 등과는 달리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 붙들고 있는 바람에 식민지 현지에서도 불만이 누적되었고 오랫동안 식민지와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살라자르는 [[1968년]]에 실각했지만 그의 뒤를 이은 카에타누도 근본적으로 살라자르의 정책을 계승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살라자르 독재 치하의 포르투갈은 줄을 잘 타서 [[제2차 세계 대전]]의 화마를 피해갈 수 있었고 [[냉전]] 구도 하에서 철저한 [[반공주의]]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NATO]]에 가입하는 등 국제적 고립은 피할 수 있었다. NATO에는 많은 포르투갈의 소장파 장교들이 교류 목적으로 파견되었고 이들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탈식민화, 자유화를 보고 자국의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961년]]에는 이미 독재정권을 뒤엎으려는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실패했다. 더불어 오랜 식민지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프리카]] 등에 파견되고 희생되면서 전쟁에 대한 회의감도 확산되었다. [[1970년대]]에는 상황수첩(Cadernos Circunstância), 시간과 방법(Tempo e Modo), 논란(Polémica) 같은 유인물들이 대학가에서 돌기 시작했다. 반전운동이 대학가에서 확산되었고 이스타두 노부 체제를 비방하는 선전물이 곳곳에 붙었다. 무장혁명행동(Acção Revolucionária Armada)이나 혁명여단(Brigadas Revolucionárias) 같은 [[좌파]] 무장 [[테러]] 단체가 조직되어 군 시설에 대한 [[테러]]와 [[사보타주]]를 감행했다. 오에이라스에 있는 NATO 사령부가 이들에 의해 공격당했고 탕쿠스(Tancos) 공군기지가 공격받아 군용 [[헬리콥터]] 수 대가 파괴되기도 했다. 카에타누 정부는 여론을 돌리기 위해 재정 정상화를 위한 군 예산의 삭감과 함께 여러 개혁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는 많은 장교들에게 불만을 샀는데 특히 출신환경이 좋지 않았던 젊은 [[장교단]]이 크게 반발했다. 동시기에 [[소련]]의 영향을 받은 포르투갈 국내 좌익 세력이 군부 내부까지 침투했고 이스타두 노부 체제에 불만이 많은 청년 장교들이 중심이 되어 군부 쿠데타를 통한 카에타누 정부 전복과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신체제 건설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소장파 장교들뿐만 아니라 소수의 고위 [[장교]]들마저 포르투갈의 식민지 정책에 불만을 품었다. 일례로 장군이었던 안토니우 히베이루 드 스피놀라(António Sebastião Ribeiro de Spínola)는 자신의 저서 '포르투갈과 미래'(Portugal e o Futuro)에서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의 당사자인 [[기니비사우]]의 [[기니카보베르데 아프리카독립당|PAIGC]] 게릴라와 협상을 개시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카에타누는 깜짝 놀라 그를 해임했지만 스피놀라는 이미 식민지 전장에서 여러 공적을 세운 전쟁영웅이었으므로 카에타누 총리의 이 결정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전쟁이 싫었던 청년 장교들은 분노했다. === 쿠데타 === 스피놀라 장군의 해임에 분노한 청년 장교들은 비토르 알베스(Vitor Alves), 오텔루 사라이바 드카르발류(Otelo Saraiva de Carvalho), 바스쿠 로렌수(Vasco Lourenço)를 중심으로 MFA(Movimento das Forças Armadas; 군사운동)을 조직하였는데 이들은 제2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기로 결의했다. 쿠데타는 [[1974년]] [[4월 25일]] 10시 55분에 방영된 파울루 드 카르발류의 노래 "그리고 안녕의 뒤로"(E Depois do Adeus)와 12시 20분에 당대 [[금지곡]]이었던 주제 아폰수의 "그란돌라여, 거무스름한 마을이여"(Grândola, Vila Morena)를 방영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쿠데타 세력은 이 신호를 시작으로 포르투갈의 주요 전략 거점을 장악했다.[* 두 노래는 포르투갈의 통속적 노래 장르인 "파두" 노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파두는 축구 그리고 파티마와 함께 포르투갈 독재정권의 유명한 우민화 정책인 "3F 정책"을 구성하는 요소였다.] MFA는 쿠데타를 알리면서 국민들에게 외출을 삼갈 것을 요구했지만 오랜 독재에 질린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쿠데타 세력을 지원했다. [[리스본]]의 화훼 시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그 곳에서 팔리던 [[카네이션]](당시가 카네이션의 개화 시기)을 사와서는 쿠데타 군인들에게 달아 줬고 군인들은 이를 총구에 매달아 화답했다. 18시가 되자 카에타누 정권은 완전히 무너졌고 카에타누 등 정부 요인들은 [[브라질]]로 [[망명]]했다. 전반적으로 무혈 쿠데타로 평가되지만 시민들과 비밀경찰 사이 충돌로 4명 가량의 사망자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 구국군정 (Junta de Salvação Nacional) === 카에타누를 몰아낸 쿠데타 세력은 제2공화국 정권에 의해 해임된 스피놀라 장군을 [[포르투갈 대통령|대통령]]으로 옹립하고 구국군정(Junta de Salvação Nacional)을 세웠는데 구국군정은 일단 [[포르투갈군]] 고위 장교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스피놀라 장군과 쿠데타 주동 세력의 생각은 달랐다. 스피놀라 장군 등은 식민지와의 [[연방제]] 구성과 군부 체제의 지속을 희망한 반면 쿠데타 주동 세력은 독재 자체에 질려 [[민주화]] 및 식민지 독립을 추진하고자 했다. 한편 제2공화국이 붕괴한지 얼마 되지 않아 수도 [[리스본]]을 중심으로 총파업 수준의 대규모 [[파업]]이 몇 번이나 일어났는데 이는 40여년 동안 정치적, 사회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처해 있었던 [[노동자]]들의 불만이 폭발하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공기업]], 사기업을 가리지 않고 일정 규모 이상 기업에 속해 있는 거의 모든 포르투갈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했다. 결국 [[1974년]] 당해 일정 규모 이상 모든 포르투갈 기업에서 대폭 임금 인상이 이루어졌고 새로운 노동조합총연맹이 결성되었으며 동시에 옛 독재 체제에 적극적으로 부역했다고 지목된 많은 고위 [[공무원]]과 기업 임원이 해임되었다. [[노동조합]] 합법화와 함께 과거 금지되었던 [[포르투갈 사회당|사회당]]·[[포르투갈 공산당|공산당]] 등 좌파 세력이 합법화됐고 이에 군부 지도 세력은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포르투갈 북부 농촌 지역에서는 [[우파]] [[전통주의]] 성향 [[사제(성직자)|사제]]들을 중심으로 카네이션 혁명을 무위로 돌리고 다시 옛 이스타두 노부 독재 체제로 돌아가고자 시도하는 운동이 횡행했는데 실제로 [[가톨릭]] 사제들의 부추김을 받아서 북부 지역 자영농을 중심으로 좌파 장교 세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몇 번이나 일어나기도 했다. [[9월 28일]]에는 MFA에 반대하는 군부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이를 계기로 스피놀라는 [[9월 30일]]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스피놀라 장군의 대통령 사임으로 MFA는 구국군정에서 확고한 주도권을 쥐고 [[민주화]]를 추진했다. 이후 스피놀라는 "[[침묵하는 다수]](maioria silenciosa)는 포르투갈의 좌경화에 반대한다"는 논리에 근거해 MFA 반대 투쟁에 나섰고 [[1975년]] [[3월 11일]]에 다시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스페인]], [[브라질]]로 [[망명]]을 떠났다. === 계속된 혁명 (Processo Revolucionário Em Curso) === [[3월 11일]]의 쿠데타를 계기로 구국군정은 [[3월 15일]]에 폐지되었으며 이를 대신하여 MFA가 주도해 혁명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가 구성되었다. 좌우파 간 정치투쟁은 더욱 격렬해졌다. [[4월 25일]]에는 40여 년만에 [[1975년 포르투갈 제헌의회 총선거|자유총선]]을 치러 [[제헌의회]]를 구성했는데 이 제헌의회에서 좌파 정당인 [[포르투갈 사회당]](Partido Socialista)이 38%, 중도좌파 정당인 포르투갈 [[사회민주당(포르투갈)|민주인민당]](Partido Popular Democrata)이 26%, 극좌 정당인 [[포르투갈 공산당]](Partido Comunista Português)이 13%를 득표했다. 우파인 [[인민당(포르투갈)|포르투갈 중도사회민주당]](Partido do Centro Democrático e Social)의 득표율은 8%에 지나지 않았다. [[1975년]]에는 이른바 '뜨거운 여름'이라고 불린 좌우파 간 정치투쟁 과정 초기에 공산 세력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NATO]] 창설국 출신 [[쿠바]]가 거의 탄생할 뻔하기도 했다.[* 혁명의 시발탄이었던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의 배경이 되는 그란돌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바라는 이름의 동네가 있는 걸 생각하면 뭔가 묘하다.] 2공화국 기간 동안 강력한 탄압을 받던 [[공산주의]]가 허용되면서 포르투갈 전체에 '공산혁명'이 일어날 법한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남부에 있던 수많은 농장들은 [[노동자]]들이 점거해 [[협동농장]]을 차리기도 했고 자영농이 많았던 북부에서는 이러한 협동농장화 움직임에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이들은 협동농장화에 대한 반발뿐만 아니라 [[극우]] [[가톨릭]] 성향 [[사제(성직자)|사제]]들의 부추김을 받아 혁명 그 자체에 반대하는 운동에도 적극 동참했다. 다른 한편으로 원내에 진출한 좌파 정당보다도 더 극단적인 좌파 세력들은 아예 무력 혁명을 일으키고자 했다. 1975년 [[11월 25일]]에는 구국군정의 주요 인물이었던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Otelo Saraiva de Carvalho)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앞서 일어난 스피놀라의 쿠데타와는 달리 극좌세력이 일으킨 쿠데타였다. 그러나 실패했고 이는 포르투갈의 좌경화에 브레이크를 거는 계기가 되었다. 더불어 쿠데타를 계기로 원내정당들은 '뜨거운 여름'이라고 불리던 극렬한 정치투쟁을 마무리하고 타협을 모색했다. 그 결과 [[1976년]] [[4월 2일]]에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었다. 이에 따라 4월 25일에 [[1976년 포르투갈 공화국 의회 총선거|자유총선]]이 치러졌는데 이 총선에서 [[포르투갈 사회당]]이 36.7%, 포르투갈 민주인민당이 26%, 포르투갈 중도사회민주당이 16.7%, [[포르투갈 공산당]]이 15.2%의 득표율을 올렸다. 그리고 [[6월 27일]]에는 [[보통선거]]에 기반한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1975년]] [[11월 25일]]의 [[극좌]] 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안토니우 하말류 이아느스(António Ramalho Eanes)가 사회당, 민주인민당, 중도사회민주당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본인은 [[무소속]]) 이아느즈는 사회당의 마리우 소아르스(Mário Soares)를 [[포르투갈 총리|총리]]로 임명했고 이에 따라 사회당 단독 정권이 꾸려졌다. 한편 이 기간에 포르투갈은 해외 식민지들을 모두 포기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해외 식민지들은 독립국가로 독립하였고 이때까지 인정하지 않았던 [[인도]]의 [[고아(인도)|고아]], [[다만디우|다만, 디우]], [[다드라나가르하벨리|다드라, 나가르하벨리]] 병합을 인정하였다. 포르투갈이 해외 식민지들을 모두 포기했으므로 남은 것은 [[포르투갈령 마카오|마카오]]밖에 없었는데 그 마카오도 카네이션 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중국]]에 반환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이 [[홍콩 반환]] 문제로 인해 거부해서 포기하지 못했을 뿐이며 양국은 마카오에 대해 '[[중국]] 땅이지만 포르투갈 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해석하는 데 합의하였다. 그리고 그 [[마카오]]도 [[1999년]]에 [[마카오 반환|반환]]이 이뤄졌다. 마카오까지 중국에 반환되면서 [[포르투갈 식민제국]]도 막을 내렸다. 포르투갈 군대와 관료들이 제일 먼저 식민지를 포기하고 떠났으며 해외에 나가 있던 수십만의 포르투갈 노동자들, 소상공인들, 그리고 농부들도 포르투갈로 귀국했는데 포르투갈 본토 사람들은 이들을 '귀환자'(Retornados)라고 불렀다. == 기타 == * [[4월 25일]]은 포르투갈의 [[공휴일]] '''자유의 날(Dia da Liberdade)'''로 지정되어 있다. * 현지인들에 따르면 포르투갈로 이민 온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후폭풍을 남겼다고 한다. 구국군정 당시 [[카보베르데]] 같은 식민지 출신 이주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한 데다 식민지에서 귀국한 포르투갈인들까지 겹쳐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때문에 포르투갈 지식인들 중에는 카네이션 혁명의 민주화에 대해선 긍정하되 이주 노동자 탄압 문제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페드로 코스타]]의 호스 머니는 카네이션 혁명 이후 포르투갈 이민자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어려운 삶을 상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 당시 쿠데타 신호로 쓰인 것이 유명 파두(포르투갈의 전통음악 장르) 가수 주제 아폰수의 노래 "그란돌라, 빌라 모레나"(Grândola, Vila morena)여서 당시 독재정권이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장려한[* 당연한 말(...)이지만 주제 아폰수의 곡은 당시 금지곡이었다.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은 해제되었다.] '[[3F 정책]]([[축구]], 파두, [[파티마의 성모|파티마]])'을 절묘하게 비웃는 느낌도 주었다. 덕분에 혁명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오늘날에도 [[4월]]만 되면 포르투갈 전역에서 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 노래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Grândola, vila morena >Terra da fraterni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Dentro de ti, ó cidade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morena의 뉘앙스가 [[혼혈]]이거나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말하는데 그란돌라가 위치한 남부 알렌테주 지방은 뜨거운 햇빛과 무더위로 알려진 곳이다.] 마을 >형제애의 땅 >민중이 가장 명령한다네 >네 안에서는, 오 도시여 > >Dentro de ti, ó ci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Terra da fraternidade >Grândola, vila morena >네 안에서는, 오 도시여 >민중이 가장 명령한다네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 >Em cada esquina um amigo >Em cada rosto igualdade >Grândola, vila morena >Terra da fraternidade >매 구석에는 친구가 있고 >매 얼굴에는 평등이 있다네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형제애의 땅 > >Terra da fraternidade >Grândola, vila morena >Em cada rosto igualdade >O povo é quem mais ordena >형제애의 땅 >그란돌라, 거무스름한 마을 >매 얼굴에는 평등이 있다네 >매 구석에는 친구가 있고 > >À sombra duma azinheira >Que já não sabia a idade >Jurei ter por companheira >Grândola a tua vontade >이제 나이를 알 수 없는 >월계수 나무 그림자 아래서 >동료가 되기를 맹세했다네 >그란돌라, 너의 의지 > >Grândola a tua vontade >Jurei ter por companheira >À sombra duma azinheira >Que já não sabia a idade >그란돌라, 너의 의지 >동료가 되기를 맹세했다네 >이제 나이를 알 수 없는 >월계수 나무 그림자 아래서 * 창작물에서 포르투갈 근현대사를 다루면 반드시 언급되는 혁명이기도 하다. *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파인애플 아미]]에 이 카네이션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인 제드 고시가 스피뇰라 장군의 부하인 엘리트 병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키고[* 지독한 훈련에 고시가 용병 출신이라는 점과 겹쳐져서 병사들에게 또라이라고까지 불린다.] 그 병사들이 자신감을 얻으면서[* 이때 고시는 이 병사들과 먼저 발견하기 시합을 하는데 마지막에 은근슬쩍 져 준다.] 혁명을 성공시키고 후에 포르투갈 군의 높으신 분들이 돼서[* 그 당시에는 힘든 훈련 탓에 고시를 원망했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의 속뜻을 알게 되었다.] 다시 자신의 부하들을 고시에게 맡긴다는 내용이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페드로 코스타]]의 '행진하는 청춘', '호스 머니'에서 시대적 배경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기도 했다. *혁명평의회(Conselho da Revolução)는 [[1976년]] 혁명이 마무리된 후에도 한동안 존속했으나 태반이 [[군인]]으로 이루어져 있어 [[문민통제]]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고조됨에 따라 [[1982년]]에 헌법 수정이 이루어지면서 폐지되었으며 혁명평의회의 역할은 국무회의(Conselho de Estado)가 이어받았다. *혁명을 주도했던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는 [[2021년]] [[7월 26일]] [[리스본]]의 군사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4세. * 타구스강 남부에 위치해 [[리스본]]과 [[알마다]]를 잇는 다리의 이름이 4월 25일 다리(포르투갈어: Ponte 25 de Abril)다. 혁명 이전까지는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이름을 딴 살라자르 다리로 불렸으며 [[금문교]]처럼 붉은 색(정확히는 [[주황색|국제 오렌지색]](International Orange))으로 칠해 두 다리를 서로 엮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히는 [[베이 브릿지]]를 만든 회사에서 만든 다리라 구조적으로는 베이 브릿지를 쏙 닮았다. * 포르투갈의 [[공영방송]]인 [[RTP]] 아카이브에는 4월 25일 혁명 다음날에 발표된 뉴스가 남아있다. [[https://arquivos.rtp.pt/conteudos/golpe-militar-do-dia-25-de-abril-de-1974/|#]] [[분류:포르투갈의 역사]][[분류:1974년/사건사고]][[분류:쿠데타]][[분류:민주화 운동]][[분류: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