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 관련 인물(NPB)]] [include(틀:한신 타이거스/간략(코칭스태프))] [include(틀: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라운드 지명선수)] ||<-2>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1a2a1dbf.jpg|width=100%]]|| ||||<:><#fefe01> {{{#000000 한신 타이거스 No.73}}} || ||||<:><#000000> {{{#ffffff 카네무라 사토루 (金村曉) }}} || || '''생년월일''' || [[1976년]] [[4월 19일]] ([age(1976-04-19)]세) || || '''국적''' || [include(틀:국기, 국명=일본)] || || '''출신지''' || [[미야기]] 현 게센누마 || || '''신체조건''' || 187cm 83kg || || '''포지션''' || [[투수]] || || '''투타''' || 우투우타 || || '''프로입단''' || 1994년 드래프트 1순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닛폰햄]]) || || '''소속팀'''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995~2007)'''[br] [[한신 타이거스]] (2008~2010) || || '''지도자''' || [[한신 타이거스]] 1군 투수코치 (2016~ ) || ---- ||
[[파일:2006닛폰햄우승.png|width=auto&height=70]][br]'''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 || '''[[2006년 일본시리즈|{{{#ffffff 2006}}}]]''' ||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프로야구]]에서 활동했던 선수로, 본명은 카네무라 히데오(金村秀雄). 현재 [[한신 타이거스]] 투수코치. 이름만 보면 [[한국계 일본인]]이란 설이 있으나 실제로 확인되진 않았다. 주요 타이틀: 1998년 평균자책점 1위. 올스타전 3회(1998, 2004, 2005년) 등번호 : 16번(니혼햄) - 13번(한신) == 선수 생활 == 1995년 [[닛폰햄 파이터즈]]에 입단. 첫해에는 부진했지만 이후 꾸준하게 승수를 쌓았다[* 특히 99년에는 4월에만 3경기 연속 완투승(2완봉 포함)을 기록했다]. 최전성기는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다르빗슈 유]] 등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야말로 눈물겨운 투수진을 자랑했던 닛폰햄의 에이스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시즌 막판까지 겨우겨우 9승(6패)을 채우고, 5년 연속 두 자리수 승리와 6년 연속 규정이닝이 걸린 9월 24일 치바롯데전에서 3점차로 리드하던 5회 2아웃 만루상황에서 당시 [[트레이 힐만]][* 2017년부터 [[KBO 리그]]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선임된 그 분이다.] 감독이 강판을 시키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외국인 감독이니까 선수 기록 따위 상관 없지. 꼴도 보기 싫다."'''[* '''絶対に許さない。顔も見たくない。(절대로 용서할수 없어. 꼴도 보기 싫어.)'''. 인터넷 상에서 주로 천인공노할 짓에 대한 반응이나 개드립 등에 사용되며 이 아래에는 보통 もう許してやれよ(이제 용서 좀 해줘)란 드립이 주로 달린다.] 라고 디스를 했다가 '출장등록 말소', '다음달 25일 훈련 참가금지', '벌금 200만엔', '플레이오프까지 출장정지의 징계를 먹었다.[* 실제로 이 당시 힐만 감독은 카네무라 사토루의 항명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1군 말소 및 팀 훈련 참가 금지라는 징계를 내린 것도 모자라 그의 라커룸까지 싹 치워버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닛폰햄은 세이부, 소프트뱅크와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치열한 3파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게다가 닛폰햄은 1981년 이후 25년만의 리그 우승 도전이었다. 이 도전은 결국 성공한다. [[일본시리즈]]에서는 44년만에 우승(팀 역사상 두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하였다.] 10월 25일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야 복귀하여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고 5회까지 무실점하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결국 구단 및 힐만 감독에게 나중에 공개사과를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구단에 단단히 찍혔는지 2007년에는 1군에서 얼마 기용되지 못했고, 마침 기량 하락의 조짐이 보였기 때문에 2007 시즌 후 [[한신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된다. 하지만 한신에서도 재기하지 못하며 전성기 시절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3년 간 1승 6패에 그친 뒤 2010 시즌 후 방출되었다. 투수로서는 [[사이토 가즈미]]처럼 [[유리몸]]이지만 컨디션만 좋으면 완봉, 완투도 곧 잘해내는 스타일로 실력은 확실하다는 평가가 언제나 많았던 만큼[* 부진하던 시기에도 구위나 컨트롤은 별 얘기가 없었다. 애초에 구위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귀추가 주목되었다. 한국프로야구 진출을 희망했고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사진까지 찍었다가 [[카도쿠라 켄]]이 입단하면서 물먹었고, 카도쿠라와 결별한 [[SK 와이번스]]의 입단테스트에 참가했으나 불합격 판정. 한국으로 진출하려다 영 좋지 않은 기억만 가지고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는 [[독립리그]] 팀 신나노에 입단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컨디션을 끌어올린 다음에 여름쯤 용병농사를 망친 한국 팀의 오퍼를 받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하지만 결국 오른쪽 어깨에 이상이 생기면서 은퇴하였다. == 은퇴 후 == 은퇴한 뒤 해설가로 활동하였고 2012년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매치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하였다. 2016년 시즌을 앞두고 현역 마지막 팀인 [[한신 타이거즈]]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보직은 1군 투수코치. 여담으로 2006년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파나마 출신 타자 훌리오 술레타[* 시카고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뛸 시절에 라이벌은 [[최희섭]]이었다.]에게 사구를 던졌다가 겨우 죽음을 모면할 정도로 얻어터졌었던 적이 있다.[* 술레타는 치바 롯데 마린스의 투수 댄 세라피니와도 마운드에서 붙은 적이 있다. 테이크다운 및 파운딩으로 술레타의 승리로 끝났다.]이 때문에 두달간 결장했을 정도로 부상이 컸다. [[분류:일본의 야구 선수]][[분류:1976년 출생]][[분류:게센누마시 출신 인물]][[분류:1995년 데뷔]][[분류:2010년 은퇴]][[분류: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은퇴, 이적]][[분류:한신 타이거스/은퇴, 이적]][[분류:우투우타]][[분류:우완 투수]][[분류:한국계 일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