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昌崙 ? ~ [[1950년]] [[10월 31일]] [[만주]] [[간도]] [[용정]]의 광명중학교를 마치고 1939년 [[만주국]] [[신경군관학교]]에 들어가 1941년 1기로 졸업하였다. 같은 해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42년 제56기로 졸업하면서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봉천비행단에서 근무했다. 일제가 패망하자 1945년 8월 17일 간노 히로시(菅野弘)[* [[2.26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만주로 밀려온 일본인 교관으로 [[만주국육군군관학교]] 2기생 중대장을 맡았었다.]의 도움으로 [[박승환(군인)|박승환]], [[방원철]]과 함께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왔다가 이들과 함께 월북하여 [[조선인민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1948년 인민군 보병 공급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방원철]]·[[이재기]] 등과 함께 월남하여 한국군 장교로 특별임관되었다. [[6.25 전쟁]]기 육군 [[대령]]으로 복무하다가 [[평안북도]] [[영변군|영변]]에서 전사하였고 [[대한민국 훈장#s-5|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군 부문에 등재되었다. [[분류:만주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6.25 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북한의 군인]][[분류:195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