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364년 사망]][[분류:용궁 최씨]][[분류:용천군 출신 인물]] [include(틀:고려사)] ---- [목차] == 개요 == 崔濡 (? ~ 1364) [[고려]] 말의 [[간신]]. 본관은 [[용궁 최씨|용궁]].[* 모든 [[매국노]]가 그렇듯이 당연히 족보에서도 제명처리 되어있다.] 몽골어로는 최테무르로 불린다. == 충정왕 즉위 == [[충정왕]] 즉위 때 공을 세워 참리[* 첨의부의 종 2품 관리] 벼슬에 올랐지만 행실이 바르지 못해 벼슬자리에서 쫓겨날 위협을 받자 [[원나라]]로 가서 어사 벼슬을 얻었다. == 원나라에서 == 원나라에서 지내면서 고려를 해칠 궁리만 하고 있었는데 원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혜종(원)|순제]]에게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 나라이니 당연히 반란을 진압할 군사를 보내 주어야 합니다."'''라고 이야기해 순제의 명령을 받고 고려에 사신으로 가서 [[공민왕]]에게 10만 대군을 내놓으라고 하였고 후에 중강감승으로 승진한 후 다시 고려에 와서 군사를 빨리 보내고 창을 만들 재료를 달라고 하였다. [[공민왕]]은 원나라와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최유를 잘 다스렸고 벼슬에다가 '용선 [[부원군]]'이라는 작위를 주었다. == 고려 침입 == [[기황후]]에게 접근해 고려에 쳐들어갈 수 있도록 군사를 출병시켜달라고 하였고 '[[공민왕]]이 [[옥새]]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명목으로 하여 [[덕흥군]]을 왕으로 세운 다음 의주를 지나 [[여몽전쟁(1364년)|고려에 쳐들어갔으나]] [[최영]]과 [[태조(조선)|이성계]]의 군대에게 대패하고 원으로 도망쳤다. == 최후 == 원나라로 쫓겨난 최유는 10만의 군사만 있으면 고려를 완전히 정복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지만 그 당시 원나라는 많이 쇠약해져 고려를 정복할 힘이 없었으며 원나라 신하들의 반대로 취소되었다. 결국 최유는 [[공민왕]]의 요청으로 고려로 압송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여담이지만 한국사에서 제대로 [[참교육]]을 당한 매국노 중 하나다.